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3. 광작과 지주제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내재적 발전론의 핵심을 이루는 자본주의 맹아란 언제부터 성립하였으며 어떠한 단계를 말하는가?

 양란 이후 17세기를 거쳐 18·19세기에 이르러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상품화폐관계도 점차 전국 시장을 대상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같은 상품경제의 발달은 17세기초부터 100여 년에 걸쳐 시행된 大同法과 均役法 시행 과정에서, 그리고 농업뿐 아니라 상업·수공업·어업·광산업·금속가공업 등의 발전에서 가속화되었다.0238) 吳美一,<조선후기 상품유통 연구현황>(≪韓國中世社會 解體期의 諸問題≫下, 한울, 1987).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기는 논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같은 제분야에서의 변화가 구체화되는 18세기 중엽 이후를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자본주의적 관계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하기 직전단계의 맹아를 의미하며 단순 협업,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처), 공장제 대공업으로 구분할 때 협업단계를 가리킨다.0239) 日本 資本主義 發達史에 관해 ‘엄밀한 의미에서의 매뉴팩츄어 시대’의 단초를 幕府 말기에서 찾고 개항 이전 일본의 내재적 발전을 논하는 견해가 제출되기도 했다(≪日本資本主義論爭史≫上·下, 靑木文庫, 1953·1963). 이같은 ‘嚴매뉴 논쟁’도 단순 협업에서 매뉴팩츄어단계로의 단초를 찾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맹아는 봉건사회 태내에서 상품화폐경제 발달에 따라 성립하는 것이며, 맹아는 자본주의단계로 이행한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도기에 존재하는「맹아」를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생산관계의 변화로 표현된 사회구성의 변동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적 요소·맹아가 기존의 낡은 생산양식과 구별되는 것은 농민의 신분으로부터의 자유, 토지로부터의 자유라는 이중적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부터이다. 그러한 과정이 곧 농민층 분화과정이며 동시에 농촌의 임노동자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이 때의 농민층 분화는 자본제단계의 농민층 분해와 구분되며, 이 때의 농촌 임노동자는 자본가에 종속된 임노동자와 구분된다. 이같은 농민층 분화와 몰락농민의 존재야말로 자본주의 맹아의 본질이며 낡은 봉건적 생산관계로부터 구분되는 지표이다. 이 시기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직접적 대립은 형식적으로 나타나며 화폐관계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 채 외형적으로만 양자를 묶어주고 있다. 봉건적 생산관계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시기이므로 봉건사회 해체기의 제양상도 함께 나타났다. 그와 같은 맹아는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발생하여 그것을 파괴시키고 있었다.

 자본주의 맹아에 대한 연구는 봉건체제의 해체와 그것의 형식적·질적 변화를 주목하는 가운데 재점검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질적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함께 생산력 발전, 나아가 생산관계의 변화를 동시에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력의 측면에서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농업사회는 서양의 산업사회와 다른 고유한 발전논리를 가지므로 상호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구성, 곧 지주제의 변동과 자본제로의 이행과정이 어떻게 검토될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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