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2. 실학의 발전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3) 역사적 의미와 연구의 전망

(3) 역사적 의미와 연구의 전망

 실학사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데에도 오늘의 연구자들은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를 못하고 있다. 일부의 연구자들은 실학사상이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끌었고, 각종 제도의 개혁을 가능케 해줌으로써 조선 후기의 발전에 적극 기여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이 사상은 조선 후기의 민중을 대변하는 사상으로서 민생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했고, 개항기에 이르러서는 개화사상의 형성에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동학농민전쟁기 사회개혁사상의 배경이 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근대주의적 입장에서 실학사상을 긍정적으로 보아 왔던 견해에 대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긍정 일변도의 평가에 대한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의 사회와 실학자 개개인의 제약성으로 말미암아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 사회에 있어서 본격적 변혁이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거나 사회의 변혁을 도출해 낸 데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당시 실학자들은 자신의 현실개혁안을 정부당국에 제시하여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통로와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조정이나 사회의 공론으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전개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론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전개하지도 아니했다. 나아가서 19세기 중엽 이후 실학사상은 그 사회개혁적 의지가 약화되는 현상을 드러내었다. 한편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양자를 직결시키는 것은 오히려 개화사상의 근대적 측면을 매몰시킬 우려도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자는 견해도 있다.

 실학에는 그 한계성이 적지 아니하게 발견된다. 이 때문에 실학의 역사적 기능을 재평가하려는 기운이 오늘의 연구자에게서는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학사상은 당시 지배층의 성리학과는 구별되는 사상으로서 조선 후기의 사회에서 몇 가지 긍정적 기능을 발휘했다. 즉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이 당시 동양의 사상계를 지배하던 일종의 중세적 보편주의를 극복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개별성과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조선의 전통과 현실에 관한 연구를 촉진시켜 주었다. 이러한 발견과 인식은 분명 민족적 자각의 강화와 관계되는 현상이며, 조선의 학문적 전통을 올바로 세우려던 그들의 노력은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또한 실학사상은 원초유학에 입각한 개혁사상으로서의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왕도정치론의 구체적 적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제반 모순에 대하여 그침 없이 성찰헸다. 그들은 토지제도 및 군역제도의 개혁과 환곡 수취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노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당시 사회의 신분제에 대해서도 개선의 방안을 찾고자 했다. 그들의 이러한 성찰이 비록 현실적 개혁으로까지 직결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조선 후기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은 개혁을 향한 여론의 조성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실학사상이 적극적인 측면에서 현실개혁을 직접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측면에서 실학자들이 수행한 그 현실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해 준 역할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실학사상은 조선의 중세철학을 대변하는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후대인들이 객관적 자연관과 평등한 인간관을 이해하는 데에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도움을 주고 있었다. 즉 실학사상은 당시의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사유형태를 일깨워 주었다. 이 점에서도 실학이 또 달리 발휘하고 있었던 긍정적 기능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 기능을 감안할 때 실학사상에 관해서는 좀더 깊은 연구가 우리에게는 계속 요청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 전체 사상사의 맥락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조선 후기 사상계에서는 正學이라고 불리던 성리학과 實學, 그리고 邪學으로 지칭되던 각종 종교사상들이 병존하고 있었다. 이들 다양한 사상들은 당시의 사회에서 각자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상을 논할 때에는 당시 존재하던 다양한 사상들의 특성을 주목하고 각 사상이 가지고 있는 상호관계를 밝혀 나가야 한다. 우리가 실학을 연구한다 하더라도 성리학이나「邪學」과의 상호관계를 밝혀야 실학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495)趙 珖,<朝鮮後期 思想界의 轉換期的 特性>(≪韓國史 轉換期의 문제들≫, 지식산업사, 1993).

 한편 우리는 실학을 연구할 때 실학자 자신의 사상이 당대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인식 평가되고 있었는가를 좀더 명확히 밝혀야 한다. 실학사상에 대한 당대의 평가의 여하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그 역사적·사회적 기능을 도외시한 채 오늘날의 시각에서만 그것을 규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학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구조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들이 제시한 현실개혁안의 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그 개혁안의 역사적 의미와 기능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실학과 근대사상 내지는 개화사상과의 관계 여부에 관해서도 좀더 철저한 연구가 요구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실학연구가 더욱 계속된다면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상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좀더 잘 알 수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趙 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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