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3. 광작과 지주제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1960년대 본격화된 資本主義 萌芽論(이하 맹아론)은 日帝 植民史觀의 他律性論과 停滯性論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한국사의 발전논리가 단순히 밖으로부터 이식되었다는 外因論 중심의 파악방식에 대해 한국 고유의 내적 발전논리가 당연히 모색되어야 한다는 內因論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맹아론은 한국사의 고유한 내재적 발전논리를 점검하고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대응방략을 모색하는 가운데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이같은 맹아론 연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一國史의 내적 발전의 논리이며 세계 자본주의와의 결합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민족사의 내적 역량이다. 따라서 한국사의 내적 발전논리를 검토하는 방법으로서 제시된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에 대한 비판은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과 내적 발전 과정을 밝히는 것이어야 했다.0230) 金容燮,<日帝 官學者들의 韓國史觀-日本人은 韓國史를 어떻게 보아왔는가->(≪思想界≫1963년 2월호).

 한편 맹아론에 대한 연구사적 반성이 있었는데 이것은「浮彫的 수법」으로 제시된 것에 대한 문제 제기에 한정되어야지, 일국사의 내적 발전논리를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바꿔 말하면 내적 발전논리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실증할 수 있는 선을 넘어 그것을 도식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비판되어야 하지만, 맹아론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판될 수 있다.

 전자는 주로 도식적인 이론에 맞추어 봉건제로부터 자본제로의 이행과정에서 당연히「부르주아 혁명」을 거쳐야 하며 그러한 밑바탕으로서 부르주아층을 도출해 내고자 하는 좌편향적인 맹아론 연구에서 나온 것이었다.0231) 이같은 경향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글에 소개되어 있다.
吳 星,<資本主義 萌芽論의 硏究史的 檢討-初期의 硏究를 중심으로->(≪韓國史市民講座≫9, 一潮閣, 1991).
반면 후자는 서구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도출된 맹아론을 한국의 발전과정 속에서는 검출할 수 없으며 그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부조적 수법 내지 민족주의적 열망이라고 주장하는 우편향적인 견해이다.0232) 이같은 경향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글에 잘 소개되어 있다.
청아 편집부,<內在的 發展論의 전진을 위한 方法論的 고찰-일본의 韓國史硏究 수용과 관련하여>(≪封建社會 解體期의 社會經濟構造≫, 청아출판사, 1982).
金仁杰,<1960, 1970년대 ‘內在的 發展論’과 韓國史學>(≪金容燮敎授停年退職紀念 韓國史學論叢≫, 1997).

 전자의 연구는 주로 도식적인 유물론자에게서 찾아지며, 후자의 연구는 대체로 미국·일본 또는 국내의 일부 연구자에게서 나타난다. 전자의 경향성은 이미 1970년대까지 마무리된 데 대해, 후자의 경우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주장되고 있다. 이같은 편향성은 향후 실증적인 역사 연구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다분히 역사인식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의 한국 연구는 한국사의 고유한 발전논리에 대한 연구보다 제3자가 보는 한국사 연구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0233) 최근 일본이나 미국의 한국사 연구와 관련하여 다음의 글이 참고된다.
竝木眞人,<戰後日本にぉける朝鮮近代史硏究の現段階-‘內在的發展論’再考-> (≪歷史評論≫482, 1990).
존 던칸(John Duncan),<미국대학 한국사 교육의 동향과 문제점>(≪歷史敎育≫58, 1995).
그러한 특수성 논리는 유럽 및 일본의 봉건제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설명하려는 방식으로 경사한다. 이후의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도 그 연장선에 있다.

 특히 아시아적 특질을 내세우며 세계사적 보편성을 부정하는 논리의 뒷 편에는 일본 중심의 세계관이 도사리고 있고 그러한 논리가 곧 한국사의 보편적 발전을 부정하는 특수한 발전논리로 포장되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0234) 이세영,<‘내재적 발전론’을 가장한 또 하나의 식민주의 역사인식>(≪역사와 현실≫7, 한국역사연구회, 1992). 그것은 일제 식민사관에서도 이론화되었던 정체성과 타율성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한 이론의 근거로 내세워지는 것은 봉건국가의 專制的 성격과 그러한 권력을 상징하는 王土思想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일본의 봉건적 토지소유와 한국의 그것은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이론을 적용시키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의 토지소유·보유관계를 將軍-大名·給人-農民이라는 지주-소작관계로 보고 조선의 토지소유·보유관계인 국왕-궁방·양반지주-소작농을 일본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서로 유사한 것이라고 하는 방식이다.0235) 安秉珆,≪朝鮮近代經濟史硏究≫(日本評論社, 1975), 第1章 謬說の批判的檢討.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한국 봉건사회의 기본구조는 비록 소유의 복합적·중층적 내지는 상호의존적 관계가 확인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정치지배자인 국왕의 단일한 토지소유(국가적 토지소유)로 수렴된다. 또한 국가적 상품경제는 지주적·농민적 상품경제를 압도하면서 변혁주체로서 국가적 수탈기구에 기생한 중간계층을 상정하여 한국사의 특질을 거론하고 있다. 이같은 논의는 자생적인 내적 발전의 논리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따라서 맹아론을 부조적 수법으로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탈피할 방법을 찾는 데 실패하게 된다. 이같은 견해는 소위 重層的 토지소유를 주장하는 논자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진다.0236) 이영훈,<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성립론’ 비판>(≪대학≫창간호, 1985).
―――,<한국자본주의의 맹아문제에 대하여>(≪한국의 사회경제사≫, 한길사, 1986).

 봉건사회 결여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봉건적 토지소유에 대한 이같은 오해는 향후 상부구조인 국가의 성립과정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아울러 장기적으로 사적 토지소유의 발전이 봉건사회 최말기까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함께 살펴보는 가운데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봉건적 토지소유가 해체하고 근대적 토지소유가 탄생하는 과정은 곧 사적 토지소유에 대한 국가의 법인을 통해 이루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0237) 한국역사연구회 근대사분과 토지대장연구반,≪대한제국의 토지조사사업≫(민음사, 1995).
崔允晤, 앞의 글(1996).

 내재적 발전론의 핵심은 단순한 자본주의 맹아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봉건적 토지소유와 그것의 해체를 통해 전망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을 시야에 넣고 전 구조적으로 한국사의 내적 발전논리를 찾는 데 있다.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논리는 서양의 발전논리에서만 도출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아시아의 특수한 발전논리가 결합된 보편적 발전법칙이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사의 발전법칙에 대한 연구는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역사 경험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의 특수한 발전논리가 결합되어야만 세계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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