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3. 국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2) 개혁사상적 백과전서

(2) 개혁사상적 백과전서

 한편 16세기 말 이후 임진왜란을 겪는 등, 사회변동이 더욱 격화되고 기존 여러 제도와 문물의 변화 및 모순이 보다 심화되었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여러 제도·문물에 대한 개혁논의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나라 역대의 제도와 문물의 연혁에 대한 관심이 보다 고조되어 이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것은 개혁사상적 백과전서학의 성립으로 귀결되었다. 이리하여 조선 후기 개혁사상적 백과전서의 효시를 이루는 李睟光의≪지봉유설≫(광해 6년:1614)이 편찬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객관적 사실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그것에서는 앞서≪대동운부군옥≫이나≪고사촬요≫에 비해 역대의 제도·문물에 대하여 보다 깊은 관심이 표명되었다. 이것은 당시 현실에 대한 개혁의지와 관련이 있다. 또≪天主實義≫나 로마교황과 같은 서구의 문물, 외래문물에 대한 관심도 보인다. 이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서구 등 외래문물에 대한 관심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점들에서 이수광은 실학의 선구자가 된다.578)李睟光과≪芝峰類說≫에 관하여는 다음의 글이 참고된다.
노정식,<芝峯類說에 나타난 地理學的 內容에 관한 硏究>(≪大邱敎育大學 論文集≫4, 1969).
柳洪烈,<李睟光의 生涯와 그 後孫들의 天主敎 信奉>(≪歷史敎育≫13, 1970).
李萬烈,<芝峯 李睟光 硏究>-그의 행적과 海外認識을 중심으로-(≪淑大史論≫6, 1971).
潘允洪,<芝峯 李睟光의 政治經濟思想>(≪史學硏究≫25, 1975).
李萬烈,<芝峯 李睟光 硏究>(2)-그의 社會思想을 중심으로-(≪淑明女大 論文集≫15, 1975).
柳洪烈,<實學의 開拓者 芝峯 李睟光>(≪韓國學≫20, 1979).
姜周鎭,<芝峯과 政治思想>(≪韓國學≫20, 1979).
김근수,<芝峯의 人間과 學問>(≪韓國學≫20, 1979).
황의열,<李睟光의 試論>(≪泰東古典硏究≫3, 1987).
서인원,<芝峯 李睟光의 經濟思想>(≪東國歷史敎育≫2, 1990).
韓永愚,<李睟光의 學問과 思想>(≪韓國文化≫13, 1992).
다만 이수광은 아직 적극적으로 개혁론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백과전서학은 한백겸의<箕田攷>및≪東國地理誌≫등과 더불어 실학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지봉유설≫을 이어 金堉의≪類苑叢寶≫(인조 22:1644)가 간행되었다. 이것은 중국의≪事文類聚≫의 체제를 본떴으며≪사문유취≫외에 중국의≪唐類函≫·≪天中記≫·≪山堂肆考≫·≪韻府群玉≫등이 참조되었다. ≪유원총보≫는 실학과는 다소 경향이 다른 관료적, 개량주의적 개혁론의 입장에서 문물·제도를 정리한 것이다.579)金堉에 대하여는 다음의 글이 참고된다.
金斗鍾,<李氏朝鮮의 後期 活字의 改鑄와 潛谷 金堉先生 三代의 貢獻>(≪백낙준 환갑기념논총≫, 1955).
元裕漢,<潛谷 金堉의 貨幣思想>(≪編史≫5, 國史編纂委員會, 1974).
―――,<潛谷 金堉의 貨幣經濟思想>(≪弘大論叢≫11, 1979).
이남복,<金堉의 思想과 그 歷史的 位置>(≪史學志≫14, 1980).
김세봉,<金堉의 社會經濟政策 硏究>(≪史學志≫21, 1987).
아울러 여기에는 제도·문물 외에 草木門·蟲魚門 등 박물학적 관심도 표명되었다. 한편≪유원총보≫보다 조금 뒤 吳命釐의≪古今說苑≫(효종 4:1654)이 간행되었다. 여기에서도 제도적인 관심이 표명되었다.

 이수광의 백과전서학은 李瀷의≪星湖僿說≫로 이어졌다.≪성호사설≫에서는 이수광의 백과전서학적 전통과 유형원의 적극적인 개혁론이 상호 결합되었다. 여기에는 비변사 폐지론, 서얼차대 철폐론, 과거제 개선론, 지방통치 개혁론, 限田論, 화폐 및 환곡폐지론, 상평창 설치론, 노비제 개혁론 등이 들어 있다. 다만≪성호사설≫에서는 유형원의≪磻溪隨錄≫과 같은 국가제도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개혁론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것은≪성호사설≫이라는 저술이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이익이 40세에서 80세가 되는 동안 그때그때 연구한 내용을 비망기 형식으로 기록해 둔 것을 토대로 그의 조카들이 다시 정리한 것이라는 저술상의 성격과 관련이 된다. 또 그것은 그의 개혁론이 현실을 보다 깊이 고려한 온건하고도 점진적이라는 성격을 갖는 것과도 관련된다. 노론 우위의 정국이 굳어진 이익의 시대는 실학적 입장에서 전면적 개혁론을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편 이익의≪성호사설≫에서는≪지봉유설≫이래의 외래 또는 서구문물에 대한 관심이 지속, 심화되었다. 이런 관심은 그의 華夷觀의 변화, 여러 개혁론 등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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