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2. 실학의 발전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가. 실학연구의 전개

 오늘날 한국사에서 실학으로 불리는 사상의 유형들이 연구되기 시작한 때는 1890년대 개항기를 들 수 있다. 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학사상에 대한 연구가 줄곧 진행되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학사상의 이와 같은 연구과정을 다시 몇 단계로 나누어 그 연구사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실학연구는 제1단계(1890∼1934), 제2단계(1934∼1945), 제3단계(1945∼1967), 그리고 제4단계(1967∼현재)로 나누어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실학에 관한 초창기의 제1단계 연구에서 드러나는 특성을 살펴볼 때, 이 시기에는 張志淵(1864∼1921), 崔南善(1890∼1957) 및 李能和(1869∼1943)와 같은 한국학의 초기 연구자들에 의해서 오늘날의 학자들이 실학사상이라고 부르는 조선 후기의 사상경향들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연구는 아직 실학·실학파·실학자 등과 같은 용어가 직접 구사되면서 연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선 후기에 성리학과는 다른 일군의 현실개혁적 학문과 사상이 존재했음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학문의 전통이 유형원·이익·정약용에 이르는 계보를 가지고 있음을 말했다. 그러나 당시에 간행된 각종 국사교과서에서는 실학사상의 존재를 주목하지 못했고, 민중의 계몽을 목적으로 간행되던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조선 후기의 이 새로운 사상의 존재를 극히 지엽적이며 피상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이 새로운 사상적 경향에 대한 연구는 1934년을 계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 실학연구의 제2단계가 시작되는 이 해는 오늘날 대표적 실학자로 꼽히고 있는 茶山 정약용의 서거 98주년에 해당되던 해였다. 이 때 일본의 식민지통치에 반대하고 협조를 거부했던 민족주의계열의 연구자들은「조선문화 부흥운동」내지「조선학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학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정약용 서거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정약용의 사상을 비롯하여 정약용과 같은 시대의 사상가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연구를 주관했던 인물들은 安在鴻(1891∼1965), 白南雲(1895∼1979), 崔益翰(1897∼ ?) 등이었다.

 이들은 조선 후기에 발생한 이 개혁적 사상의 경향에 대한 범주화 작업과 개념규정을 위해 앞선 연구자들보다 더 큰 노력을 경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사상을 ‘근대 국민주의 및 자유주의의 선구’로 파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상이 아직은 봉건사상을 완전히 해탈한 것도 아니고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도 아닌 과도기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의 연구자들은 이 사상을“종래 계급의 반성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상체계는 되지 못했다”고 규정하기도 했다.486)白南雲,<정다산백년제의 의의>(≪東亞日報≫1937. 7. 6;하일식 편,<彙報>,≪백남운전집≫4, 이론과 실천, 1991, 119쪽에서 거듭 인용).

 이 시기의 연구자들은 이 새로운 학문경향을「實事求是學」이라는 범주로 파악하는 데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다만 이 시기의 ‘실학’연구는 그 범위와 대상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이에 관한 본격적 연구의 성과도 미진한 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조선에서 독자적 사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부인되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들의 연구와 주장은 민족문화의 전통을 밝히는 데에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실학사상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는 1945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다음부터였다. 해방을 통해서 실학연구는 제3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특히 195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남북한의 연구자들은 앞 단계의 연구를 이어받아 조선 후기의 사상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전개해 나갔다. 그 결과로 그들은 조선 후기의 그 새로운 사상적 경향을 실학사상이라고 명명하는 데에 대체적으로 의견을 일치시켰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 북한에서는 최익한·정성철을 비롯한 일단의 연구자들이 실학사상을 연구했다. 그리고 남한의 학계에서는 홍이섭·천관우·한우근 등이 실학사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이 연구의 과정에서 실학의 개념과 발생배경 및 그 실학의 연구분야 및 역사적 의의 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 시기는 남북한의 학계에서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내재적 발전론이 강하게 주장되던 때였다.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분야에 있어서 자생적 발전상이 속속 연구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상의 존재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났고 여기에서 실학사상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 당시 실학연구에는 이와 같은 연구 분위기와 관련하여 사회경제사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고, 근대화론적 시각이 강하게 투영되기에 이르렀다.

 실학연구의 마지막 단계는 1967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실학의 개념을 종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규정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일어났고 실학연구는 그 질적·양적인 면에 있어서 모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지난날의 실학연구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반성적 검토작업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실학의 개념과 그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고 실학자의 범위를 축소하고자 하는 경향도 등장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조선 후기의 전체 사상사의 전개과정에서 실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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