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Ⅲ. 민속과 의식주
  • 1. 촌락제의와 놀이
  • 3) 세시풍속

3) 세시풍속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 기록은≪東國歲時記≫·≪洌陽歲時記≫·≪漢陽歲時記≫·≪農家月令歌≫·≪東國輿地勝覽≫등이 있다. 이들 문헌기록을 종합하여 월별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단 제의와 놀이는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생략한다.

 새해의 첫날 설날의 행사는 차례·세배·성묘로 이어지니 조상숭배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각 가정에서는 설빔으로 갈아 입고 사당에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하는데 기제사와는 달리 單盞으로 4대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長幼의 서열에 따라 어른께 새해 첫 문안의 절을 하는데 세배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음복으로 떡국을 먹고 반주를 한잔 마시니 세주이다. 그런 다음에 일가 어른과 마을 어른을 찾아가서 새해 세배를 드린다. 유교에서는 예의를 으뜸으로 삼았으니 새해의 첫 행위는 의례로부터 시작되고 인간 교양의 기본으로 여겼다.

 조정에서는 의정대신 이하 모든 관원들은 대궐에 나아가 문안을 드리고 正殿에 나아가 朝賀를 올렸다. 8도리 관찰사·병사·수사·목사도 箋文과 방물을 바치며 주·부·군·현의 호장도 모두 와서 班列에 참례하였다.

 圖畵署에서는 壽星·선녀·直日神將의 그림을 그려서 임금에게 올리고, 서로 선물하는데 歲畵라고 했다. 대궐 대문에는 세화로 門拜를 하는데 金·甲의 두 장군상을 그려서 붙이고, 붉은 도포와 까만 상모를 쓴 상을 그려 궁궐의 겹대문에 붙였다. 또 鍾馗가 귀신을 잡는 그림을 문에 붙이고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하였는데. 모두 액과 나쁜 질병을 물리치고자 하는 주술적인 뜻이 있었다.

 朝官과 命婦로서 나이가 70세 이상 된 사람에게는 새해에 쌀·물고기·소금 등을 내리고, 조관으로 80세가 된 사람과 백성으로 90세가 된 사람은 한 등급을 올려 주었다. 특히 100세가 되면 한 품계를 승진시켜 주어 대접했다. 노인을 우대하는 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항간의 백성들 가정에서는 호랑이와 장닭그림을 대문이나 벽에 붙였으니 대궐에서와 마찬가지로 辟邪의 뜻이 있었다.

 남녀간에 三災를 당한 사람은 매 세 마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면 재액이 없어진다고 해서 성행했다. 삼재란 巳·酉·丑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亥·子·丑이 되는 해에, 申·子·辰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寅·卯·辰이 든 해에, 亥·卯·未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巳·午·未가 든 해에, 寅·午·戌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申·酉·戌해에 각각 삼재가 든다는 것이니 재액을 막기 위해서 벽사를 하였다. 삼재는 9년마다 들고 삼재가 든 해에는 무슨 일이고 자중하고 근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초에 세배꾼들이 찾아오면 좋은 일이 있도록 덕담을 하고 벽사하는 좋은 말로 축하하고 격려를 했다.

 설날 아침에 복조리를 사고, 첫번째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일년 있을 길흉을 점치는데 聽讖이라고 했다. 까치를 吉鳥로 여겼기 때문에 설날 맨 먼저 까치소리를 듣는 것을 대단한 吉兆로 여겼다.

 옛날에는 남녀 모두 머리털을 자르지 않아서 빗질을 할 때면 머리털이 빠지게 되는데 이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설날 황혼이 질 무렵에 문 밖에서 태우면 나쁜 질병이 물러간다고 하였는데 燒髮이라고 했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과 벽사사상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설날 밤 하늘에서 夜光鬼란 귀신이 인가에 내려와서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제 발에 맞는 것이 있으면 신고 간다고 하였다. 신을 잃은 아이는 일년 동안 신수가 좋지 않다고 하여 신발을 방안에 들여놔 감추고 잔다. 야광귀를 예방하기 위해서 뜰에 장대를 세우고 꼭대기에 체를 달아매 둔다. 그러면 야광귀가 내려와서 체의 눈(구멍) 수를 헤아리게 되는데 구멍이 너무나 촘촘히 있어 한참 세다가 어디까지 세었는지 알 수 없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세게 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사이에 날이 새게 되어 미처 신을 가져가지 못하고 하늘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설날 여러 절에서는 승려가 法鼓를 치고 내려와 염불을 하고 방울을 울리면 사람들이 돈을 준다. 또 상좌승이 齋를 올리고 민가에 나아가 동냥을 한다. 光州에서는 경하의 뜻으로 日月辰에게 절을 하고 고사지낸다. 제주도에서는 산·들·돌·나무·냇가·늪·연못·바위·물가 등지에 신의 사당을 짓고 제사한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사이에 巫覡인 神纛을 받들고 나례를 행했다.

