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Ⅰ. 러·일간의 각축
  • 3. 러·일의 한반도 분할 획책
  • 1) 청일전쟁과 한반도 분할안
  • (1) 영국의 남북한 분할 제안

(1) 영국의 남북한 분할 제안

 일본정부의 반대로 청·일 양군의 공동 철병에 실패한 영국은 청국과 일본에 한반도를 공동 점령할 것을 제안했다. 킴벌리외상은 7월 18일 런던주재 청국공사 龔照瑗을 통해 청국정부의 승낙을 확인한 후 런던주재 일본공사 아오키 슈조(靑木周藏)에게 공동점령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에 의하면 일본군은 서울과 인천에서 남한으로 철수하고, 청군은 아산에서 북한으로 철병하게 되어 있었다.0204)A. L. Narochnitskii, op.cit., p.602. 영국의 압력에 의하여 이홍장은 영국의 분할 점령정책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군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철수하고, 청군은 아산에서 평양으로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0205)Krasnii Arkhiv, Vol. 50∼51, p.21.

 킴벌리외상은 서울∼부산거리가 서울∼평양거리보다 멀다고 이홍장의 제안이 불공평하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생각으로는 청·일 양국간에 간격을 두고 양군이 철수하여 충돌을 피하여야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도움이 되는 킴벌리의 분할 제안에 대하여 러시아와 독일은 불만을 표시했다. 독일은 영국의 분할점령안은 일본군의 서울 점령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러시아도 킴벌리의 조건에 반대했다. 러시아정부는 만약 일본이 남한을 점령하게 되면 만주에 관해서도 간섭할 것으로 보았다. 청국도 영국의 도움으로 한반도를 지배하려고 하였다. 7월말 이홍장은 일본군이 서울과 인천에서 남한으로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일본은 이미 청일전쟁을 발발하였다.0206)A. L. Narochnitskii, op.cit., p.60.

 만약 청국과 일본이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반도는 1894년 7월에 분할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반대로 영국의 공동점령안은 실패로 끝났다. 일본이 반대한 이유는 일본은 남한 점령에 만족하지 않고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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