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1. 임오군란
  • 3) 임오군란의 영향
  • (2) 청의 대조선정책의 변화와 영향력 확대

(2) 청의 대조선정책의 변화와 영향력 확대

청국은 오랫동안 중화체제의 종주국으로서 전통적인 사대관계 속에서 조선과 관계를 맺어 왔다. 하지만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쉽게 바꾸지 못하던 청의 대조선정책은「임오군란」을 계기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임오군란」이전까지 청국의 대조선정책은 서구열강과의 조약체결과 내정 강화를 조선정부에 권유하는 외교수단에 주로 의지하고 있었다. 이홍장이 채택한 외교수단은 일차적으로 조선정부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이홍장은 조선의 영중추부사 이유원과의 개인적인 서신교환을 통해 청국의 의견을 제시한 바 있었다.

1876년 조선의 개항에 이어 1879년 러시아와의 伊犂교환 교섭과 일본의 유구병합 등 일련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들은 모두 러시아와 일본의 팽창 야욕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청국으로서는 이 사건들을 계기로 중화체제의 종주국으로서의 대외적 위신실추와 함께 이들 국가들로부터 심각한 정치·군사적 위협을 느꼈으며, 동시에 조선이 차지하는 정치군사적 비중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이홍장은 1878년까지는 서구열강과 조약을 맺으라고 권유했었다. 그러나 1879년을 계기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관계를 맺으라고 권유하던 것을 일본과 러시아를 모두 반대하고 대신 서양열강들과 관계를 맺도록 권유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조선내정에 대한 개입의지를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이홍장은 조선정부에게 군비강화, 일본과의 수호조약 준수, 그리고 구미열강과의 수교를 통한 개국을 강력하게 권유하였다.657) 權錫奉,<大院君의 被囚>(앞의 책, 1986), 82∼104쪽.
박명규,<19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外壓 구조:한국과 일본의 비교>(≪東北亞秩序의 形成과 變動≫(韓國政治外交史學會, 1994), 33∼34쪽.
이러한 권유에 따라 조선이 미국·영국·독일 등과 계속해서 수교조약을 맺어 나갔으며 통상협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터진「임오군란」은 청국에게는 한편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 대단히 중요한 기회였다. 청국은 군란이 일어났고 일본이 군대를 파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아주 신속하게 대응했다. 정여창·마건충의 선발대가 출발한 것은 처음 소식이 전달된 18일부터 불과 5일 뒤인 22일이었으며, 24일에는 파병에 대해 황제의 재가를 받았고, 7월 4일 오장경이 3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일본군보다 훨씬 우세한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온 청국군은 신속하게 대원군을 납치하고, 궁성 일대를 장악하고 하급 군병들과 전투를 벌여 진압하는 대규모 군사작전을 전개해 성공을 거두었다. 청군은 군란이 진압된 다음 청국측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선정부를 재구성하도록 영향을 끼쳤으며 민비가 서울로 환궁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호위했다.

청국은「임오군란」의 진압과정을 거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 내용은 종주권강화와 통상확대였는데 구체적인 성과는 우선<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의 체결로 나타났다.658)<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의 상세한 내용은 金鍾圓,<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에 대하여>(≪歷史學報≫32, 歷史學會, 1966)를 참고할 수 있다. 물론 조선과 중국의 육로를 통한 무역은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 무역은 양국 관리들의 엄격한 통제와 감시 밑에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교역물품과 시기, 그리고 대상자까지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 다양한 방법을 통한 밀무역이 성행하여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한편 조선의 개항 이후 청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에게 정치적·경제적 선취권을 빼앗긴 데 대한 반성과 함께 적극적으로 종주권을 행사하자는 요구가 청국정부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조선정부 역시 새로운 통상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일본과의 무역에서 일본상품에 관세도 부과하지 못했고, 일본상인이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으므로 정부는 이들의 독점활동을 견제하고 싶었으며, 러시아의 침투가 예상되는 가운데 육로통상 방식도 전면 재검토해야 했다. 그래서 1881년 1월 조선정부는 청국에 관리를 파견해 통상에 관한 협상을 제의함으로써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청국정부로서는 이 협상을 통해 열세에 놓여 있던 조선 안에서의 주도권을 쥐고 이권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아 속방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던 가운데 갑자기「임오군란」이 발생했던 것이다.

