•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2) 한전농업의 생산력
  •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우리 나라는 밭이 많기도 하거니와 밭작물 재배에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한전의 농업기술도 발달해가고 있었다. 밭에 씨앗을 뿌리고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耕種法)으로 壟種法과 畎種法이 있었다. 농종법이란 땅을 起耕하면서 만든 높은 둔덕인 밭이랑(畝)에 씨앗을 뿌려서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며, 견종법이란 밭이랑보다 낮은 밭고랑에 씨앗을 뿌려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말한다. 팥과 조는 추위에 강하고 습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밭이랑에 심었고, 보리는 추위에 약하고 습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밭고랑에 심어서 경작하였다.0056) 김용섭은 한전작물의 파종법이 조선 전기에는 농종법에서 조선 후기에는 견종법으로 변화되어 갔다고 주장하였지만, 민성기는 파종법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宮嶋博史는 보리가 근경이나 간종의 경우에는 壟에서 재배되었다고 보았다. 이호철은 보리가 1년 1작식과 근경작의 경우에는 畎에 파종되었지만, 간종의 경우는 농에 파종되었다고 보았다(李永鶴,<조선시기 농업생산력 연구현황>,≪韓國中世社會 解體期의 諸問題≫下, 한울, 1987, 32∼35쪽).

 조선 후기에 농구가 발달하면서 토지를 다스리고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형태가 발달하면서 한전작물의 재배는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전기에는 소의 보급이 미흡하고 대형 쟁기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밭이랑이 낮았는데, 조선 후기에는 소의 사육에 따라 소의 보급이 확대되고 대형 쟁기가 보급되어 높은 이랑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즉 조선 전기에는 토지를 기경하여 밭을 다스리는 방법이 넓고 낮은 이랑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발달된 농구를 바탕으로 田土를 다스리는 작업과 종자를 덮어주는 작업이 분화하면서 좁고 높은 이랑을 만들어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이전보다 수확량이 많게 되었다. 봄에는 이랑에 콩이나 조·팥을 심고 재배하여 수확을 하고, 땅을 다시 경작한 후 고랑에 가을 보리를 심는다. 봄에 가을 보리가 자라고 있는 사이의 땅에 콩이나 조 등을 심고, 가을 보리를 5월에 수확한 후 그 자리의 흙을 콩이나 조가 자라는 곳에 북돋아준다. 즉 좁고 깊은 이랑을 만들어 耐旱과 耐寒의 효과가 큰 麥畎種法을 확립하여 가을 보리를 매개로 2년 3작 또는 2년 4작의 농업형태를 널리 행하였던 것이다.

 몇 가지의 새로운 기술이 시도되기도 하였다.≪증보산림경제≫에서 조를 파종하는 漢人種粟法이라는 새로운 파종법을 소개함으로써 신기술을 보급하고자 하였다. 또한 밭을 1畝 3畎으로 만들어 한전작물을 재배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그러한 밭의 조성법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가뭄을 극복하는 乾田의 작부체계가 발달하고 있었다. 가뭄에 잘 견딜 수 있는 품종이 개발되는가 하면, 중경 제초를 행하여 잡초를 제거해주고 한전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북돋아줌으로써 토양에 수분을 유지해주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또한 논에서 건앙법의 기술이 행해진 것도 밭의 발달된 농업기술이 논에서 이앙의 재배기술에 응용되면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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