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4) 도참신앙

(4) 도참신앙

 圖讖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는 상징물인「圖」와 密語의 형식을 띤 예언적인 언어인「讖」이 합해진 말로서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려는 사회적 욕구에서 비롯된 상징행위다.

 讖說이나 秘記신앙은 조선 초기에 유행한 바 있다. 태종 17년(1417) 왕명에 따라 참서나 비기류들을 거두어 불살랐다.311)≪太宗實錄≫권 34, 태종 17년 11월 병진.

 조선 후기에 들어와 대표적인 도참서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鄭鑑錄≫이다. 이 책은 그 동안 만들어진 여러 가지 鑑訣類와 秘記를 집성한 것으로 참위설·풍수지리·도교사상이 혼합되어 이루어졌다. 이 중 근본이 되는 비기는 李沁과 鄭鑑 사이의 문답과 조선왕조의 쇠운설을 주제로 하고 있고 반왕조적이고 현실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금서가 되었으며 민간에서 사본으로 은밀히 전승되어 왔다.

 그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씨왕조가 세 번의 단절 운수를 맞는다는 ‘三絶運數說’이다. 그 첫 번째가 임진왜란이고 두 번째가 병자호란이며 세 번째가 앞으로 닥칠 위기라는 것이다.

둘째, 미래 국토의 이상을 나타내는 ‘鷄龍山遷都說’이다. 계룡산은 산세나 수세가 태극을 이루어 세 번째 위기에 살아 남을 수 있는 비기인 ‘利在弓弓’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弓乙村’의 신천지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 ‘鄭姓眞人出現說’로 말세에 ‘정도령’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일어났던 갖가지 역모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참위설은 거의가≪정감록≫의 이러한 설과 무관하지 않다.

 숙종 17년(1691)에 해주에 사는 車忠傑, 재령에 사는 曺以遠 등이 잡혀 왔는데, 이들은 양민으로서 무당을 업으로 삼으며 “한양이 장차 망하고 奠邑(=鄭)이 마땅히 흥한다”거나 “수양산 상봉에 생불이 있는데 이름은 鄭弼錫”이라는 등의 말을 발설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된다.312)≪肅宗實錄≫권 23, 숙종 17년 11월 을해. 숙종 20년 3월에는 소론과 노론이 각기 換局을 도모한다는 고변이 있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소론인의 하나인 康晩泰의 공초 중에 자신이 아는 자가 “海島 중에 鄭姓眞人이 있다”고 하여 그를 맞이하기 위해 재화를 모으려 했다는 내용이 있다.313)≪肅宗實錄≫권 26, 숙종 20년 3월 갑자. 숙종 23년 정월에 작성된≪李榮昌等推案≫에 나오는<上變書>에는 나이가 70세인 승려 雲浮가 불경으로 僧輩를 가르쳐서 그 중 뛰어난 자인 玉如·一如·卯定·大聖法主 등 백여 인을 얻어 그 술업을 전하여 팔도의 승려와 체결하고 張吉山 무리와 결의하고, 또 이른바 진인인 鄭姓과 崔姓 양인을 얻어 나라를 평정하고 정성을 왕으로 삼은 후에 중원을 공격하여 최성을 세워 황제로 삼는다고 운운하였다는 기사가 있다.314)≪李榮昌等推案≫(鄭奭鍾,≪朝鮮後期社會變動硏究≫, 一潮閣, 1983, 145쪽 재인용).

 18세기에도≪정감록≫에 근거한 참위설이 각종 정변과 연결되면서 나타났다. 영조 15년(1739)에는 정감참위의 설이 서북지방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315)≪英祖實錄≫권 50, 영조 15년 8월 경진. 영조 38년에는 참서와 비기류들을 감춰 두고 그것을 보이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린 후 海島로 정배하라는 명이 내려졌는데, 이것은 裵胤玄의 掛書事件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배윤현은 상주사람으로 대궐문에 괘서하다가 붙들렸다. 임금이 보고를 받고 친국하였는데, 그 써진 것을 보니 허황된 잡술에 지나지 않다고 여겨 그를 제주도로 유배시켰다.316)≪英祖實錄≫권 99, 영조 38년 2월 임진·계사. 영조 24년의 李之曙사건, 31년의 나주괘서사건, 南變事件, 49년의 李麟佐 잔당의 궐문괘서사건 등도 모두 비기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정조 즉위년(1776)에는 영조 때 임금의 총애을 받던 洪麟漢·鄭厚謙 등이 제거되면서 ‘鷄龍之說’을 퍼뜨린 安兼濟 등이 유배를 당하였다.317)≪正祖實錄≫권 1, 정조 즉위년 5월 병자. 또 정조 6년에는 白天湜·文仁邦·李敬來·郭宗大 등이 작당하여 충청도 진천의 산골로 들어가 터무니없는 말로 남을 속이면서 인심을 혼란시키고 흉도들을 모집하여 관아를 약탈하고 군기를 탈취하였다는 죄로 붙들린 사건이 일어났다.318)鄭奭鍾, 앞의 책, 327쪽. 이들이 퍼뜨렸다는 터무니없는 말이란 곧 정감록의 비기를 말한다.

 ≪정감록≫의 내용이 19세기에 민란을 배경으로 나타날 때는 이미 민중화되어, 그 곳에 실린 鑑訣을 인용하여 참설을 유포하고 지도자는 진인을 자처하는 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비기의 내용들은 동학과 그 이후에 형성된 신종교의 교리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