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2. 실학의 발전
  • 2) 실학사상의 전개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가. 대외인식의 변화

 조선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대외인식의 기본틀은 華夷觀이었다. 화이관은 송대 이후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사상에서 강조되던 특징으로서, 中華와 夷狄을 엄격히 구별하고 漢族왕조의 방어를 도덕적 사명으로 강조하던 정치사상이었다.455)趙 珖,<朝鮮後期의 歷史認識>(≪韓國史學史의 硏究≫, 乙酉文化社, 1985), 147쪽. 남송대 주자학을 수용하여 성리학으로 발전시켜 나갔던 조선 초기의 사회에서는 대외인식의 기본틀로 이 화이관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는 이에 바탕을 두고 국제정세에 융통성을 발휘하며 대응하는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이 구사되었다. 그리고 16세기 의리명분론적 성리학이 체계화되면서 中華=明, 小中華=朝鮮으로 파악되었고, 소중화란 개념은 조선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대외인식에 있어서 기본틀로 작용하고 있던 화이관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화이관의 변화는 명청의 교체라는 대륙정세의 변동으로 인해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전통적 화이관이 수정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 화이관의 극복에는 천문과 지리지식의 확대라는 측면도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456)孫承喆,<北學의 中華的 世界觀 克服>(≪論文集≫15, 江原大, 1981) 참조. 당시의 실학자들은 山海經的 지리관을 반영하고 있던 天圓地方說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중국을 설정했던 견해를 부정했다. 그리고 華와 夷의 구분 기준이 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있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화이관적 대외인식의 표현이었던 소중화의식은 17세기 명·청교체라는 국제적 관계의 변화 속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夷狄’의 국가인 청이 대륙을 석권한 후 조선은 중화=명, 소중화=조선이라는 틀을 더 이상 고수하기를 포기했다. 17세기 이후 조선인들은 중화로 인정되어 왔던 명의 멸망으로 오직 소중화인 조선만이 중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단정했다. 당시 성행했던 尊周論·對明義理論은 멸망한 왕조인 명에 대한 의리의 확인을 통해서 중화문화의 유일한 보존자요 계승자인 조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던 노력의 표현이었다. 여기에서 소중화의식 혹은 小華意識은 더욱 강화되어 갔다.457)鄭玉子, 앞의 책(1998), 151∼153쪽. 이 의식은 당시의 현실에 있어서는 朝鮮을 중화로 보아야 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와 같은 조선중심주의는 조선성리학자나 실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견해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중심주의를 주장하던 성리학자들과 실학자들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노론학계를 중심으로 하여 지속되고 있었던 성리학자들의 反淸北伐論은 청을 淸夷狄觀을 전제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들은 청조문화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이의 수용을 거부했다. 그러나 실학자들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견지에서 소중화론을 주장했다. 즉 그들은 중화의 기준이 문화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종래에 이적이었던 청이라 하더라도 중화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하여 성리학적 소중화의식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對淸認識의 긍정적 전개를 가능케 했다. 더욱이 당시의 청은 삼번의 난을 진압한 이후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청의 발전상은 燕行使를 통해 조선에 알려졌다. 그리하여 청의 현실과 우월한 문화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요청되고 있었고, 대중국관에 있어서 성리학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입장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이 시기 對中國觀의 변화는 이익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청이 지배하는 중국을 중화문명과 동일시하여 청이적관을 청산했다. 그는 서학연구를 통해서 확인한 서양천문학의 지구설을 지지하며, 중국 중심의 천하사상을 부정하고 모든 나라의 독자성을 인정했다.458)李元淳,<星湖 李瀷의 西學世界>(≪敎會史硏究≫1, 1977) 참고. 이러한 다원적 세계관은 문화가치의 상대화로 연결됨으로써, 결국 성리학적 소중화의식을 극복하게 되었다.

 대중국인식의 전개에 있어서 획기적 전환을 이룩한 것은 홍대용이었다. 그는 중국사행을 통해서 청의 발전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조선의 상대적 낙후성을 인식하면서 북학론을 제시하고 기존의 세계관을 바꾸었다. 그는 서양과학의 수용에 적극적이었고 그 중에서도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구설뿐만 아니라 地動說에 입각한 천문학적 지식,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삼아, 둥근 지구에서 보면 모든 나라가 다 지구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중국이나 서양의 각 나라가 자기를 正界로 삼기 때문에 모두 평등하다는 국가관념을 도출하였다. 또한 그는 종래 이적이라고 불리던 민족들이 세운 국가와 문화에 대해 다원성과 독자적 가치를 옹호했다. 이러한 개방적 관점에서 그는 조선과 청의 문물을 직시할 수 있었고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는 논리가 도출될 수 있었다.459)趙 珖, 앞의 글(1979), 68∼79쪽
河宇鳳, 앞의 글(1997), 266∼267쪽.

 정약용 역시 이익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성리학적 화이관을 극복해 나갔다. 그는 우선 종래 지리적·종족적 차원의 화이관을 부정하고 문화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화이관을 내세웠다. 그는 청조문화에 대한 개방적 인식을 피력하며, 赴燕使를 파견할 때 사소한 농기계로부터 천문역법에 쓰일 기계까지 들여와야 한다고 했고, 이를 위해 전담관청을 새로이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 화이관의 극복은 세계와 서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박지원과 박제가는 개방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대외인식에 있어서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했다. 이들에게 서양은 중국과 같은 또 하나의 문명세계, 과학이 발전한 이용후생의 선진국이고 경제가 발전하여 교역과 통상을 할 만한 나라로서 인식됨으로써 서양과학도 연구대상에 포함되었다. 정약용의 경우도 서학에 대해서 이해했고 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그것의 도입과 활용에도 적극 주장했다. 또한 천주교의 천주를 원초유학에서의 상제와 동일시하여 주자학을 극복하는 논리로 차용했다.460)李元淳,<朝鮮後期 實學者의 西學意識>(≪韓國西學史硏究≫, 一志社, 1986) 참고.

 실학자들은 대외인식을 새로이 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재인식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익은 일본에 대한 재인식을 강조하며, 왜란 이후 지속되었던 적개심과 日本夷狄觀에서 탈피하여 현실적인 시각으로 변화하는 일본을 연구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본과의 외교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한 대일관계의 강화책을 제시하기도 했다.461)河宇鳳,<李瀷의 日本觀>(≪朝鮮後期 實學者의 日本觀 硏究≫, 一志社, 1989), 88∼89쪽. 李德懋(1741∼1799)의 경우에 있어서도 일본의 발전된 기술부분과 통일된 도량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화폐의 전국적 유통과 해외통상의 현황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기울였고, 일본문물에 대한 선별적 수용론을 개진하기도 했다.462)河宇鳳,<李德懋의 日本觀>(위의 책, 1989) 참조.

 일본에 대해 정약용은 기존의 실학자들과 달리 더욱 폭넓게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는 유배지 강진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는 일본의 古學派 유학자들의 문집과 경전주석서를 본 것을 계기로 일본의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제도와 문화의 발전상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일본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18세기 전후 조선사회에서 전개된 화이관의 극복은 대외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조선의 학인들은 전통적 중국중심론인 화이관의 극복을 통해서 조선의 존재가치와 문화적 사명을 확인했다. 이 때 조선의 성리학적 학인들은 청이적관을 고수하면서 조선의 자존과 문화적 사명을 깨달았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노론학계를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견해를 거부하고 청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문화를 새롭게 인식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북학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국가간의 상대성·대등성·독자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실학자들의 소중화의식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성리학자의 견해와는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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