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5. 계의 성행과 발전
  • 3) 조선 후기 계의 제도적 발전

3) 조선 후기 계의 제도적 발전

 계의 변모상은 계의 외형적인 성장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계는 내적 구조, 즉 제도적 측면에서도 현저하게 발전하였다.

 우선 계가 추구하는 목적이 좀더 특정화되고 현실적인 요구에 대응하는 기능성의 강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새로운 종류의 계가 기존의 계로부터 분화되어 나갔으며, 계의 명칭 자체가 훨씬 특정화되었다. 동계의 경우에도 촌락의 공공사업의 수행이나 촌락 공동경비의 마련 등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하려는 방향으로 변화해 갔던 것이다.

 다음으로 조선 후기에는 계의 물질적 토대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계의 「基金(契財)」과 그것에 바탕을 둔 「식리활동」이라는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다.693)金弼東, 앞의 책, 339∼341쪽 참조. 원래 조선 전기의 계에서는 기금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계의 활동과 관련하여 필요한 경비나 물품은 보통 그때그때의 「醵出」에 의해 이루어졌다. 때때로 계의 기금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보통 곡물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계 자체의 기금이라기보다는 촌락의 공동기금이라는 보다 넓은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흔히 「寶上」이라고 불렸던 마을의 「公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보상」의 존재는 17세기 중엽694)≪社約一統≫里社完議의 ‘約條’(1650;吳世昌 등 편, 앞의 책, 337쪽). 이후 사라지고 그 기능이 계 내부의 하위제도로서의 계의 「기금」으로 대체되어 갔다.695)寶上은 고려시대 이래의 「寶」의 잔존형태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계의 발전은 「보」의 遺制의 흡수를 통해 이루어진 일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기금의 구체적인 형태는 곡물, 婚喪具 등 契物, 전답, 금전 등 다양했는데, 많은 경우 각 계의 기금은 이러한 형태들의 복합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대개 곡물이나 계물 등 현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가 후기로 갈수록 전답이나 금전이 우세해졌으며,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금전만으로 기금이 구성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조선 후기의 전기간을 통하여 계의 물질적 토대가 더욱 튼튼해지고 그 활용방법도 훨씬 간편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사회 전반의 상품화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식리활동의 측면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조선 전기의 계에서는 식리활동의 존재가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기금의 존재와 관련해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17세기까지만 해도 미미하게만 보이던 계의 식리활동은 18세기에 이르면 상당히 많아지고, 19세기에 이르면 현저하게 증대되어 식리활동이 없는 계의 사례는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가 되었다.696)金弼東, 앞의 책, 186쪽의<表 Ⅵ-14>‘시대별 식리활동의 有無 정도’참조. 그러나 계에 식리활동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증가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의 기금을 늘리고 그것을 통해 계가 추구하는 목적에 필요한 경비를 좀더 안정적으로 마련한다는 수단으로서 의의를 갖는 것이지, 식리활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계에서의 신분관계 및 지배양상의 변화 또한 주목된다. 이 문제를 계의 중층적 구조의 해소와 계원간의 「처벌」의 성격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하자. 앞에서 살펴본 대로 계, 특히 동계와 송계, 일부 사교계가 상·하계의 중층적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변화를 통해서였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매우 현저해졌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중층적 구조를 갖는 계의 사례는 상당히 줄어들게 되며, 19세기 후반에 가서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계에 있어서, 나아가 사회관계 일반에 있어서 신분적 지배가 약화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신분적 지배의 악화는 계 규약을 위반한 계원 및 계 규약이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 성원에 대한 「처벌」규정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계의 규약에 규정된 처벌의 종류는 계의 종류·사례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으로 黜契 告官治罪·笞刑·罰物·罰金 등을 들 수 있다.697)黜契란 계원의 자격을 박탈하고, 계로부터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告官治罪란 처벌을 官에 맡기는 것이다. 笞刑」이란 매로 체벌을 가하는 것이다. 罰物이란 과실에 대한 대가로 곡물이나 음식물 등을 내놓는 것이다. 罰金은 원래부터 벌금인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처벌을 대신하는 경우도 포함되는데, 이를 「贖錢」이라 했다(金弼東, 위의 책, 174∼175쪽). 그런데 17세기와 18세기의 계의 사례에서는 태형이나 고관치죄·벌물 등의 조항이 처벌규정으로 포함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 비해, 19세기의 계의 사례에서는 이 비율이 낮아지고 대신 벌금조항이 처벌규정으로 포함된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19세기의 계의 사례에서는 비록 다른 처벌조항이 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贖錢」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우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 태형의 조항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698)金弼東, 위의 책, 176쪽의<表 Ⅵ-9>‘시대별 처벌의 내용(종합)’참조. 이것은 역시 앞서 살펴본 계의 중층적 구조의 해소 추세와 더불어 계의 신분적 차별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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