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파들은 정책을 입안하는 새로운 근대적 기구로서 1882년 7월 25일 정부 안에 機務處를 신설하였다. 기무처는 정치·경제·사회·군사·법률 등 모든 군국기무에 대하여 정책을 입안해서 의정부를 통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은 다음 집행하도록 하는 합의제 정책의결기관이었다. 설립과 동시에 기무처 당상에는 조영하·김병시·김홍집·김윤식·홍영식·어윤중 등 7명이 임명되었다.054)≪高宗實錄≫, 고종 19년 7월 25일. 이 중에서 조영하·김병식를 제외하고는 5명이 모두 개화파였으므로, 기무처는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중요한 기구의 하나가 되었다.
1882년의 기무처는 갑신정변의 실패로 폐지되었지만, 그 후 1894년에 갑오경장을 추진한 軍國機務處로 계승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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