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2. 미술
  • 5) 건축
  • (5) 사찰건축

(5) 사찰건축

 조선 후기에 건립된 사찰건축은 첫째 가람 자체를 새로이 창건하였거나, 기존의 가람을 새롭게 창건하다시피 한 경우와 기존의 사찰에서 새로이 전각만을 건립한 두 경우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奉元寺는 신라 진성여왕 때 초창되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면서 왕실의 원찰이 되었고, 영조 24년에 지금의 봉원동에 옮겨 새로이 지으면서 새절 봉원사로 불린 만큼 지금의 봉원사는 영조 때의 초창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대웅전은 장대석으로 여러 단의 석계를 전면에 축조한 높은 축대 위에 장대석 한 벌 대의 기단을 쌓고, 다듬은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圓柱)을 세워 공포로 결구한 다포식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거의 정방형에 가깝고 정면 3칸에는 띠살창호를 달았으나 측면과 후면은 판장벽으로 형성된 것이 특색인데 이는 고종년간에 지어진 불전에서의 공통된 성격이다. 공포는 외 1출목 내 2출목으로 앙서에 연봉조각과 안쪽으로 운형조각을 하고, 또 용의 목조각을 기둥 웃몸에 끼워 넣은 것도 고종년간의 다포식 불전에서의 특징이다. 대웅전의 축대 아래는 넓은 마당이고 이외에 한쪽은 대원군의 아소정 본채를 옮겨 온 것이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불타 다시 지은 大房이 서 있다. 본래 대웅전과 나란히 마주하고 서 있어 법회를 대웅전, 대웅전의 석계·마당, 대방 등의 공간에서 치르게 된다. 이런 법회의식과 대방과 마당, 그리고 대웅전의 앞 여러 단의 석계들이 형성된 것은 서울 근교의 고종년간에 지어진 가람에서의 공통적 특징이다.749)서울특별시,≪奉元寺≫(서울특별시, 1990).

 龍珠寺는 정조 14년에 사도세자의 능 현륭원의 능사로서, 옛 葛陽寺 터에 초창한 가람이다. 가람배치는 대웅전을 중앙에 두고, 이의 맞은편에 天保樓를 세웠으며, 대웅전 좌우로 동에 승당, 서에 선당을 배치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공포는 다포식이다. 장대석 바른층쌓기의 축대 위에 장대석 두 벌 대의 기단을 형성하고, 다듬은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세워 외 3출목 내 4출목의 공포들로 결구하였다. 살미첨차는 앙서이고 안쪽은 연봉·연잎으로 장식하고, 특히 주두 밖과 안으로 용을 목조로 조각하여 결구하였고, 안에서 육제공자리에 봉두를 조각하였음이 조선 후기 다포식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華溪寺는 중종 17년(1522)에 초창되었으나, 300여 년의 세월 동안 전각들이 쇠락하여 고종 3년에 대원군의 시주로 3창을 하였다. 대웅전은 고종 7년에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겹처마의 팔작기와집이다. 장대석 바른층쌓기 한 벌 대 기단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식 공포로 결구하였다. 공포는 외 2출목 내 2출목으로 앙서에 연봉을 안쪽 살미 끝단에 연봉과 연잎을 조각하였다. 정면 3칸은 띠살창호를 달았으나 측면과 후면은 판장벽으로 구성되었다. 대웅전 아래터의 맞은 편에는 보화루라 불리는 대방을 짓고, 대웅전 축대의 석계를 여러 단의 석계로 바꾸어 이 공간에서 법회를 행한다. 이러한 공간 형성은 전술한 바와 같이 고종년간의 가람에서의 변화이며 특징인 것이다(<도면 8·9> ).750)서울특별시,≪華溪寺≫(서울특별시,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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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8>화계사 배치도
<도면 8>화계사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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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9>각 지방 주택평면과 연평균 기온
<도면 9>각 지방 주택평면과 연평균 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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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에 건축된 사찰건축으로는 신륵사 극락보전(정조 21:1797), 해인사 대적광전(순조 17:1817), 선암사 대웅전(순조 25), 동화사 대웅전(영조 8:1732, 중창), 개암사 대웅보전(정조, 6창), 오어사 대웅전(영조 17, 중창), 통도사 관음전(영조 원년) 등이 있다. 이들 불전들의 양식은 다포식건축으로 조선 후기의 공포양식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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