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4. 임노동의 발생
  • 3) 임노동의 양상
  • (2) 임노동의 조건

(2) 임노동의 조건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의 농촌사회에서는 많은 농민들이 토지에서 유리되어 노동력만을 생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가난한 빈농이어서 날품팔이로 생계를 보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우선 농업노동자로서 자작농가나 경우에 따라서는 규모가 큰 소작농가에 고용되기도 하였는데, 한편 관부에서 벌이는 능묘·축성·도로공사 등에 고용되어 품을 팔기도 하였다.

 농촌사회의 양극 분해가 촉진되고 봉건적 착취가 심해지면서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은 날로 증대되었고, 그들은 마침내 고향을 버리고 유민화되어 갔다. 그들은 도시로 모여들어 도시빈민층을 형성하면서 고용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별다른 일자리가 없었고, 오로지 임노동의 길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役事가 있다는 소문만 듣고도 벌떼처럼 모여들었다.0341)≪承政院日記≫1724책, 정조 17년 12월 8일.

 이들 이른바 ‘賃傭爲業之類’는 당초에는 호구지책에 급급하여 관부의 작업장이건, 민간의 작업장이건 가리지 않고 고용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도적이라도 되어야 했다. 이에 봉건정부로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어 가급적 고향으로 쇄환시키고자 하면서 한편으로 고용의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즉 유민을 모아 屯田을 개간시키는가 하면 광산 개발에 참여시키면서 공사를 벌여 그들에게 일터를 주고, 부호들에게도 유민을 고용하도록 권장하는 방안이 시도되었다.0342)≪備邊司謄錄≫173책, 정조 12년 8월 18일.

 임노동을 생업의 방편으로 삼은 노동자들은 이제 보다 많은 노임과 보다 좋은 작업조건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임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일터를 찾아다니던 무리였다. 그들은 주어진 작업환경이나 작업의 강도, 그리고 특히 노임의 정도 등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처음부터 응모하지 않거나 응모한 뒤라도 개선을 요구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늦장부리고 허술하게 하든가, 아예 작당하여 흩어지고는 했다. 예컨대 영조 7년(1731) 인조의 장릉을 이장할 때, 작업이 끝날 즈음에 관부에서 부대작업을 꾀하여 작업을 연장시키려 하자 인부들은 일제히 이에 저항하고 즉시 흩어졌다. 이에 관부에서는 그들을 회유하고 협박하기도 했지만 끝내 귀환하지 않았다.0343) 尹用出, 앞의 책, 236쪽.
이후의 임노동 사례는 위의 연구에서 제시된 募軍의 활동을 중심으로 제시하였다.
당시의 임노동자들은 이처럼 노임이나 작업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합 집산할 수 있는 존재였다. 효종 8년(1657) 창덕궁 보수공사에서 노임에 불만을 품고 인부의 일부가 달아나 버린 일이 있다. 숙종 원년(1674) 현종의 산릉역에서 관부가 동절기라서 일조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노임을 감하고자 하자, 인부들은 동절기 작업이 더 고되고 힘들다는 이유를 내세워 거칠게 항의하였고, 관부도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적 임노동자로서 작업에 참여한 인부들은 종래의 징발 役軍과 달리 자신의 자유의사가 존중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관부의 공사라 하더라도 관부의 의향과 관계없이 작업에 응모하고 또 불참할 수 있었다. 이는 민간의 임노동에서는 그 경향이 더 심했다. 丁若鏞은≪牧民心書≫에서 당시 고용주와 품팔이꾼 사이에 분쟁이 심함을 예고하고, 지방관은 이에 공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0344)≪牧民心書≫赴任六條 莅事. 인신적 예속성이 제거된 임노동체제하에서는 관부로서도 작업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는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인적 사항을 철저히 확인하고 관리자를 엄선해야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용관계를 분명히 해야 했다. 경제적 관계로서만 인부를 고용할 수 있는 상황하에서, 인부를 작업장으로 유인하여 안정적으로 사역하기 위해서는 노임으로서의 雇價가 적절해야 했고, 작업조건이 양호해야 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