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3) 실학의 연구방법과 분야

(3) 실학의 연구방법과 분야

 조선 후기 실학에서 드러나는 특성은 그 연구방법론에 있다. 실학자들은 가장 강조하던 방법론상의 특성은「博學」이었다. 실학자들은 16세기 退栗단계에서 강조되던 務實의 방법 즉 현실개혁의 논리에 주목하되, 성리학자들이 예사로이 여겼던 박학의 방법을 무실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중요시했다. 박학은 원래 審問·深思·明辯과 함께 원초유학의 단계에서부터 중요시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박학이 원초유학의 단계에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조선성리학계에서도 이런 연구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리학은 이 박학의 방법을 구사한 연구보다는 經學의 형이상학적 탐구에 치중하여, 그 학문이 비실제적 성향으로 흘러 실천에 있어서는 治人보다 修己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실학자들은 성리학에서 취하고 있던 이 방법을 비판 극복하기 위해서 원초유학의 회복을 꾀했다. 원초유학의 방법론은 ‘自近行遠 自淺入深’하여 ‘下學而上達’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즉 원초유학의 방법론은 高遠深奧한 것에 매달리지 않고 일상적·현실적으로 가까이하기 쉬운 실제성을 위주로 하여 학문을 연구했었다. 실학자들은 이 원초유학의 학문방법론의 회복을 주장했다.

 실학자들은 성리학적 경학의 연구풍토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일상적·현실적 분야의 연구가 중요함을 강조했고 여기에서「박학」의 방법이 존중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박학을 중요시한 의도는 성리학 이상으로 광범한 현실 파악능력을 배양하여 민생을 구제하려 했던 것이다.427)尹絲淳, 앞의 글(1995), 318∼319쪽. 실제성과 박학을 중시하던 실학자들은 이를 강조함으로써 학문연구에 있어서 절대적 위치에 놓여 있던 경학을 상대화시키게 되었다.

 실학자들이 박학의 연구방법론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들의 학문연구 분야는 백과전서적 경향을 띠고 있다. 실학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백과전서적 경향은 성리학이 제시하고 있었던 의리론의 유일기준과 주관적 사유에서 벗어나서 자연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공유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저술의 경향이었다.428)金泰永, 앞의 글, 218쪽.

 실학은 백과전서적 학문경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학연구의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우선 실학은 이기·심성 등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조선성리학과는 구별되는 견해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에 근거하여 인간과 세계와 자연을 보는 새로운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실학은 왕도정치론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실학은 성리학과는 구별되는 원초유학에 입각하여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들이 왕도정치론을 개진해 나가던 시점은 조선 후기 중세사회의 해체기였다. 그들은 이 해체기적 양상으로 각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던 비리와 모순을 개혁하고 경색된 현실을 타개하여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하려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각 분야를 개혁하고자 하는 과제들을 검토했다.

 실학은 새로운 철학과 왕도정치론을 총론으로 삼아 분야별 각론을 전개했다. 실학의 각론에서는 첫 번째로 조선의 존재와 전통에 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실학자들은 민족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전통적 華夷觀의 극복을 시도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중국과는 구별되는 朝鮮的 自我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키게 되었다. 그들은 조선의 존재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조선어와 문학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歲時風俗을 비롯한 민속에 관해서도 애정을 가지고 조사와 연구를 진행시켰다. 그들은 역사지리와 인문지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의 역사적 전통에 대해 관심을 쏟았으며, 자신이 제시하는 개혁안의 원리도 지난날의 역사경험을 통해서 검증해 보려 한 것이다. 그들에게 역사란 조선의 주체적 인식을 위한 도구였고, 자신의 개혁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도록 해주는 스승이었다.

 실학의 각론에서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분야는 정치제도의 개혁에 관한 문제들이다. 실학자들은 왕도정치론에 관한 부연적 성찰을 통해서 군신간의 관계를 새롭게 확인하고자 했다. 국정의 각 분야에 관한 연구에 힘을 기울여 국가의 제도개혁에 관한 문제를 논했다. 수취체제의 개편에 관한 광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과거제도 등 관리임용 방법의 개선책을 논했다. 그들은 군사제도의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학의 각론에서 세 번째로는 현실개혁을 위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주목이었다. 실학사상을 낳게 한 것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현실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실학자들은 농촌의 피폐상을 극복하기 위해 토지제도 및 농업경영의 개선책을 모색했다. 그리고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상공업의 발전을 위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그들은 부당한 수취체제의 문란상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통적 신분제도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新我舊邦(묵은 우리 나라를 새롭게 하자)’이라는 말429)丁若鏞,≪與猶堂全書≫1-16권, 詩文集, 自撰墓誌銘. 한마디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실학의 네 번째 연구분야로는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이 있다. 실학자들은 자연의 논리와 인간의 논리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에 대해 연구했고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찰과 연구를 지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생활에 직접 관심을 가지고 농업기술의 혁신에 관해서 연구했다. 또한 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광업기술이나 공학기술의 도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실학은 박학을 중요한 연구방법론으로 존중했고 자신의 학문연구에 적용했다. 그리하여 실학에서는 백과전서적 경향이 드러났다. 백과전서적 연구방법을 취했기 때문에 실학의 연구분야는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실학자들은 새로운 사고방법을 도출해 내는 전제로서 理氣論·人性論 등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전개하여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원초유학적 왕도정치의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개혁방향을 설정해 나갔다. 원초유학적 철학사상과 왕도정치론은 실학사상의 총론이었다. 이 총론을 전제로 하여 실학자들은 구체적 실천사항으로 각론을 전개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민족의 존재와 전통에 대해서 연구했고, 현실개혁을 위한 정치·경제·사회에 관한 문제를 논했다. 그들은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에 대한 연구에도 정진해 나갔다. 이 모든 각론적 연구는 왕도정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에 목표를 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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