 정초의 일진에 따라 여러 행사가 있었다. 정월 7일을 人日이라 하여 임금은 구리로 만든 거울을 閣臣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인일에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뽑았으니 人日製라 불렀다. 태학의 출석이 좋은 유생에게 응자격을 주었다. 명절에 선비를 시험하는 것은 인일 외에도 3월 삼짇날·7월 칠석날·9월 중구에도 있었으니 節日製라고 했다.

 上亥日 즉 「돼지날」과 上子日 즉 「쥐날」에 궁중에서 젊고 지위가 낮은 내관들 수백 명이 횃불로 땅을 이리저리 내저으면서 ‘돼지 주둥이 지진다’고 외치면서 돌아다녔다. 또 곡식의 씨를 태워서 주머니에 넣어 宰臣과 近侍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가 풍년들기를 비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골에서는 쥐날에 콩을 볶으면서 ‘쥐 주등이 지진다. 쥐 주등이 지진다’고 주문을 외는데 쥐가 곡식을 해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충청도지방에서는 논둑·밭둑을 태우기 위해서 횃불을 휘두르면서 청소년들이 다니는데 쥐불놀이라 했다.

 卯日 즉 「토끼날」에 새로 뽑은 실을 兎絲라고 한다. 이 토사를 주머니 끝에 달아매면 재앙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식구가 아닌 남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특히 여인의 출입을 금기한다. 또 나무로 만든 그릇이 들어오는 것은 막는다. 巳日 즉 「뱀날」에는 이발을 하지 않는데 뱀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上元 즉 대보름은 새해 들어 첫 만월의 날이며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있다. 찹쌀을 쪄서 대추·밤·기름·꿀·간장 등을 섞어 찌고 잣을 박은 것을 약밥(藥飯)이라 한다. 약밥으로 제사를 지내니 신라의 옛 풍속이 전한 것이었다. 지금의 오곡밥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농가에서는 禾積을 세운다.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드는데 그 속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집어 넣고 목화를 장대 위에 매달아 새끼줄로 고정시킨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산간 마을에서는 가지를 친 나무를 외양간 옆에 세워 두고 곡식의 이삭과 목화를 걸어 둔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이 나무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빌기도 하는데 해가 뜨면 그쳤다.

 보름 전날 밤에 당년 羅睺直星 즉 厄年이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드는데 처용 또는 추영이라 한다. 액을 막기 위해 제웅 머리 속에 동전을 넣어서 길가에 버린다. 아이들이 동전을 얻으려고 제웅을 얻어서 돈을 빼고 길가에 버리는데 打芻戱라 했다. 이런 풍속은 신라 헌강왕 때의 處容故事에서 생긴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청·홍·황의 세 색깔을 칠한 조롱박 세 개를 차고 다니다가 14일 밤에 길가에 버리는데 액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 보름날 새벽에 종각 네거리에 가서 흙을 파다가 자기 집 네 귀퉁이에 뿌리거나 부뚜막에 바르는데 흙으로 인연해서 재산이 불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보름날 새벽에 부럼을 깨문다. 밤·은행·호두·잣 등을 깨물어 먹지 않고 마당에 버리면서 ‘일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하고 빈다. 의주지방에서는 사탕을 깨물었으니 齒較라고 했다.

 대보름날 아침이 술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마셨다. 보름날 오곡밥은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는다. 밥은 김이나 배추에 싸서 먹는데 복쌈(福菜)이라 하였다.

 보름날 아침에 더위팔기(賣暑)를 한다. 친구의 이름을 불러서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게’한다. 이렇게 하면 더위를 판 셈이다. 더위를 판 사람은 여름에 더위 먹지 않고 지낼 수 있지만 더위를 산 사람은 두 사람 몫의 더위에 시달리게 된다. 더위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지혜있는 놀이로 발전했다.

