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2) 조선양명학의 성립

(2) 조선양명학의 성립

 장유는 중국식 양명학을 조선식 양명학으로 전환하게 한 중요한 인물이다. 장유는 형조판서 張雲翼을 아버지로 판윤 朴崇元의 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고, 남언경의 사위인 黃坤厚의 아들 黃裳이 장운익의 사위가 되어 장운익과 황곤후는 사돈간이 되고 황상은 장유에게는 매부가 되는데102)池斗煥, 앞의 글, 도표 3 참조. 이러한 관계에서 쉽게 양명학을 접했으리라 본다. 이와 더불어 장유는 북벌론의 수장 金尙憲의 형님인 仙源 金尙容의 사위로서 月汀 尹根壽와 율곡의 수제자인 沙溪 金長生의 문인이 되어 율곡의 성리철학을 정통으로 이어받고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장유의 조선식 양명학은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장유의 이기관은 기본적으로 주자가 성리학체계를 理一分殊에서 표방한 것처럼, 理의 본질을 하나로 인정하고 이를 개개의 사물에서 추구하려는 원칙을 표방하고 있다. 장유는 이것을 맹자와 장자의 논쟁으로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다.

모든 物이 똑같이 天에서 나와 本은 하나이지만(理一:필자 주) 그 부여된 바가 달라 나뉘니(分殊:필자 주) 順理에 따라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設孟莊論辯).

 그가 근본적으로 이일분수의 성리학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면서도 한편으로는 時勢에 따라 변통할 것을 주장하여 현실적인 차별성에 순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上古之治로 다스릴 수 없다.…勢에 따라 그 治를 制하고 變에 통하여 宜를 적절히 해야 한다. 이것이 진실로 자연의 道요 聖人의 공이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設孟莊論辯).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장유는 현상에서 자연의 道인 理의 본질을 추구할 것을 주장하여, 근본적으로 理一分殊의 성리학체계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유의 이기관은 16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사단칠정이나 인심도심논쟁이라는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의 논쟁의 결과로 확립된 율곡의 이기관을 바탕으로 하는 데서 도출된 것이다.

程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氣稟을 가지고 태어나면 理에 善惡이 있게 되는데 이는 理에 善이 있고 또 惡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氣稟에 들어가면 善惡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 理인 것이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雜記).

 곧 이는 理通(=理의 본질의 보편성) 즉 모든 자연현상에서는 불변하는 자연법칙으로, 모든 사회현상에서는 불변하는 도덕법칙으로 보편성을 갖는다. 하지만 氣局(=현실현상의 차별성) 즉 자연현상의 개별적인 차별성, 사회현상의 개별적인 차별성 때문에 善惡이 생긴다는 율곡의 理通氣局說을 따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장유도 율곡과 마찬가지로, “本然之性은 理를 말하는 것이고 人이 갖는 것은 氣質之性뿐이다”103)張 維,≪谿谷集≫권 3, 雜書 雜記.라 하여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구분하지 않고 기질지성 하나만을 인정함으로써, 본연지성이 발하는 ‘이발기수지’와 기질지성이 발하는 ‘기발이승지’로 나누는 퇴계의 이기이원론을 부정하고 기질지성이 발하는 ‘기발이승지’만을 인정하는 율곡의 이기일원론에 입각한 이기관을 따르고 있다.

龜峰이 말하기를 未動是性·已動是情이라 하였는데, 종전 諸儒의 설은 대개 이와 같으나 마침내 잘못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릇 已動是情은 可하나 만약 未動是性이라 한즉 已動 후에는 性이 없다는 말인가. 程伯子의 말에 性에는 內外가 없는데 어찌 動靜이 있겠는가. 대개 動靜은 그 때를 말한 것이고 性之理가 있지 않은 적은 없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書宋龜峰玄繩編後).

 이러한 까닭에 心·性·情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서도 理인 본연지성이 발하는 性發·性動 등의 이가 발하는 것을 부정하고 기질지성인 氣가 발하는 것을 인정하는―기가 발하는데 이가 내재하는―율곡의 ‘기발이승지’설에 따라 성·정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性是理 知覺是氣 性是靜 知覺是動 性是性 知覺是情이라 하였다. 그 말 중에서 性是理 知覺是氣는 심히 마땅하지만 性是靜 知覺是動 知覺是情이라 함은 모두 잘못이다. 대개 性卽理이고 知覺是心이고 理는 動靜을 아우르고 心은 性·情을 통제한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書宋龜峰玄繩編後).

 이는 心과 性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서도 심이 지각이며 기라는 것을 말하고 이인 성은 기가 발하는 어디에나 내재하고 지각인 심은 기로써 性·情을 통제한다 하여 이의 내재성 및 불변성·보편성을 강조하는 데에서도 이기일원론을 입각한 율곡의 이기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神明을 心이라 하므로 心의 體는 性이다. 그 用(情=필자 주)에 義理가 되어 발하는 것이 있으니 惻隱·羞惡·知愛·知敬의 종류가 이것이고, 形氣가 되어 발하는 것이 있으니 추위를 알고 따뜻함을 느끼고 聲色 취미의 욕심 같은 것이 이것인데 둘은 똑같이 情이라 일컫는다. 形氣의 발함도 또한 理가 원래 내재해 있으므로 不善함이 없는데 감정에 흘러 알맞지 않으면 이에 惡이 되는 것이다(張 維,≪谿谷集≫권 4, 說 人心道心說).

