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4. 서민층의 성장
  • 3) 서민의 문예활동
  • (1) 문학에서의 활동

(1) 문학에서의 활동

 조선시대 문학은 사대부문학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17세기 이후 새로운 문학담당자의 성장으로 위항문학과 서민문학이 성장하였다. 중인들의 위항문학이 사대부문학을 지향했던 것과는 달리 서민문학에는 서민들의 생활과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서민들이 향유했던 예술형태는 구비전승으로 존속해 왔는데 이들 예술형태는 오늘날 민요·민담·가면극·인형극·판소리 등으로 불린다. 대개는 문자로 기록되지 못하고 구비전승으로 내려왔으나 판소리만은 책자로 출판되어 서민들에게 읽혀지게 됨으로써 판소리를 중심으로 서민소설이 성립되어 서민문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394)林熒澤,<閭巷文學과 庶民文學>(≪韓國學硏究入門≫, 知識産業社, 1981), 321∼322쪽.

 이들 예술형태는 음악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만 문학적인 측면에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문학작품 속에는 당대의 가치관과 사회상이 반영된다. 판소리의 사설에는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사회변동 아래에서 현실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는 서민층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숙종 말부터 영조 초에 발생한 판소리가 18세기 형성기를 거쳐, 19세기에는 전성기를 이룬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성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판소리는 당대 사회의 변화를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리하게 투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작품 안에서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서민들의 생활현실과 그들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꿈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395)張錫洪,≪판소리에 나타난 上層志向性 硏究≫(韓國敎員大 博士學位論文, 1993), 66쪽. 뿐만 아니라 판소리는 수용자의 폭을 최대한 넓혀서 상하층의 관심을 모두 한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판소리에는 서민들의 신분상승 의식이 표출되어 있다. 판소리의 주인공 모두가 작품 속에서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고 있다.<춘향가>에서 춘향,<심청가>에서 심청,<흥부(보)가>에서 흥보,<토별가(수궁가)>에서의 토끼가 그러하다.<춘향가>에서 춘향이 어사의 정실부인이 되는 것은 신분상승을 가시화한 것이고,<심청가>에서는 심청이 황후가 되고 심봉사가 國舅가 되고 곽씨부인은 府夫人 加資追贈을 하는 등 서민들로서는 바라기 어려운 신분상승이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흥부가>에서 흥보의 치부는 서민들의 경제력에 의한 신분상승의 의지와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부를 획득한 흥보가 사대부적 생활을 하는 것은 경제력에 의한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토별가>에서 토끼가 자라를 따라가는 것은 높은 벼슬을 바라는 것으로 서민들의 신분상승 의식의 일면이 나타난 것이다. 판소리계 소설에서 이와 같이 주인공들이 신분상승을 이룩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 서민들의 신분상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396)張錫洪, 위의 책.

 판소리에는 또한 서민들의 사회비판의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토끼전≫의 경우 지배층의 무능과 모순된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에서 사회비판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397)印權煥,<토끼傳의 庶民意識과 諷刺性>(≪韓國古典小說≫, 啓明大 出版部, 1974).≪흥부전≫은 빈부양극화 현상의 심화, 신분제의 동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지배층의 부패와 유랑배의 폐해 등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398)전용오,≪興夫傳硏究-文學 및 社會史的 側面에서의 考察-≫(延世大 博士學位論文, 1990).

 판소리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신분상승이나 비판의식은 부를 통해서 신분상승을 이룩할 수 있었던 서민들의 시각이 표현된 것으로 당시 서민들의 욕구와 부합되는 내용이었으므로 크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17·18세기에는 판소리계 소설 이외에 많은 국문소설이 읽혀졌다. 소설의 작자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국문본이든 국한문본이든 거의 다 작자미상이다. 많은 국문소설의 작가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소설을 지었다는 것은 새로운 문학담당층이 등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399)조동일, 앞의 책, 182∼183쪽.

 이러한 변화로 18세기 후반기에 이르면 소설의 유통방식이 달라져 종전에 서로 이야기책을 돌려보고 옮겨 베끼던 데서 필사하는 전문직업이 생겨났으며貰冊店 및 소설을 출판하는 상업출판이 성행하게 되었다. 하층의 부자·상인·가게나 장터에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설 낭독이 인기가 있었고 영업을 하는 직업적인 낭독자가 있었는데 이들의 신분은 미천했다. 세책은 돈을 주고 책을 빌려다 읽는 것으로 여성독자와 더 밀착되어 있었다. 세책가는 부녀자들을 상대로 하여 영업에 아주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지역적인 한계 때문에 아마도 서울에만 성했던 것 같다. 지역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 소설을 판각해서 찍어내는 坊刻本의 출판이었다. 서울을 위시한 안성·전주 등의 상업중심지에서 방각본이 출판됨에 따라 국문소설은 시장망을 통해서 전국에 널리 팔려 독자층이 넓어졌다. 낭독·세책·출판을 통해서 전달되는 방식을 보건대 소설은 상업적인 문학이었다. 따라서 소설의 작자는 직업적 소설가였다고 보아도 무방하고 낭독·세책·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아전 이하의 계층인 것으로 보아 작자 또한 그러하였다고 본다.400)조동일, 위의 책, 184∼187쪽.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서민들의 사회비판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 중 탈춤 즉 가면극이 있다. 탈춤은 상업이 발달된 도시를 중심으로 상인층의 지원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주로 장시에서 공연되어 서민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18세기 중엽 서울의 도시상업이 발달하자 사상도고가 자리잡은 楊州나 松坡와 같은 신흥 상업도시에서는 독자적인 탈춤인 별산대놀이를 키워 나갔다. 양주는 양주목사가 자리잡은 행정중심지이면서 서울 북쪽의 교통상 요로이기에 상업도시로 성장한 곳이며 송파는 경강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시울에서 평양을 거쳐 의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황해도 각 고을-黃州·鳳山·載寧·海州·康翎-이 상업도시로 성장하면서 이 지역에서도 각각 탈춤이 발전했다. 경남의 해안 및 낙동강 연변에는 일본과의 무역 요충지마다 들놀음 또는 오광대라고 하는 탈춤을 키우는 상업도시가 나타났다. 예컨대 晋州·駕山·馬山·統營·固城 등의 오광대가 그러하다. 이들 지역에서는 18세기 중엽 이후 경비를 부담하는 상인들의 후원으로 탈춤이 대단한 규모로 발전하였다. 탈춤은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그리고 서민들의 애환과 감정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401)조동일, 위의 책, 567∼575쪽.

 또한 서민들의 생활과 감정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민요가 있다. 민요는 노래이기에 그 가락은 음악에 속하나 노래의 가사는 문학에 속한다. 민요는 어느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만인의 노래이다.402)任東權,<民謠>(≪우리 民俗文學의 理解≫, 開文社, 1979). 민요는 작자를 알 수 없으나 서민들의 생활현장에서 일어나는 생활감정 및 생각을 즉흥적으로 읊어 저절로 생겨나고 발전된 노래이다. 민요의 주제 중 가장 많은 것이 노동요이며 다음이 婦謠이다. 노동요 중에는 논매기·모내기·밭갈이·나뭇꾼노래 등이 많고, 부요는 시집살이의 설움과 탄식·연정·해학·생활고·살붙이사랑·원망·팔자타령 등에 관한 것인데,403)鄭東華,≪韓國民謠의 史的 硏究≫(一潮閣, 1981), 10쪽. 이는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서민들의 생활과 가사노동에 힘겨워하는 서민 아낙네들의 생활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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