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2) 서사문학
  • (2) 국문소설

(2) 국문소설

 17세기 후반에 김만중의≪구운몽≫·≪사씨남정기≫, 조성기의≪창선감의록≫ 등이 잇따라 나타난 이후, 18·19세기는 국문소설의 본격적 융성기가 되었다. 이처럼 17세기 후반에서부터 18·19세기에 걸쳐 소설의 융성기가 이루어지도록 한 요인은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 수 있다.

 우선 임병양란 이후 초래된 사회현실과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문학환경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국문소설의 주요 담당층이라 할 수 있는 대다수 서민들은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당대 현실을 핍진하고도 폭넓게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문학양식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문화적 욕구가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 안목으로 바라보았던 몇몇 사대부 지식인의 새로운 문학행위와 결합하면서 국문소설이 창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오래 전부터 있어 온 한문소설 창작의 풍부한 경험, 그리고 중국 演義小說類의 전래 및 번역·번안작업을 통한 문학적 자극을 들 수 있다. 이같은 내·외적인 경험과 충격을 통해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상당한 수준의 국문소설이 창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두터운 국문소설 독자층의 형성과 조선 후기 새로운 경제질서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사대부가문의 부녀자나 중인·평민층 남성을 중심으로 국문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었다. 더욱이 상품화폐 경제질서가 사회 전국면으로 확대됨으로써, 점차 방각본의 출판과 세책업과 같은 상업적 유통을 통해 소설도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창작되고 상품화되는 국면을 맞이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문소설의 창작은 당대인들 사이에 자랑할 만한 일로 여겨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독자적 창조행위로 존중하는 의식이 아직 희박했다. 한문으로 쓰여진 시와 산문만을 정통문학으로 간주하던 중세 동아시아의 문화적 풍토 속에서 소설은 여전히 천시되고 폄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풍속을 어지럽히고 인륜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소설배격론이 나오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대다수 국문소설이 그 작가나 창작시기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이같은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시기 소설들의 사적 전개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이들을 구성·인물형·주제와 같은 요소에 의거하여 영웅소설·환몽소설·애정소설·가정소설·가문소설·세태소설 등 친근성이 있는 몇 개의 유형으로 대별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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