 人心道心의 심이나 四端七情의 정을 정의하는 데에서도 퇴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본연지성에서 발하는 四端과 기질지성에서 발하는 七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은 기질지성에서 발하는 칠정만이 있고 이 칠정은 유행하여 節하면(알맞으면) 선이 되고 유행하여 不節하면(알맞지 않으면) 악이 되는데, 이 중에 純善한 부분만을 가리켜서 사단이라 한다는 율곡의 四端七情論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理는 虛하고 精하며 氣는 實하고 거친(粗) 것이다. 氣의 본체도 虛하고 精하다. 그러나 理에 비교하면 實하고 粗하게 될 뿐이다. 태극은 理의 총명이요, 太虛는 氣의 본체이다. 一 太極은 만물에 分體하였고 一 太虛는 만물에 化生한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雜記).

 그러나 장유는 위와 같이 氣의 體用을 전제로 하여 太極과 太虛를 대응하는 개념으로 상정하여, 한편에서는 理一分殊의 理一의 태극을 관념적으로 상정하여 이의 보편성을 확립하고 分殊단계의 이를 만물의 이로 삼아 차별성을 설명하고, 한편에서는 태허라는 기의 본체를 태극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상정하고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기를 태허의 작용으로 설정하여 근본적으로 理先氣後의 이기이원론을 부정하고 氣有體用論에 입각한 이기일원론을 확립한다. 이러면서도 “陰陽은 바뀌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처음과 끝이 없다”104)張 維,≪谿谷集≫권 3, 雜著 雜記.고 하여 태허에서 음양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음양의 관념적인 본체로 태허를 상정하고 음양을 실제 작용하는 가치중립의 기로서 파악하였다. 이를 전제로 “氣의 本은 원래 不善함이 없으나 流湯乖戾 이후에 바야흐로 惡이 있을 뿐이다”105)張 維,≪谿谷集≫권 3, 雜著 書宋龜峰玄繩編後.라 하여, 기의 본원은 선이나 기가 작용한 이후에 악이 생긴다 하여 기의 體는 본래 선하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본래 기인 심도 심의 체는 본래 선하여 성처럼 이가 될 수 있고 심의 用에 이르러 비로소 악이 생겨난다는 논리를 도출하게 된다.

 결국 이·기·심의 체는 모두 선하고 이·기·심의 용은 모두 선악이 있다는 體用論에 근거한 이기일원론이 전개된다. 이러한 논리는 기의 체를 태극에 대응하여 상정하지 않고 이는 기의 작용에 항상 내재되어 있다고만 보는 율곡의 이기관에서 보면 계곡이 설정한 태극에 대응하는 기의 체인 태허는 관념적인 존재이고 기의 체인 태허를 매개로 심의 체를 성과 대응시켜 ‘심즉리’를 도출하는 논리도 관념적인 것으로 비판하게 된다.

繫辭傳에 一陰一陽을 道라 하고 陰陽이 不測한 것을 神이라 한다 했고, 程明道는 器 곧 道요, 道 곧 器라 하였다. 만일 이와 같이 보면 어찌 理가 善하고 氣는 惡하여 송구봉의 설과 같을까. 나정암의 理氣一物論은 비록 병통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과 비교하면 견해 또한 저절로 뛰어났으므로 이에서 율곡이 취한 바 있는 이유이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書宋龜峯玄繩編後).

 이러한 세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여 나정암의 理氣一物說을 율곡의 ‘기발이승지’설과 같은 이기일원론으로 이해하고,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에 입각하여 인심도심설·사단칠정설을 정리하면서, 다만 도심인심을 체용관계로 정리하는 나정암설을 ‘整庵之分體用 最爲逕庭’이라고 지지하며 心有體用說에 입각한 ‘심즉리’설106)張 維,≪谿谷集≫권 4, 說 人心道心說. 즉 이기일원론에 입각한 ‘심즉리’설을 확립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율곡의 이기관을 적통으로 이어받으면서도 율곡과는 달리 태허라는 보편적인 기를 설정함으로써 理一分殊의 理有體用論에 대응하는 氣有體用論을 설정하여 이의 보편성을 기의 보편성으로 대치시킬 수 있는 이기관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유는 심도 마찬가지로 체용론을 적용시켜 심의 체를 성, 심의 용을 정이라 하여 ‘심즉리’설을 확립시켜 간다.

