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3) 도교의 민간신앙화

(3) 도교의 민간신앙화

 柳僖(1773∼1837)는≪物名考≫에서 “사람의 뇌 속에 들어 있는 삼시충은 언제나 매달 보름과 초하루에 상제에게 사람의 과실을 아뢴다. 삼시충은 욕심이 많은 사람의 뇌수를 다 먹어버리지만 청정하게 도를 닦으면 이것이 소멸된다”고 하였다.304)柳 僖,≪物名考≫, 有情類 昆蟲. 이것은 60일에 한 번씩 행하는 ‘庚申守夜’와 혼동되어 있지만 도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며, 매달 그믐밤에 하늘로 올라가 사람들의 죄상을 아뢴다는 竈神(부뚜막신)에 대한 신앙과도 연결된다. 조신에 대한 제사는 집집마다「交年」 즉 음력 12월 24일에 지냈던 것 같다.

 민간신앙화한 도교의 모습은 七政四曜·南斗六星·北斗七星 등의 星宿와 관련된 행사에서 주로 찾을 수 있다. 이들 성수에는 모든 사람들의 窮·通·休·戚이 달려 있으며, 특히 樞星은 군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명운을 통제하는 것으로 믿었다. 예를 들면≪玉樞經≫에는 추성에 대한 경배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玉樞丹’이나 ‘辟邪文’ 등으로 병을 예방하는 습속, 집을 짓거나 수리하거나 動土를 할 때 맹인을 청하여≪옥추경≫을 읽어 安宅을 하는 습속 등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太陰曆을 써 왔는데 거기에 실린 修造·動土·吉凶·神煞 등은 모두 도가에서 연유한 것이다.305)道家에는 土司에 謝하는 章醮文이 있다(李能和, 앞의 책, 276∼278쪽).

 入宅할 때 丑日·寅日·‘起房空完日’을 꺼리고, 祭式으로 향촉과 정화수 한 그릇과 버드나무 한 가지와 푸른 채소 한 접시를 신전에 놓고, 천지와 가신과 조왕신에게 절을 한 후 신 앞에 놓았던 정화수를 문기둥에 뿌리는 것은 살을 피하는 일로 불교적 요소가 섞인 도교적 행위의 하나다.306)洪萬選,≪山林經濟≫권 4, 選擇 入宅.

 直星에 대한 제사는 조선 초기에는 소격전에서 지냈다고 하나, 조선 후기의 민간풍속에서는 直星吉凶에 따라 度厄(액막이)하는 법이라 하여 정월 14일에 이를 행했다. 이것은 모두가 다음날 즉 상원일에 本命醮禮를 올리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직성이란 인간의 연령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본다는 별이다. 直星祈禳에 대해서는 柳得恭이 지은≪京都雜志≫에 “정월 열 나흗날 밤에 짚을 묶어 허수아비를 만드는데, 이를 處容이라 한다. 水直星을 만난 사람은 밥을 종이에 싸서 밤중에 우물 속에 넣고 비는 풍속이 있다. 민속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처용직성이다”라고 하였다.307)柳得恭,≪京都雜志≫권 2, 歲時 上元.

 九曜祭도 도교행사의 하나인데, 직성길흉에 따라 도액하는 민간풍습의 하나로 흡수되었다. 구요란 日·月·火星·水星·木星·金星·土星·羅都·計都 등의 별을 말한다. 가장 꺼리는 별은 羅睺直星이다. ‘文昌帝君’이라고도 하는 魁星은 북두칠성의 첫째 별로 文에 관한 운수를 맡았으며, 과거에 응시하는 자들은 특히 이 별에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밖에도 삼재 예방, 불교사찰 안의 칠성각이나 삼성각, 무속에서의 시왕[十王], 판수의 독경 등에서도 도교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歲畵의 十長生 및 門排, 天中節(단오)에 赤符를 만들어 붙이는 것 등은 모두 고려 이래로 전해 내려온 도가의 행사다. 앞의≪경도잡지≫에 의하면 壽星·仙女·日直神將 등을 그린 것을 세화라고 하였다. 한 장군은 斧鉞을 가지고 한 장군은 節符를 가지고 있는 한 길 넘는 장군의 화상을 궁문 양쪽 문짝에 붙인 것을 문배라고 하는데, 민간에서 벽에 붙이는 닭이나 호랑이 그림도 이에 해당한다.308)李能和, 앞의 책, 284쪽.
金邁淳,≪冽陽歲時記≫, 정월 元日.
적부는 觀象監에서 천중절에 朱砂로 쓰는 붉은 부적으로 이것을 찍어서 임금에게 바치면 대궐 안에서는 문 위의 중방에 붙여 살을 없애고 상서로운 일이 있기를 기원하였으며 사대부 집에서도 이러한 것을 붙였다고 한다.309)洪錫謨,≪東國歲時記≫, 5월 端午.

 우리 나라의 사찰에는 칠성각이 있어 복을 빌거나 자식 두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제사를 드린다. 또 승려가 불사를 행하고 法要를 시작할 때 칠성을 청하는 법이 있는데, 이것은 금과 원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요의 글을 지은 要集도 대개 이 곳에서 나온 것이다. 李圭景의≪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서울 인왕산의 칠성암에 신당이 있는데, 여기에서 재를 올리고 기도를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과거에 응시할 유생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하였다.310)李圭景,≪五洲衍文長箋散稿≫권 43, 華東淫祀辨證說.

 또 풍속에 사람이 죽으면 일곱 구멍을 뚫어서 북두형상과 같이 만들거나 종이에 북두형상을 그려서 시체를 받쳐 놓는데, 이것을 七星板이라고 한다. 여기에도 북두성의 힘으로 살을 제압하려는 도교신앙이 담겨 있다.

 맹인이나 經客의 독경업도 마찬가지로 도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독경할 때면 먼저 ‘槐黃紙’라고 하는 매화로 물들인 누르스름한 종이에 神將들의 이름을 붉은 글씨로 쓴다. 이것을 병자가 누워 있는 방안에 붙여 놓고 맹인 여럿이 둘러앉아 북을 치고 독경하기를 혹은 사흘 혹은 이레 동안 하여 功이 차기를 기다린다. 기간이 차면 신장의 강림을 청하여 邪鬼를 병에 잡아 가두어 파묻는다.

 도교는 건강을 위한 양생법으로 식자층에 널리 수용되었으며, 그 지식들은≪東醫寶鑑≫의 편찬으로 체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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