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崇儒排佛을 국책의 하나로 삼았고, 16세기부터는 숭유주의자들이 양반관료사회를 형성하여 식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자들은 차가 불교를 상징한다고 하여 차마시기를 기피해 飮茶 풍속을 없앴다. 그러나 일부 남부지방 사찰의 스님들과 귀양중의 학자·예술인 등 사이에서 음다의 풍류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음료는 필수적이므로 숭늉을 마셨지만 아쉬움이 있어 막걸리를 요기삼아 늘 먹게 되었다.
유밀과는 불교의 供佛이라고 하여 금지되었다.≪經國大典≫에서는 “獻壽·혼인·祭享 때 외에 유밀과를 사용한 자, 가로에서 공불하는 자 등은 곤장 60대에 처한다”766)≪經國大典≫권 5, 刑典 禁制.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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