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Ⅲ. 민속과 의식주
  • 2. 의식주생활
  • 1) 의생활
  • (3) 의료의 수급체제와 직조

가. 시전과 난전

 市廛은 서울 중심가인 종로 길가에 설치되었던 상점으로, 태종 때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정조 원년(1777)에는 800여 행랑이 있었다.758)≪東國輿地備攷≫권 2, 漢城府 市廛.
≪萬機要覽≫財用篇 5, 各廛.
시전상인들은 어용상인으로 궁이나 관청을 비롯하여 중국에 보내는 물건을 공급하는 전매특권을 가진 반면 국역을 부담하였다. 시전 중 큰 것은 線(縇)廛·綿布廛·綿紬廛·苧布廛·紙廛·內外魚物廛·靑布廛 등이었는데 이들을 六矣廛(六注比廛)이라고 하였다. 시전은 수익 수준에 따라 세금을 내는 有分各廛과 세금이 없는 無分各廛으로 나뉘었고 이 가운데 가장 번창하였던 것은 수요가 가장 많았던 직물류와 종이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의생활과 관련되는 직물류를 판매하는 시전은 대개 유분각전이었다. 그 중에서도 선전은 비단을 파는 곳으로 立廛이라고도 하였는데 모든 전의 으뜸으로 42방이나 되었으며 주로 중국비단을 팔았다.

 포전(또는 저전)은 모시와 삼베를 파는 시전으로 모시는 지금의 종로 3가쪽에, 삼베는 남대문로 1가족에 있었다. 여기서 거래되었던 삼베는 품질이 다양하였으며 생산지명을 따서 六鎭布·永春布·安東布·海南布·倭布·唐布 등으로 불렸다.

 면포전은 무명을 파는 곳으로, 銀木廛·白(百)木廛이라고도 하였으며 면의 품질은 전라도 康津木·海南木, 경기도 高陽木을 상품으로 쳤다.

 면주전은 명주와 국산비단을 취급하였으며 지금의 종로 1가에 있었다.

 청포전은 주로 중국물산을 다루는 곳으로 바늘·담요·털옷·약·모자·당류 등을 팔았는데, 정조 18년(1794)에 注北廛의 자격을 잃었다.

 이 밖에 유분각전으로 衣廛(古着廛)·綿子廛·履廛, 갓끈이나 주머니끈 등을 파는 眞絲廛, 비녀나 다리꼭지를 파는 髢髻廛, 말총이나 가죽·鄕絲·실 등을 파는 床廛 등이 있었다.

 17세기 이후 私商人이 출현하기 시작하여 영조대에는 亂廛이 늘어나며, 18세기 말에는 종루·배오개·七牌 등에 시장이 생김에 따라 시전은 차츰 세력을 잃게 되었다. 난전의 상인은 수공업자 및 일반 도시인들과 거래하고 중국이나 일본상품의 거래도 활발하게 하였다. 또한 난전의 발생은 5일 시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됨과 동시에 직물교류의 폭이 넓어지면서 일반 서민의 의생활분야도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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