군란진압 후 다시 열린 협상에서 청국의 입장은 매우 위압적으로 바뀐 상태였다. 군대를 출동시켜 준 것을 중국정부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9월 천진에 파견된 진주사 조영하와 부사 김홍집, 그리고 문의관 어윤중이 협상대표가 되었는데, 이들은 조선측에 유리한 주장을 갖고 협상을 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초안이 잡혀 있던 전문 8개조의<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을 세부사항도 채 충분히 검토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측 대표 마건충과 주복의 강압과 권유에 따라 조인하고 말았다. 이 조약을 통해서 청국은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던 국제법상의 종주권을 명문화했다. ‘오직 이번에 체결하는 장정은 중국이 속방을 우대하는 후의에서 나온 것인 만큼 다른 각국과 일체 균점하는 예와 다르다’는 문구를 삽입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내에서의 청국 商務委員의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양화진뿐만 아니라 서울 도성 안에서의 淸商의 상업활동을 허용받음으로써 각종 특혜 위에서 경제활동상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659) 金鍾圓, 위의 글.
O. N. Denny,≪淸韓論≫(柳永博 譯註, 東方圖書, 1989), 32쪽.

곧 이어 청국은 1883년 3월 다시 전문 24개조로 된<奉天與朝鮮邊民交易章程>을 추가로 제시하고 조선측에 조인을 강요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앞선 무역장정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육상교역 부분을 보완하는 것인데, 그 내용 가운데에는 조선이 청국을 ‘天朝’ 또는 ‘上國’이라고 불러야 하며, 그 동안 사용하던 ‘東國’이라는 용어가 中國의 ‘中’에 대해 ‘東’을 사용함으로써 상호 평등하다는 인식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사용을 금지한다는 종속관계를 보다 명확히 하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었다.660) 白鍾基, 앞의 책, 166쪽. 대원군 납치가 행동으로 조선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실질적인 종주권행사로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었다면, 일련의 장정체결은 종주권의 법적 명문화였다.661) 金正起, 앞의 글, 494쪽.

이 시기 중국정부는 종주국으로서의 위신을 세우려고 조선정치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오장경의 幕士였던 張謇과 翰林院 侍講 張佩綸의 상주문이 당시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장건은<朝鮮善後六策>이라는 글을 썼는데, 종주권강화를 위해 漢四郡설치의 예에 따라 조선의 국왕을 폐하고 조선을 중국의 한 省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장패륜도<朝鮮善後事宜六策>이라는 글을 통해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하고 駐箚韓國通商大臣이라는 직책의 대신을 파견하여 조선의 외교와 군사 등의 실권을 장악하고, 또 제물포조약으로 조선이 일본에 지불해야 하는 배상금 50만 원을 대신 부담하여 일본의 조선간섭을 막자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상주문이 바쳐지자 중국황제는 이홍장에게 검토시켰다. 이홍장은 너무 노골적이고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나중에는 그 주장에 동조하여 약간의 수정을 가한 다음 한국을 간섭하기 시작했다.662) 田保橋潔, 앞의 책, 861∼867쪽.
李光麟,<馬建忠과 韓·中關係>(≪開化期硏究≫一潮閣, 1994), 99쪽.

한편 이홍장은 조선정부의 외교업무에 간섭하려는 의도에서 외교고문을 두도록 요구하여 청국정부가 추천하는 외국인을 임명하게 했다. 맨처음 외교고문으로 임명된 자는 독일인 묄렌도로프(Paul G. von Möllendorff, 穆麟德)와 馬建常이었고, 다음이 데니였다. 하지만 이 두 외국인은 청국의 의도대로 활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663) 柳永博,<淸韓論 解題>(O. N. Denny 著,≪淸韓論≫), 65쪽. 그리하여 이홍장은 그 후임으로 袁世凱를 파견하였다. 그는 서울에 상주하면서 청국의 속방으로서 조선외교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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