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2. 상품의 유통
  • 4) 상업자본의 축적
  •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18세기 이후 상품유통은 대부분 독점을 기초로 한 도고상업체제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즉 지역적, 계절적인 상품이동이 원활하지 못한 데서 이러한 독점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고상업은 바로 이러한 제약요인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 상품유통방식이었다. 그러나 전근대사회의 고립분산적인 생산시스템과 공급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도고상업체제는 수시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일부 상업세력은 상업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생산자를 자신의 수중에 장악해 나갔다. 즉 상인들은 자신이 축적한 자본을 기초로 수공업자에 대한 先貸制的 지배를 실현하였던 것이다.

 상업자본의 수공업자에 대한 선대제적 지배는 사상은 물론 시전상인과 貢人 등 모든 분야의 상업자본에서 나타나고 있다. 개성의 蔘商들은 삼을 캐는 사람들에게 미리 蔘價를 주고 정해진 날짜에 삼을 받았는데, 이는 원료나 工錢을 선대하고 생산과정에 관계하는 형태였으며, 松商들도 종이나 말총갓을 만드는 장인에게 미리 자금을 선대하고 생산물을 매점하기도 했다.1015) 姜萬吉,<開城商人과 人蔘栽培>(앞의 책).
吳 星, 앞의 책.

 한편 시전상인인 雜鐵廛人은 무기의 원료인 中方鐵에 대한 전매권을 가진 것을 배경으로, 軍器寺에 소속되어 무기를 제조하는 冶匠에 대한 선대제적 지배를 시도하였다. 이를 둘러싸고 야장과 잡철전 사이에 상당한 분쟁이 야기되었으나, 신해통공 이후 야장은 잡철전에 병합되거나 몰락하였다. 또한 驄匠과 床廛 사이에서도 이러한 분쟁이 야기되었다. 총장은 尙衣院에 소속된 工匠으로서 제조업자인 동시에 판매자였다. 그러나 말총갓에 대한 전매권을 획득한 상전인들은 우세한 자본과 광범한 판매망으로 전국의 총물을 매점함으로써, 총장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외에 상의원의 刀子匠과 도자전 사이의 분쟁도 이러한 경과를 거쳐 수공업자인 도자장인이 상인인 도자전인에게 예속되어 갔다.1016) 姜萬吉,<市廛商業의 工匠支配>(위의 책).

 또한 紙廛은 造紙署 紙匠都中뿐만 아니라 지방의 전주·진주·宜寧·淸風등지의 소생산자도 선대제로 지배하였다. 즉 지전에서는 紙匠에게 원료와 공전을 주고 試紙와 方物紙를 주문하였으며, 지전상인의 감독과 지배하에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주문생산의 관행이 반복되고 규칙적일수록 지전에 대한 의존과 예속도는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상인은 고객이 아니라 장인의 물주나 雇主로서 역할하게 되고, 장인은 공전을 받고 생산하는 고용인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1017) 宋贊植,≪朝鮮後期 手工業史硏究≫(서울大 出版部, 1975).

 한편 사찰의 지장으로부터 방물지를 구입하여 호조에 進排하는 三南方物紙契공인은 처음부터 지장에게 紙價를 선대하여 종이를 독점하였다. 지계공인들은 공물납부를 근거로 상납할 방물지 이외에 더 많은 수량을 매점하여 시중에 판매함으로써 독점적 이윤을 획득하기도 했다.1018) 宋贊植,<三南方物紙貢考-貢人과 生産者와의 關係를 중심으로-(上·下)>(≪震檀學報≫37·38, 1974).

 공인 중에 三南月課火藥契공인들은 선대제보다 한발 앞서서 직접 제조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화약계인들은 각종 시설, 도구의 마련에 공동출자하고, 이윤을 분배받았다. 물론 전업적인 장인을 고용하여 각기 능력에 따라 각 공정에 배치하고 각 공정마다 변수를 뽑아 장인들을 감독하였던 것이다. 장인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하여 일정 장소의 제조장에서 작업하게 하는 형태는 상인이 단순한 물주의 지위에서 벗어나 일종의 경영자로 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1019) 柳承宙,<朝鮮後期 貢人에 관한 一硏究-三南月課火藥契人의 受價製納實態를 중심으로->(≪歷史學報≫71·78·79, 1976·1978).

 상인자본의 수공업자 지배형태는 초기에 상인들이 원료를 선대하고, 생산과정에 관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는 각종 장인들이 제조에 필요한 원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권한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신해통공 이전에는 수공업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물건에 대한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하여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었는데 반해, 신해통공 이후에는 대부분 상인에게 예속되어 갔다. 수공업자들은 독립적인 소상품생산자로서가 아니라 상인자본에 예속된 피고용자의 처지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인들의 선대제적 경영과 제조장의 직접 경영은 상인자본의 생산부분에의 투자형태로 이해된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집적수준이 단지 유통부면에서, 즉 계절적, 지역적 가격차를 이용한 양도이윤의 획득이라는 점을 뛰어넘어 생산과정을 장악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이윤확보를 꾀할 정도로 상업자본의 축적수준이 높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高東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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