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2. 미술
  • 5) 건축
  • (1) 일반건축

(1) 일반건축

 조선 후기 건축조영활동은 전통적인 목조건축과 석조건축 그리고 고종 13년(1876) 부산을 필두로 개항기를 맞으면서, 주로 외국인 선교사·상인·외교관 등에 의하여 이입된 서양식건축과 일본식건축들로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목조건축은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건립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주택건축의 납도리집양식과 궁궐·관아 등 공공건축의 포집양식들이 그대로 계승되고 발전·변화되었는데, 주택건축들은 특히 조선왕조 말기인 1900년대 이후에 이르러 많은 변화를 이루게 된다. 이는 정치사회제도의 변화와 서양식건축과 일본식건축의 영향에 기인되는 것이다.

 전통목조건축의 주심포양식의 건축 또한 많은 변화를 보이는데, 공포의 짜임에 있어 첨차에 초각이 많이 되고 또 살미첨차도 교두형이 사라지고 장식화된다. 따라서 익공양식과의 구별이 어렵게 된다. 더욱이 주심포식의 조영은 수적으로 격감한다고 할 수 있다.

 다포양식도 큰 변화를 보이는데, 우선 내외출목수가 증가하며, 특히 내출목이 외출목보다 증가한다. 살미첨차의 쇠서는 약화되어 섬약해지며, 쇠서에 연봉·봉두 등의 조각으로 장식된다. 안으로도 교두형은 사라지고 제공 사이의 첨차들이 하나의 판형으로 붙고 그 끝단도 운형·파련형 등으로 조각되어 장식적이 된다. 기둥과 같은 주구조재들도 거의 자연상태의 통나무를 표면만 가공하여 사용하므로 배흘림기둥이나 민흘림기둥에서의 정교한 맛이 격감되고 있다.

 익공양식은 말기에 접어들면서 용어 자체나 구성에 있어 그 틀을 잡아 가게 된다. 그리고 특히 궁궐건축의 내전에서 적극적으로 이 양식이 채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석조건축은 석탑·부도 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성곽건축에서 중요한 조영활동이 있었으니 수원의 화성계획과 그 축성이 대표적이다.

 서양식건축과 같은 외래양식의 건축은 주로 외국인들에 의하여 건축되었으며, 그리고 이들이 재래의 전통적인 건축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특히 부산·인천·원산 등의 개항지와 수도 서울의 정치중심지에 이들 건축들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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