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7. 어·염업의 발달
  • 2) 염업
  •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인간이 살아가자면 단 하루도 없어서는 안될 소금과, 그것을 생산하는 염업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하겠지만 특히 조선 후기에 와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이르러 전란과 기근이 빈발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군량미 확보와 救荒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금의 생산을 독려하기 위하여 고관을 소금 생산지인 바닷가 고을에 파견하였다.0615)≪光海君日記≫권 76, 광해군 6년 3월 임오. 전근대사회에서 전란이 발생했을 때 소금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기록을 통하여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병란이 일어났을 때 소금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우리 나라는 사방이 바닷가이므로 소금의 생산을 많이 할 수 있으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전라도와 충청도 등과 같은 바닷가의 소금이 생산되는 지방을 여러 가지로 잘 다스려 그 생산량이 많으면 그것을 곡식과 바꾸어 군량으로 보충하시고 비록 그 생산량이 적더라도 식염으로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宣祖實錄≫권 88, 선조 30년 5월 무술).

 이 글은 왜란이 계속되던 선조 30년 비변사에서 왕에게 건의한 내용으로, 왜군의 침공이 비교적 적은 전라도와 충청도 등지의 소금 산출지에서 그 생산량을 증대시켜 군량을 확보하고 식염도 보급하자는 것으로서 전란시에는 소금의 증산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당시 기근이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하나의 사례를 보기로 하자.

지금 三南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만일 보리농사까지 흉작이 되면 삼남지방의 억만 백성을 모두 죽이는 길 이외에 살릴 희망이 실로 없습니다.…兩南지방과 海西지방에서 당연히 소금을 구워야 합니다. 만약 저를 그 곳에 보내 주신다면 힘을 다하여 국가에 보답하겠습니다(≪承政院日記≫735책, 영조 7년 11월 17일).

 이 사료는 영남절도사인 朴文秀가 영조에게 올린 글로서, 하삼도지방인 경상·전라·충청도에 대기근이 발생하여 그 곳 백성들이 모두 굶어 죽기에 이르렀으니 이같은 절박한 처지를 구출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소금 생산조건이 양호한 영·호남과 황해도의 바닷가에 자신을 파견하여 생산을 독려함으로써 구황하자는 내용이다.

 전근대적인 농경사회에서 흉년이라는 문제는 심각한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소금이다. 왜냐하면 기근을 만나 곡식의 수확이 불가능하더라도 일단 소금만 있다면 채소 등과 섞어 먹을 수 있어 우선 연명은 가능하며 아울러 흉년이 들지 않은 다른 지방의 곡식과 이를 교환하여 기근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0616)≪中宗實錄≫권 18, 중종 8년 8월 계묘. 이와 같이 전란과 기근이 자주 발생했던 조선 후기에 소금은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였고, 소금을 생산하는 염업의 비중은 매우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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