 다시 말하면 장유는 왕양명의 주관적인 기일원론의 입장을 탈피하여 영원보편한 실체로서의 기 즉 張橫渠 및 徐花潭의 태허라는 기를 설정하면서107)劉明鍾,≪韓國의 陽明學≫(同和出版公社, 1983), 82쪽.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을 소화하여 이기일물론적 이기일원론에 입각하여 ‘심즉리’설을 체계화함으로써 조선양명학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장유는 다음과 같이 한 단계 더 心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즉 “性 이것은 心이오 情 이것은 心이오…”108)張 維,≪谿谷集≫권 4, 說 人心道心說.라 하여 심에 의해 모든 것의 성격이 판단되는 심의 우위성이 주장되는 것이고 이러한 심의 주재성과 우위성은 無極子를 理로 비유하여 심을 수양하면 이도 부릴 수 있다고 한다.

絜齋洗心하여 思慮를 물리치고 耆欲을 끊어, 私僞로써 그 중에 빠지지 않게 하고, 담연히 홀로 신명과 더불어 거하여 3개월이 지나면 無極子의 居가 앞에 드러난다. 연후에 능히 그 視聽과 동작을 순일하게 하면, 方하면서 圓하고 動하면서 靜하고 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음이 없이하여 天則에 합한 연후에 無極子를 비로소 公子가 부릴 수 있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寓言).

 또한 심을 性·情·理·氣는 물론 태극·무극보다도 우위에 두고 다음과 같이 주체적으로 주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理가 物에 반드시 있고 心의 用은 반드시 物로 인하여 일어난다. 聲形臭味는 物의 質이다. 視聽齅嘗은 心의 用이다. 聲形臭味가 없으면 物이 없고 物이 없으면 理가 없고, 視聽齅嘗이 없으면 心의 用이 폐하고 心의 用이 폐하면 비록 理가 있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張 維,≪谿谷集≫권 3, 雜著 雜述).

 이와 같이 장유의 이기관은 율곡의 이기일원론을 이어받아 理의 내재성을 이의 성격으로 강조하면서도 태허라는 관념적인 기를 설정하여 기의 본성을 강조하고 기인 심을 기질지성인 성과 같이 파악하여 성이 이가 되는 것처럼 심도 이가 되는 것으로 파악하여 이의 내재성을 심의 능동성으로 바꾸어 심의 주관성이나 주체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논리를 세워 나갔다. 따라서 기 작용 즉 기의 유행의 節과 不節을 이의 내재성에 의해서 통제 받는데 맡기지 않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심의 작용 즉 주재에 맡기어 심의 주재성과 우위성을 율곡보다 훨씬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식 양명학의 경향과는 달리 기의 작용에 근본적으로 내재해 있는 이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심의 주체성·우위성도 이를 바탕으로 전개하게 된다. 따라서 비록 현상에 순응하려는 심의 주관성이 개재되지만 이의 본질을 추구하고 이를 현상에 발현시키려는 과정에서만 인정되고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장유의 이기관은 각 현상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심에 의해 이의 본질에 대한 추구가 이루어짐으로써 古人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않고 심에 의해 판단되는 이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古人의 골은 이미 썩고 그 말은 이 벽에 저장되어 있다. 그 理는 나의 마음에 있으니 구하면 얻지 않음이 없다(張 維,≪谿谷集≫권 2, 箴銘贊 藏書壁龕銘).

 이러한 추구는 결국 “六經은 나의 心의 記籍이다”109)≪王文成公全書≫권 7, 文錄 4 稽山書院尊經閣記(≪王陽明先生全集≫상, 308쪽, 1976, 東洋文化社 영인본).라고 한 王守仁의 經에 대한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결국 경을 절대시하지 않고 시세에 알맞는 이의 본질을 추구하는 심에 의해 상대적으로 파악하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장유의 이기관은 기본적으로는 율곡의 ‘氣發理乘之’라는 이기일원론에 입각하면서도, 태극에 해당하는 태허라는 보편적 기를 설정하여 기를 이와 같이 體用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기인 심을 가지고도 심의 체를 성, 심의 용을 정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심의 체 즉 성을 이로 파악하는 성리학과 모순되지 않고 ‘심즉리’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이는 심을 理로 보는 주관성을 강조하여 관념적인 경향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지만 혼란한 시기에 객관적인 기준에 얽매어 주체적인 과단성이 결여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게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중국에서 12세기 말 성립된 주자성리학이 초기 성립기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15세기 말에는 이기이원론에 얽매어 공리공담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반대하고, 16세기 전반적인 동양사회의 변혁기에 일원론에 입각하여 지행합일 등의 실천성을 강조하는 양명학이 나온 것처럼, 이를 수용한 조선에서도 조선 전기질서가 전반적으로 붕괴되는 가운데 임진·병자의 양란을 겪으며 대내외적인 격동기를 맞는 시기에, 주관적 관념론에 빠지기 쉬운 중국식 양명학을 객관적 유심론인 율곡의 이기일원론의 이기관에 입각하여 주체성을 강조하는 조선식 양명학으로 발전시켜 인조반정이라는 혁명을 주체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장유의 조선양명학은 양명학의 핵심인 ‘致良知’說보다는 ‘심즉리’설을 이해하는 양명학이었다. 그리고 장유단계에서는 양명학의 심무체용설에 입각한 양지설까지 심유체용설에 입각한 양지설로 체계화시키기에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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