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4) 과학기술의 특징

(4) 과학기술의 특징

 조선시대의 과학기술을 그 사상과 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우선 그 배경을 이루는 사상이 당시의 지배적 유일사상이었던 유교이념에 의해 철저히 지배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보기에 따라서는 조선시대의 과학기술이란 다름 아닌 유교적 이념체계의 군더더기로서 존재했다고도 할 정도로 당시의 과학기술이란 오늘의 그것에 견준다면 극히 사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의 근본정신은 인간사회에 대한 도덕적 이상의 실현을 앞세운 것이었고, 자연히 그 체계 속에 자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서의 과학과 기술일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이상은 정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고, 당연히 조선시대의 지배층은 정치를 통한 이상사회의 실현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과학기술 가운데 극히 일부만은 바로 그와 같은 정치적 이상에 직결된 문제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의 잘잘못은 자연 속에 그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자연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연관의 중심에 흐르는 맥은 다름 아닌 災異사상이었다. 정치가 잘못되면 자연 속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이런 자연관은 조선시대의 양반지배층에게 어느 다른 문명권에서 보다도 더 강한 자연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히 역대 실록에는 아주 많은 이상한 자연현상의 기록이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남겨져 있다.

 물론 과학기술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이 아직 촉발되지 않은 전통사회였지만, 조선시대에도 병을 고치기 위한 의약학은 필요했고, 쇠를 다루고, 집을 짓고, 다리를 건설하며, 논에 물을 대는 등의 온갖 기술이 필요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자연의 이상현상을 관측하면서 자연의 규칙적 현상을 측정하여 정확한 천문을 예보하고 정확한 시간을 알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로 여겨졌었다. 천문학·의학 그리고 몇몇 분야의 기술이 어느 정도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생겨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의 실제 담당자는 고도의 전문성 때문에 오히려 포괄적 교양주의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유교사회에서는 높이 존중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결과 일부 자연관 및 그와 관련한 일부 과학(예를 들면 天文·曆算學)은 양반층이 독점하였는가 하면, 실제 천문학이나 의학 등의 학문적이면서도 전문성이 뚜렷한 분야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은 중인층으로 내려져 차별화되는 신분 분리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또 독서를 통한 공부가 없이 숙련을 통해 생산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양인층에서 차츰 천민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과학기술이 세 분야로 나뉘어지고, 그것이 각기 서로 다른 세 가지 신분층에 의해 추구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과학사상은 양반층의 독점물이었고, 과학과 응용과학 내지 기술은 중인층, 그리고 실제 생산기술은 양인(천민)의 몫이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명한 과학기술의 분화와 그에 상응하는 신분층의 성장은 세계의 어떤 다른 문명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과학과 기술이 중인층의 전문분야로 한정되었다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전통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영향을 남기고 있다.

 첫째는 뿌리깊이 박혀 있는「中人意識」이며, 둘째는 지울 수 없는 技術賤視의 의식구조이다. 이런 전통은 우리 나라의 근대과학기술의 성장과 발전에도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쳐 왔다고 판단되고 있다.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가 더욱 진행되면 우리 나라의 과학기술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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