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인물성구동론(낙론)의 전개

(3) 인물성구동론(낙론)의 전개

 李柬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동론을 주장하여 主理的 입장을 취함으로써, 한원진 등의 이론에 맞서 인물성동이론의 문제를 심화시켰던 사실은 선행하던 인물성동이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높여 조선시대 성리학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간은 호서학풍에서 성장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나 자신의 성리학적 신념은 스승 권상하의 견해와 상반되고 있음에도 굽히지 않고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성리설은 현실적 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은 서울 주변의 近畿학풍에 연결되었으며, 李恒老의 경우에 볼 수 있듯이 한말 畿湖性理學의 主理論的 전개양상에 단초를 열어 주었다.

 이간은 성을 본연(一原)과 기질(異體)의 두 측면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동론의 근거를 본연지성에서 확인한다. 곧 “本然으로 말하면 性과 命이 진실로 인간과 만물에 따라 서로 다름이 없다”029)李 柬,≪巍巖集≫ 권 7, 書 答韓德昭別紙 未發詠.고 하며, ‘본연’은「性卽理」의 개념에 따라 形氣에 가까이 있으면서 형기를 넘어서 천리를 가리키는 것이라 본다. 여기서 본연은 율곡의 理通氣局說에서 ‘理通’개념이나 주자의 理同氣異說에서 ‘理同’개념과 같은 뜻이며, 형기 속에서 천리를 구별해 낸 것으로서, 인간과 만물이 모두 같은 천리를 받고 있으며 같은 본연지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따라서 본연지성은 ‘일원’으로 파악된다. ‘일원’은 천리와 오상이 모두 형기를 초월할 수 있어서 인간과 만물 사이에 偏·全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 본연 내지 일원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질지성에서 인성과 물성의 차이가 생기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氣質로 말하면 인간은 氣의 바르고(正) 소통함(通)을 얻은 존재이고 사물은 氣의 치우치고(偏) 막힘(塞)을 얻은 존재이며, 바르고 소통하는 (인간의 성품) 가운데도 淸·濁·粹·駁이 나누어지고, 치우치고 막힌 (사물의 성품) 가운데도 혹은 통하기도 하고(或通) 전혀 막히기도 하는(全塞) 구별이 있으니, 인간과 사물의 ‘異體’에는 무수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李 柬,≪巍巖集≫권 7, 書 答韓德昭別紙 未發詠).

 곧 異體의 기질지성에는 인성과 물성에 편·전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물에도 개의 성과 소의 성이 다르고 같은 인간들 사이에도 聖人과 凡人에 따라 편·전이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는 본연과 기질을 성의 두 차원으로 보는 입장에서 한원진이 命을 本然之理라 하고 성을 기질지성이라 하여 본연을 이라 보고 기질만 성으로 인정함으로써 판연히 구별하고 있는데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한원진이 성품을 기질에 말미암거나 기질과 뒤섞인 것으로 규정하여 인성과 물성이 기질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차별성만을 보는데 대해, 이간은 기질지성의 측면에서 차이를 인정하지만 본연지성의 차원에서 인간과 사물의 성이 일치하는 측면을 주목한 것이다. 또한 전자는 오상이 인간의 성품에만 갖추어져 있고 사물(짐승)의 성품에는 오상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이간은 인간과 사물이 공유하는 본연지성의 차원에는 천명(太極)과 健順五常(陰陽·五行의 理)이 내포되어 있음을 밝혔다.030)李柬은 健順五常을 陰陽五行의 理라 보아 理의 보편성에 상응하여 健順五常이 人과 物에 갖추어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비하여, 韓元震은 五常을 五行의 기질적 조건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 人性에만 갖추어 있고, 物性에는 치우쳐 있다고 보는 것으로, ‘五常論’이 人物性同異論의 중요한 쟁점의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이간은 心개념을 合理氣로 파악하며, 발동하기 이전의 마음(未發心體)은 심의 湛然虛明한 明德이요 이로서 파악하기 때문에 본래 선한 것이라 보는 ‘未發心體-本善說’을 취하며, 한원진은 발동하기 이전의 마음에도 기질이 있으며 그 기질에 따라 선·악·미·추의 차이가 있다는 견해로서 ‘未發心體-有善惡說’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예리한 쟁점에서 대립하고 있다. 같은 논리에 따라 전자는 본연지성에서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다는 聖凡心同說을 내세우는데 반하여, 후자는 성에 기질이 있다는 전제에서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다르다는 聖凡心不同說로 맞섰던 것이다.

 玄尙璧(1673∼1731, 冠峰)은 이간의 견해와 같이 오상을 오행의 理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한원진의 異論에 동의하는 스승 권상하에게 다음과 같이 보낸 서신에서 이론의 입장을 理氣不相離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 지적하면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만약 ‘사람과 만물이 五行의 氣는 均得하였으나, 五常의 德은 均得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天地間에 혹은 理 없는 氣가 있고 법칙이 없는 사물이 있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까(玄尙璧,≪冠峯集≫권 2, 書 上遂菴先生).

 주자가 언급한 “만물의 一原에서 보면 理는 같고 氣는 다르며, 만물의 異體에서 보면 氣는 오히려 가까우나 理는 결단코 같지 않다”는 말을 근거로, 그 자신은 일원의 관점에 서서 동론을 주장하는 동시에 스승 권상하는 인과 물이 다르고 성인과 盜拓이 서로 다르다는 이체의 관점에 서 있는 것으로 규정하여 인물성동이론의 쟁점을 일원과 이체의 관점 문제로 집약시키고 있다.031)玄尙璧,≪冠峯集≫권 2, 書 上遂菴先生. 또한 현상벽은 심개념에서도 심을 神이라 하여「性理心神說」을 주장하거나 또는 심을 ‘性과 氣를 합하여 一身에 주재하는 것(合性與氣而主宰於一身者)’이라 정의함으로써 ‘心卽氣’를 기초로 하는 한원진 등 이론의 입장을 거부하였다.032)劉明鍾, 앞의 책(1985), 146∼147쪽.

 人物性同異論의 전반적 특징을 돌아보면 성을 이로 볼 것인가 기(氣質)에 근거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를 묻는 이기론적 해석은 번쇄한 관념논쟁의 성격을 띠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쟁점이 지닌 시대사상적 의미가 크다.

 인간과 짐승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성품을 갖는다는 동론의 경우는 동일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차별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과 사물 사이에 도덕적 차별성에 대한 요구가 약하다. 또한 동론은 인간과 사물의 공통근거인 성을 이요 본래적인 선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인간과 사물 사이에 도덕적 근거를 차별화하거나 단절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사물 내지 자연에로 열려 있는 개방적 세계관을 지니게 되며, 그 시대의 구체적 현실에 밀착하는 실학적 문화를 열어 주고 있다. 北學派의 실학자들은 동론의 입장을 취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이론의 경우에서는 인간과 사물(자연) 사이에 도덕적 규범의 단절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 성품의 특수화를 강화하게 되고 사물의 도덕적 결함에 거부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정통주의적 엄격성을 심화시켜 폐쇄적 문화를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또한 이론의 입장은 인간의 성품에서도 기질의 선악이 혼재하는 것으로 보아, 인간존재의 도덕적 자율성을 억제하고 도덕규범의 권위에 의한 인간의 도덕적 견제를 강화하는 권위적 규범문화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호서지역의 도학적 엄격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는 배타성은 이 시대 성리학의 이론이 폐쇄적 사유방식과 사회기풍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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