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0764)이하의 폐정개혁안 분석은 정진상,≪갑오농민전쟁에 관한 사회사적 연구≫(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2), 85∼117쪽 참조.위에서 보듯이 농민군이 제시한 개혁안에서 절반 이상의 항목이 조세수취체제와 직접 관련된 것이고 탐관오리의 작폐에 관련되는 조항을 합치면 28개 조항 중 21개가 조세수취체제에 관련된 요구조항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농민군의 봉기가 기본적으로 봉건적 모순에서 시작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요구조항 1)의 “軍政·還穀·田稅 三政은 通編의 예에 따라 준행할 것”은 수취체제 전반에 대한 농민군의 요구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분제를 매개로 한 봉건적 조세제도인 租庸調체계가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으로 동요하면서 새로이 정립된 조세체계는 전정·군정·환곡으로 표현되는 三政이었다. 조선시대의 농민이 무엇보다도 봉건국가의 조세수취체계 속에서 수탈의 대상으로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농민군의 생활상의 요구는 무엇보다도 삼정문란의 개선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三政 문란에 대한 농민들의 직접적인 생활상의 요구가 개혁안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농민군의 요구는 표면적으로는 봉건적 수취제도 그 자체를 거부하거나 삼정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조세수취제도의 운영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通編의 예에 따라 준행할 것”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언뜻 보기에는 복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농민군의 이러한 주장은 주관적으로는 당장의 생활상의 요구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조선 후기에 봉건체제가 해체기에 들어서고 그 유지의 근간의 하나인 조세수취제도가 극도로 문란해진 상황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에서 보면 그것은 봉건적 조세수취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공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봉건정부는 이러한 농민군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농민군을 체제전복 세력으로 간주하여 진압에 나섰던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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