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2) 이익의 서양과학 이해

(2) 이익의 서양과학 이해

 가장 대표적인 초기의 실학자로 근대 과학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경우로 우선 李瀷(1682∼1764)을 들 수 있다. 그가 평소에 썼던 글을 모아 놓은≪星湖僿說≫에는 적지 않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597)朴星來,<星湖僿說 속의 서양과학>(≪震檀學報≫59, 1985). 여러 서양인물의 이름이 등장하고, 또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책이름이 나오는가 하면, 실제로 그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우리말로 바꿔 기록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책은 서양책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중국에서 번역되어 나와 있던 漢譯西學書를 가리킨다.

 그가 실제로 읽고 또 그의 글에 인용한 서양의 과학기술 관련의 한역서들은 다음과 같다.

≪職方外紀≫(1623) 艾儒略(Julius Alleni),≪천학초함≫에 포함. ≪天文略≫(1615) 陽瑪諾(Emmanuel Diaz),≪천학초함≫에 포함. ≪主制群徵≫(1610) 湯若望(Adam Schall). ≪幾何原本≫(1607) 利瑪竇(Matteo Ricci),≪천학초함≫에 포함. ≪簡平儀說≫(1611) 熊三拔(Sabbatin de Ursis),≪천학초함≫에 포함. ≪坤輿圖說≫(1674) 南懷仁(Ferdinand Verbiest). ≪渾盖通憲≫(1607) 李之藻≪渾盖通憲圖說≫이 확실. ≪七克≫(1614) 龐迪我(Didacus de Pantoja),≪천학초함≫에 포함.

 이들 이외에도 그가 실제로 본 책은 더 있을 듯하다. 예를 들면 그는 마테오 리치가 쓴≪天主實義≫에 대해 발문을 쓴 일도 있고, 그 밖에도 몇 가지 책을 더 본 것으로 여겨진다.

 이익은 이들 한역된 서양과학서를 읽고 또 당시의 학자들과 토론함으로써 서양과학이 전해주는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그에게 설득력 있게 보였던 부분은 서양과학 가운데 특히 曆算學 부문이었다. 아담 샬이 만들어 놓은 새 역법 時憲曆을 일컬어 그는 ‘역법의 으뜸(曆道之極)’이라면서 만약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기필코 이 역법을 좇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는 땅덩이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다는 것을 역시 서양과학이 처음 분명히 전해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둥글게 생긴 땅 위에서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가 사는 곳이 가장 높다고 믿을 뿐이며, 중국을 세계의 가운데에 있다고 여길 것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실학의 한 가지 특징은 전통적으로 중국을 지나치게 존중했던 모화사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익의 이와 같은 태도는 조선의 학자가 종전의 중국 중심의 사상을 뛰어넘기 시작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는 서양천문학 지식으로부터 중국학문보다 앞선 서양학문을 발견했고, 그의 나라인 조선이 중국보다 지리적으로 편벽된 자리에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익은 12重天이나 9重天 등 서양인들이 알려 온 우주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우주의 크기 등에 대해서는 몇 가지 자료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땅이 둥글다는 데에는 깊은 관심을 보이지만, 땅이 자전하여 낮과 밤이 생긴다는 地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또 기하학의 내용 가운데 원근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 밖에도 이익은 서양의 안경이나 의학, 그리고 화약·무기 등에 대해서도 아주 적은 정도지만 지식을 얻고 그것을 기록해 남겼다.

 그러나 이익의 사상에서 서양과학이 차지하는 무게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가 남긴 대표작≪성호사설≫은 3,507건의 기사로 짜여져 있는데, 이 가운데 서양과학을 내용에 다루고 있는 기사는 60건 미만에 불과하다. 물론 이 백과전서처럼 꾸며진 책 속에는 天地·萬物·人事·經史·詩文의 5개 부문이 들어 있어서, 이 가운데 서양과학을 내용으로 삼을 만한 부문은 천지와 만물 두 부문밖에 없다. 이 두 부문의 기사는 547건이므로 서양과학에 관련된 기사 60건이란 바로 547건 가운데 그만큼의 분량이라는 뜻이 된다.

 여하튼 이익은 나름대로 서양과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아직 그 관심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고, 또 그의 사상체계 전체에서는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도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지도층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중요성은 그의 사상이나 저술 가운데 그 부피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익의 시대에 그에 필적할 만한 큰 학자를 찾기 어려운 점을 주목한다면 그의 사상체계 속에 들어 있는 서양과학의 영향을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만을 가지고 낮게 평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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