 봄철에는 햇볕에 살이 검게 타고 몸이 마르게 된다. 그래서 이를 미리 막으려고 아이들에게 백 집의 밥을 얻어다가 절구에 타고 앉아 개를 마주 보면서 개와 아이가 한 숟갈씩 번갈아 먹도록 하였다. 한편 개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 풍속도 있었다. 개가 밥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꾀고 마르기 때문이다. 속담이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嫁樹라 해서 나무 시집보내기가 있다. 과수의 가지친 곳에 돌을 끼워 두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해서 특히 대추나무에 흔히 했다. 풍작을 기인하는 것이다.

 보름날 밤에 방마다 불을 밝혀 두고 밤을 새우는데 마치 守歲 때와 같다. 한편 무당이나 장님을 불러 安宅經을 읽으며 밤을 새워 복을 빌고 액을 막으려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정초에는 일년 신수나 농사의 풍흉을 미리 알고자 하여 점을 치는 일이 많았다. 점치는 방법은 보리뿌리가 얼마나 자랐는가로 보리의 작황을 점치는 麥根占, 윷놀이로 점괘를 얻어 점치는 윷점, 줄다리기의 승부로 점치는 풍년점, 五行으초 괘를 얻어 점치는 오행점, 보름날 달의 부름(月滋)과 색깔을 보아 점치는 달점(月占), 李土亭의 비결로 일년 신수를 점치는 土亭秘訣, 밤중에 재와 곡식알을 접시에 담아 지붕 위에 올려 놓고 다음날 어느 곡식이 풍년이 들 것인가를 점치는 법, 꼭두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들어 몇 번 우는가에 따라 풍흉을 점치는 법 등 다양하다. 황해도·평안도에서는 새벽에 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바가지를 가지고 우물에 가서 井華水를 길어오는데 撈龍卵이라 한다. 맨 먼저 긷는 사람이 그 해에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점이 농사의 풍흉을 미리 알고자 豫兆를 얻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농경민족으로서 농사의 풍흉이 생활을 좌우하기 때문에 점복에 매우 심각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立春날에는 대궐에서 입춘문을 써서 붙이는데 春帖子라고 하였다. 사대부와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春聯을 붙이고 송축을 한다. 이것을 춘축이라 하였다. 觀象監에서 朱砂로 벽사문을 써서 대궐에 올리면 대궐에서는 문설주에 붙인다. 춘첩문은 對句를 쓰고 여염집에서는 기둥이나 문설주에 두루 對聯을 쓴다. 때로는 單帖도 하고 옛사람의 좋은 글귀를 따다가 쓰기도 한다. 그 내용은 복받고, 가내 평안하고, 자손번창하고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는 경우가 많다.

 설을 쇠기 위해서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가 새해 들어 문을 다시 여는데 대개 毛虫日에 열고 특히 寅日에 여는 일이 많다. 벌레의 털이 있음은 번성을 뜻하며, 호랑이날에 문을 여는 것은 맹수라는 것과 털이 많다는데 번성을 기대한 것이었다.

 2월 초하루는 中和節이라 해서 나라에서는 中和尺을 만들어 재상과 시종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는 반죽이나 이깔나무로 만들었다.

 대보름날에 뜰에 세웠던 화적을 헐어서 그 속에 넣었던 곡식의 이삭으로 떡을 만든다. 크게는 손바닥만하게 작게는 계란만하게 만드는데, 콩을 불려서 소를 만들어 넣고 시루 안에 솔잎을 겹겹이 깔고 찐다. 푹 익힌 다음에 꺼내어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바른다. 이것을 송편이라 한다. 송편을 종들에게 나이수대로 먹였기 때문에 머슴날(奴婢日)이라 불렀다. 농사일이 이 때부터 시작되므로 노비에게 먹여 위로하는 것이다.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종이를 잘라 ‘香娘閣氏 千里速去’라고 써서 서까래에 붙인다. 이렇게 하면 노래기가 없어진다고 믿었다.

 영남지방에서는 집집마다 제사를 지냈으니 「영등할머니」를 제사한다는 뜻에서 靈登祭라 했다. 영등신이 무당에게 내리면 그 무당은 동네를 나들이하는데 사람들이 다투어 불러들여 즐겼다. 영등신은 초하루부터 20일까지 있는데 사람들을 꺼려 만나지 않는다.

