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3) 기록문학

3) 기록문학

 조선 후기에는 한글의 보급이 광범하게 이루어져 갔다. 이와 함께 일상적 경험의 기술에서 국어문장이 발휘하는 섬세하고도 구체적인 표현력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한글 기록문학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18·19세기에 뚜렷이 확대되었다. 주로 사대부집안의 부녀자들 사이에서 오고간 한글서간이 內簡體라는 간결한 문체로 정착된 것은 이보다 앞서는 일이거니와, 그 표현력을 탁월하게 구사한 산문 기록문학이 17세기 이래로 풍부하게 나타났다.

 그 중에서 기행·견문록류로는 작자미상의≪날리가≫(영조 6년경:1730), 柳義養의≪남문견녹≫(영조 47), 李羲平의≪華城日記≫(정조 19:1795), 徐有聞의≪戊午燕行錄≫(정조 22),≪意幽堂關北遊覽日記≫(18세기 후반) 등을 주목할 만하다.≪남문견녹≫은 제주도에 유배되어 견문한 바를 기술한 것으로서, 자연풍토와 습속이 다른 고장에 대한 관심이 섬세한 관찰과 표현으로 구체화되어 풍물지적인 가치 또한 높다.≪의유당관북유람일기≫은 宜寧 南氏(1727∼1823)가 쓴 것으로, 여성의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력이 적절히 결합된 명작으로 손꼽힌다. 한문으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구체적 묘사와 감칠맛 있는 문체가 이 작품에서 여류 기록문학의 한 정점을 보여주었다.

 실기·회고록류에 속하는 작품들 중에서는≪仁顯王后傳≫·≪閑中錄≫(惠慶宮 洪氏, 18세기 말)·≪閨恨錄≫(全州 李氏, 19세기 중엽) 등과 같이 여성들에 의한 자전·수필류가 주목된다. 사대부층 남성들이 기록수단으로서 한문을 숭상하였던 데 비하여 士家의 여성들은 일찍부터 한글을 생활기록의 주요 수단으로 삼아 온 데다가, 여성다운 섬세한 표현력이 그들의 체험세계를 절실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 이들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작자미상의≪인현왕후전≫은 숙종년간에 인현왕후 민씨가 장희빈의 모해로 인해 쫓겨났다가 5년 후에 다시 사태가 뒤집히기에 이르렀던 사건을 기술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인물 군집의 선악을 뚜렷이 구분하는 구도 속에서 궁중의 갈등과 비화를 가정소설적 수법으로 그려낸 데에 특색이 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다수의 이본을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애독되었다.

 ≪한중록≫은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인현왕후전≫과는 또 다른 서술상의 특징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남편인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에 이르는 참혹한 사건을 자신의 노년기에 와서 기술한 것이다.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정적 사건과 달리 정파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부자간의 살륙이라는 궁중비사가 핵심 내용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의 서술은 비통한 심정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표현상의 절제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내용 및 문체상의 이러한 긴장감이 간곡하면서도 우아한 문장과 어울린 데서≪한중록≫은 탁월한 기록문학적 가치를 보여준다.

 18·19세기에는 한문 기록문학에서도 큰 성과가 이루어져 야사·잡기·기행·奇聞·逸事 등을 기록한 훌륭한 작품이 풍부하게 나타났다. 72권 72책으로 이루어진≪大東野乘≫과 266권 10집의 거질인≪稗林≫은 바로 이러한 산문문학의 축적 위에서 엮어진 대표적 총서이다.<湯論>·<原牧>등 정약용의 탁월한 논설,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성찰과 지적 모색이 날카로운 필치로 서술된 박지원의≪熱河日記≫같은 명문장 역시 이러한 조류 위에서 꽃피었다.615)金明昊,≪熱河日記 硏究≫(창작과비평사, 199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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