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3) 농구와 수리시설
  • (1) 농기구의 발달

(1) 농기구의 발달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게 된 것은 손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 나아가 인간은 손의 연장으로서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생산력이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도구는 필수적이었다. 어떠한 농경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사회적 생산력의 수준이 정해질 정도였다. 농경도구는 사회적 생산력을 측정하는 지표의 하나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농기구는 같은 시기에 나온 농서와 어휘집을 통해서 알 수 있다.≪농사직설≫·≪訓蒙字會≫등을 통하여 조선 전기의 농기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기능별로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0073) 李鎬澈,<農具 및 水利施設>(앞의 책), 355쪽.

가는 연장으로서는 보(犁)·발외(把犁)·(耕畦犁)·보(耒耜)·삷(鍤, 鍬)·가래(杴)·가래(鐵杴)·耒·掛伊 등, 삶는 연장은 木斫(써레)·쇠스랑(鐵齒擺)·곰방메(檑木)·輪木·번디(磟, 碡) 등, 씨덮는 연장은 木斫背·쇠스랑(鐵齒擺)·檑木·憦(曳介)·板憦(翻地)·把憦(밀개)·柴木 등, 김매는 연장은 거훔한(鏟)·호(鋤, 확)·長柄大鎌·栲栳(도리채) 등, 거두는 연장은 낟(鎌) 등, 터는 연장은 輾(타작)·키(簸)·小杖·도리채(耞)·길(枷) 등, 가루내는 연장은 밀돌(碾)·방하(碓)·매(磑, 磨)·고(杵) 등, 갈무리 연장은 고서(空石)·苫薦(飛介)·옹·木槽 등, 기타 연장으로서 드레(汲器)·산태(蕢, 畚)·둥주리·광조리·작도 등이 있다.

 농구의 사용방법과 함께 조선 전기 수전의 경작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쟁기로 추수가 끝난 후 겨울에 깊게 한 번 갈아주고, 봄에 다시 얕게 갈아준다. 써레(木斫)로 굵은 흙덩이를 부수고 쇠시랑과 곰배로 남은 흙덩이를 부수어 삶고 종자를 뿌린다. 그 후 곧바로 翻地 또는 밀개로써 종자를 흙으로 덮고 농토의 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 드레로 물을 댄다. 제초작업은 호미로 하고 수확할 때는 낫으로 포기를 베고 도리채로써 탈곡하고 밀돌로 도정작업을 한 다음 섬에 넣어서 저장한다.

 조선 후기에는 농구를 중요하게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18세기말에는≪海東農書≫·≪課農小抄≫등의 농서에서 농구가 독립된 항목으로 설정되고, 우리의 농구를 중국의 농구와 비교하면서 중국 농구로부터 장점을 취하는 반면 조선 고유의 농구(호미·가래 등)가 갖는 기능과 장점을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농서 기술상의 변화를 통해 조선 후기에는 농구가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才物譜≫(1798)·≪物譜≫(1820) 등의 어휘집 등을 통해서도 조선 후기의 농구의 발전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조선 전기의 농기구 종류가 모두 40여 종으로 파악되는데,≪과농소초≫에는 50여 종,≪물보≫에는 92종,≪재물보≫에는 191종이 실려 있음을 보면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농구가 다양해졌음을 엿볼 수 있다.0074) 金光彦,≪韓國農器具考≫(韓國農村經濟硏究院, 1986).

 실제로 18세기초의 농서인≪산림경제≫에 처음으로 토막번지와 사립번지(柴扇翻地)라는 농구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의 새로운 농업기술인 건앙법을 가능하게 한 농기구였다. 수전농업에서 파종법이 직파법에서 이앙법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한전의 건답기술을 수전에 적용시켜 만들어낸 기술이 건앙법인데 그것을 가능하도록 한 농구가 토막번지와 사립번지였던 것이다.0075) 宮嶋博史, 앞의 글.

 또한 땅을 가는 데 주로 이용하고, 제초시에도 사용하는 쟁기(犁)도 시기가 내려옴에 따라 발전해왔다. 조선 초기의 볏이 없는 무볏려「보」쟁기에서 조선 후기에 유볏려「장기」로 전환하여, 볏밥의 반전을 보다 쉽게 하고 1∼2회에 그쳤던 초기 犁耕法에서 反耕을 거듭하는 精耕細作으로 장기질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쟁기질은 土壤肥培力의 증대를 가져와 2년 3작 또는 2년 4작의 전지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0076) 閔成基,<朝鮮犁의 特質과 犁耕法의 展開>(앞의 책).

 이와 같이 조선 전기에서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농기구가 용도에 따라 분화되어 종류가 풍부해져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농기구의 발달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에 농업생산력이 발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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