 제주도 풍속에 2월 초하룻날 귀덕·금녕지방에서는 장대 열두 개를 세워놓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냈다. 애월지방 사람들은 나무로 말 머리 모양을 만들어 채색 비단으로 꾸며서 약마희를 했다. 신을 즐겁게 하는 娛神이니 보름까지 한다. 이것을 연등이라고 한다.

 3월 3일은 삼짇날(三辰日)이라고 한다.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만든다.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가늘게 썰어 오미자국에 띄워 花麵을 만든다.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드는 水麵도 있으니 모두 계절음식이었다.

 진천지방에서는 삼짇날부터 4월 초파일까지 무당을 데리고 우담에 있는 동서의 용왕당과 삼신당에 가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빈다. 그 행렬이 일년 내내 끊어지지 않아 시장을 이룬 것 같았다.

 淸明날에는 버드나무에 불을 붙여 각 관청에 나누어 주었고 농가에서는 봄 농사가 시작되었다.

 寒食날에는 조상의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제물은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을 올리니 한식차례이다. 한식날에 찬밥을 먹는 풍속이 있는데 중국 춘추시대 介子推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서울 속담에 南酒北餠이라 하였으니 남산 아래서는 술을 잘 빚고, 북쪽에서는 좋은 떡을 많이 만들었다. 네번째 말날에 술을 거푸 담그면 봄이 지나자마자 익고 일년이 넘어도 맛이 변하지 않으니 4馬酒이다. 채소장수가 배추의 새싹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소리쳐서 판다. 이것을 菁根商이라 하고, 蔓菁도 새로 나와 파는데 모두 계절음식이다. 사람들이 야외로 나가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를 즐기니 花柳 또는 踏靑이라 부른다. 남원지방에서는 龍潭이나 栗林에 모여 술을 마시고 활을 쏘는 것으로 예를 삼았다.

 강릉지방에서는 70세가 넘은 노인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경치 좋은 곳에 모셔다가 대접을 하고 즐기게 하는데 靑春敬老會라고 한다. 龍安풍속에 봄이 되면 鄕飮酒禮를 행한다. 이 때 8∼90세, 6∼70세, 50세 이상으로 구분해서 세 자리를 만들고 誓文을 낭독하는데 다음과 같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를 물리치고, 형제간에 불화한 자를 물리치고, 벗 사이에 불신한 자를 물리치고, 조정을 비방하는 자를 물리치고, 수령을 비방하는 자를 물리친다. 첫째 덕업을 서로 전하고, 둘째 잘못을 서로 깨우치며, 셋째 禮俗을 서로 도와 이루고, 넷째 환난을 서로 救恤한다. 무릇 동향인은 각각 孝友忠信을 더하여 모두가 두터운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이렇게 읽은 다음 다함께 두 번 절하고 술을 마시며 활쏘는 예식을 행했다(≪新增東國輿地勝覽≫권 34, 龍安縣 風俗 行鄕飮酒禮).

 제주도 풍속에 매년 봄철에 남녀가 廣壤堂·遮歸堂으로 모여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 곳에서는 뱀·독사·지네 등이 많으나 흰뱀을 보면 遮歸神이라 해서 금기하고 죽이지 않았다.

 괴산의 淸安에서는 3월 초에 고을관장이 읍민을 거느리고 國師神을 長鴨山 위의 큰 나무로부터 맞이하여 읍내로 들어온다. 무당으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하고 굿을 하게 하였다. 20여 일이 지난 뒤에야 신을 그 전의 큰 나무로 돌려보냈다.

 3월의 전후에 穀雨가 들어 있다. 곡우날에 못자리를 하고 벼농사가 시작된다. 한강에 가서 貢指란 고기를 잡아 회를 치거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하였다.

 4월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이다. 저녁에 등에 불을 밝히는 풍속이 있다. 며칠 전부터 마당에 등대(燈竿)를 세우고 위를 꿩의 꼬리털로 장식하고 기를 만들어 단다. 등은 자식의 수만큼 만들어 추녀 밑이나 기둥에 달아맨다. 사치하는 집에서는 큰 대나무를 수십 개씩 세우거나 五江의 돛대를 얻어다 받침대로 사용한다. 일월권을 꽂아 바람에 따라 돌아 눈부시게 하고 회전등을 매달아 빙빙 도는 것이 마치 총알같이 보인다. 종이로 화약을 싸서 줄에 매어 위로 솟구치게 하면 화살같이 火脚이 흩어져 내려오는 것 같다.

