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5) 서민·부녀자층의 천주신앙

(5) 서민·부녀자층의 천주신앙

 교회 초창기 당시의 교인 가운데는 서민대중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과 내포 그리고 전주땅에 신앙공동체가 세워지고 초창기 교회지도자들의 열성적이고 진취적인 전교활동이 주효하여 천주신앙을 받아들이는 서민층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이 천주신앙을 받아들이는 사정은「신문화운동」의 차원에서 천주신앙을 수용한 양반지식인의 그것과 달랐다. 또한 그들의 급속한 천주신앙 수용은 전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크게 작용된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즉 당시 진행되고 있던 봉건체제의 붕괴가 촉진되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그들이 천주교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왜란·호란으로 조선의 중세적 봉건지배체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봉건사회의 해체현상이 여러모로 촉진되고 있었다. 전후의 복구사업과 농법의 개량, 농지 개간의 진척에 의해 농업생산력이 증가되고 이에 따라 민생이 소생하는 변화가 현저하였다. 이와 같이 농업생산력의 증강으로 토지겸병에 의한 토지의 집중소유가 진전되어 그 때까지의 공적인 地主佃戶制와 다른 사적 기반을 가진 부농대지주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반면에 다수의 빈농과 토지를 상실한 賃勞動者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 농업의 발달과 상업 및 수공업의 발달로 더욱 촉진되었다.

 이상과 같은 경제관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봉건적 신분제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 변화는 신분계층간의「신분이동」과 계층내의「신분분화」로 나타났다. 몰락양반의 신분하강, 부농의 신분상승, 부상의 신분상승과 빈농의 隷農化현상이 전자의 경우이고, 권문세가와 몰락잔반으로의 분화, 부유농민과 소작영세농·雇工으로의 양극화 등이 후자의 경우였다. 이러한 경제·사회적 변화는 영·정조의 부흥정치에 의해 겉으로는 경제의 신장과 文運의 융성으로 나타났으나, 반면에 하위적 체제의 변화가 조용하게 그러나 점차 심각성을 느낄 정도로 진전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대다수의 농민과 상·수공업자 그리고 노비를 포함한 서민대중층을 천대와 곤궁의 늪에 빠져들게 하였다. 나날의 생활에 쫓기게 되고 염세적 감정과 체념의 굴종만을 강요당하는 서민대중에게는 사회적으로 정신적인 慰悅과 희망을 주는 가치체계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서민층의 사회동향에 바탕한 조선 후기 서민대중사회는 내세불인 미륵불신앙이 크게 유행하고, 참위사상에 바탕한 토속종교신앙이 치성하게 되며, 또한 천주신앙을 수용하게 되는 역사적 소지가 마련되고 있었다.180)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학자의 고찰로는 다음 글이 요령있게 설명하고 있다. 盧吉明,<朝鮮後期의 社會解體狀況과 西學의 衝擊>(≪가톨릭과 朝鮮後期 社會變動≫, 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88), 42∼75쪽.

 천주신앙은 새로운 외래종교이기는 하나, 그것이 표방하는 만인의 평등과 사랑의 나눔 그리고 내세의 영광을 약속하는 분명한 교리로 말미암아 서민대중들에게 신선함을 보여주는 구함의 가르침이었다. 한편 봉건적 구속과 천대에서 무시되어 오던 부녀자층도 천주교신앙에 공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민대중과 부녀자들 가운데 평등과 사랑의 종교를「現世求福」적인 정신적 위안의 근거로, 또는 현세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내세의 樂地·天堂에서 얻으려는 간절한 소망을 지닌 내세지향적 동기에서 천주신앙은 수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봉건적 수탈과 천대가 더욱 혹심해지는「勢道政治期」에 거세지게 된다. 그들은 천주신앙을 일종의「현세적 사회복음」으로 이해하고, 내세의 복락을 약속하는「後天開闢」의 믿음으로 이해하여 생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천주신앙을 수용하고 열심히 봉행하였으며 기꺼이 순교하는 봉헌의 신앙생활을 굳게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181)초기 교인들의 입교동기에 관한 글로는 趙珖,<信徒들의 思想的 特性>(앞의 책), 97∼11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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