 초파일은 민가에서도 연등을 하고 아이들은 종이를 등에 매달아 깃발을 만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쌀이나 돈을 얻어다 쓰는데 呼旗라고 했다.

 등은 만들어진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니 수박등·마늘등·연꽃등·칠성등·오행등·일월등·공등·배등(船燈)·종등·북등·누각등·난간등·화분등·가마등·머루등·병등·항아리등·방울등·알등·용등·봉등·학등·잉어등·거북등·자라등·사자등·호랑등·壽福등·태평등·만세등·남산등 등이 있다. 등에는 채색을 하거나 飛仙·花鳥를 그려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도 있다.

 鍾街에는 등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많았으나 값이 비쌌으며 등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초파일에는 연등을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다. 장안 사람들이 남북의 산에 올라가 등 달아 놓은 것을 구경한다. 어떤 이는 악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놀고 떠들썩하게 밤을 새운다.

 장안 밖의 시골 노파들은 서로 다투어 남산 蠶頭峯에 올라가 연등 광경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石南잎을 넣어 만든 증편과 볶은 콩과 미나리를 넣은 음식을 먹는데 이것들은 초파일 음식이다.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빗자루로 쳐서 소리를 내기도 하니 물박치기이다.

 5월 5일은 端午날이다. 나라에서는 쑥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들어 閣臣에게 하사했다. 工曹에서는 부채를 만들어 나라에 바쳤으니 단오선이다. 임금은 부채를 재상·시종과 각 궁에 속한 하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챗살은 4∼50개였고 칠을 한 것은 漆貼이고, 횐 것은 白貼이다. 백첩을 받으면 금강산을 그렸고 기생이나 무당은 버들가지·복사꽃·연꽃·나비·붕어·해오라기 등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사와 통제사는 節扇으로 부채를 진상하고 고관이나 친지에게 선사하였다. 부채는 全州와 羅州의 南平에서 잘 만든다. 부채는 만드는 재료와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고 기름을 바르거나 검누런 칠을 한다. 色扇은 부녀자와 아이들이 갖는다. 부채는 바람을 일게 하고 햇볕을 가리며 파리나 모기를 쫓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관상감에서 朱砂로 붉은 부적을 만들어 대궐에 올리면 대궐 문설주에 붙여 재액을 막게 했다.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內醫院에서는 玉樞丹과 醍醐湯을 만들어 나라에 진상하였고, 왕은 신하들에게 하사하여 약으로 쓰고 재액을 면하도록 했다. 옥추단을 오색 실로 꿰어 차고 다니면 재액을 막게 된다는 것이다.

 남녀 어린이들은 舊蒲湯을 만들어 세수하고 홍·녹색의 새 옷을 입는다. 창포뿌리로 비녀를 삼고 연지를 바르며 壽·福의 글자를 새긴다. 단오날 수리치떡을 해서 먹고 익모초를 뜯어 두었다가 약으로 쓰고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했다.

 단오의 놀이에는 남자의 씨름과 여자의 그네뛰기가 있다. 軍威에서는 金庾信장군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三陟에서는 烏金으로 만든 비녀를 제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강릉에서는 대관령의 서낭신을 모셔다가 제사지내는 단오제가 전승되고 있다.

 5월 10일은 태종의 제삿날인데 이날 비가 오면 太宗雨라 이르고 5월에는 장을 담그는데 辛日은 피하였다.

 6월 15일은 流頭날이다. 동쪽에서 흐르는 개울에서 머리를 감는다. 수단·건단·冷食匋를 해서 먹고 제사도 지냈다.

 6월 三伏에는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개를 잡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개장을 먹었다.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초복·중복·말복에 먹었으니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더위를 피하여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쉬고 남산과 북악 계곡에 가서 탁족놀이를 했다.

 7월 7일은 七夕이라고 한다. 장롱에 있는 옷을 꺼내서 햇볕에 말린다. 15일은 中元 백중[百種]날이다. 100가지 음식·과일을 차리고 薦新을 한다. 충청도지방에서는 노소를 막론하고 거리에 나가 마시고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씨름도 했다.

 8월 15일은 추석이다. 신라 유리왕 때 두레 길쌈을 하여 그 승부를 가리고 노래와 춤으로 즐겼는데 이를 嘉俳라고 했다. 햅쌀로 술을 빚었고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토란으로 단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밤단자 만드는 법과 같았다. 충청도에서는 피로를 풀기 위하여 씨름대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차려 먹고 마시고 즐겼다.

 9월 9일은 重九라고 하는데 국화꽃을 따서 화전을 만든다. 유자·석류·잣을 잘게 썰어 꿀물에 타서 화채를 만들어 먹으니 시절음식이다. 서울풍속에 남산·북악에 올라 단풍구경을 하면서 마시고 먹고 즐겼다.

 10월은 상달(上月)이라 하여 민간에서는 무당을 불러다 成造神을 맞이하여 떡과 과일을 차려 놓고 집안의 평안을 빌었다.

 내의원에서는 우유로 만든 가공식을 진상했다. 10월 午日은 「말날」이라 해서 팥으로 떡을 해서 외양간에 놓고 신에게 기도하여 말의 건강을 빈다. 丙午日은 병과 통하므로 금기하고 戊午日이 가장 좋다.

 10월 20일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孫乭의 고사에 따라 손돌바람이라고 하였다.

 서울풍속에 숯불화로에 갖은 양념한 쇠고기를 구어 먹으니 煖爐會라 하고, 고기에 무·오이·훈채·계란을 섞어 탕을 만드니 悅口子神仙爐라 한다. 10월에 김장을 담그며 속리산 꼭대기의 大自在天王을 법주사에 모셔다가 음악을 베풀고 제사를 지냈다.

 10월에 靑魚를 종묘에 천신하는데 사대부가에서도 그렇게 했다. 제주목에서는 귤·유자·귤감을 진상했다. 그러면 종묘에 올리고 각 궁의 하인들과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다. 귀한 과일을 받은 것을 치하해서 성균관·4학의 유생들에게 시험을 치른 후 귤을 나누어 주었으니 그 과거의 이름을 柑製라 했다.

 11월에는 冬至가 들어 있어 동짓달이라고 한다. 팥죽을 쑤어 문짝에 뿌려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 내의원에서는 煎藥을 만들어 진상하고 각 관아에서도 만들었다. 관상감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올리면 모든 관아에 나누어 준다. 관원은 이를 고향의 친지·묘지기·농토관리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洪州 合德池에서는 매년 겨울이 되면 연못이 얼어붙어 용이 땅을 갈아 놓은 것 같은 이상한 변이 생겼는데 그 상태를 보아 다음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12월 셋째 未日을 臘日로 정하고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다. 臘享에 쓰는 고기는 산돼지와 산토끼였다. 경기도내 산간의 수령들은 산돼지나 산토끼를 잡아서 바쳤다. 내의원에서는 각종 환약을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臘藥이라고 했다. 임금은 납약을 근시와 至密內人(나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약은 청심환·安神丸·蘇合丸 등이었다.

 민간에서는 어린이에게 참새를 잡아 먹이면 마마를 깨끗하게 한다고 하여 참새를 잡았다. 납일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은 약으로 쓰며, 눈물에 적셔 두면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섣달 마지막 날은 除夕이다. 2품 이상의 관리와 시종들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 해의 문안을 올린다. 사대부집에서는 사당에 참례한다. 연소자는 친척어른들을 방문하여 묵은 세배를 한다. 밤중까지 등불을 밝혀 들고 다녔다.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부터 대포를 쏘는데 연종포라 한다. 화전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것은 곧 大儺로 역질이나 귀신을 쫓는 행사의 하나이다. 또 폭죽을 터뜨려 귀신이 놀라서 달아나게 한다.

 제석날 밤에 민간에서는 방·부엌·다락·마루 등에 등잔불을 밝혀 놓는데 마치 대낮 같고 잠을 자지 않고 새우니 이것이 守歲다. 속설에 제석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여진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윷놀이를 즐겼다.

 항간의 부녀자들은 널조각을 짚단 위에 올려 놓고 양쪽 끝에 마주 서서 뛰며 즐겼으니 널뛰기이다. 함경도 풍속에 永燈을 만드는데 마치 원기둥 안에 기름심지를 해 박은 것 같다.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儺戱를 행하였으니 靑壇이라 했다. 평안도지방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었다.

 윤달(閏月)에는 모든 일을 꺼리지 않아 혼인하기 좋고, 수의를 만들었다. 서울의 奉恩寺에서는 장안의 여인들이 와서 불공을 드렸고 다른 지방에서도 같은 풍속이 있었다.

<任東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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