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3. 참정권운동과 개혁의 추진
  • 2) 개혁정부의 수립

2) 개혁정부의 수립

 황제 고종은 독립협회의 개혁정부 수립 요구 시위운동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황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마침내 10월 10일자로 법부대신 申箕善과 법부협판 李寅祐를 파면하고,0986)≪承政院日記≫, 광무 2년 음력 8월 26일, 詔. 군부대신 沈相薰과 탁지부대신 閔泳綺를 해임시켰으며, 다시 10월 12일자로 의정부 참정 尹容善을 해임시켜, 이미 스스로 사임한 의정부 의정 沈舜澤과 함께 수구파 7대신이 모두 면직되고, 친러수구파정부는 마침내 붕괴되었다.0987)≪承政院日記≫, 광무 2년 음력 8월 27일, 詔.

 황제 고종은 독립협회의 주장에 따라 뒤이어 독립협회가 신임하는 朴定陽을 서리 의정사무에 임명하여 정부수반으로 삼고, 문제의 군권을 장악하는 군부대신에는 독립협회와 보조를 같이하여 의회설립을 주장하는 閔泳煥을 임명했으며, 이 밖에 탁지부대신에 趙秉鎬, 법부대신에 徐正淳, 궁내부대신에 尹用求를 임명하였다.0988)위와 같음. 뒤이어 개각이 계속되었다. 독립협회의 주장에 따라서 개혁파정부가 수립된 것이었다.

 친러수구파정부의 붕괴와 박정양·민영환을 중심으로 한 개혁정부의 수립은 독립협회가 10월 1일부터 만 12일간 궁궐을 에워싸고 철야시위를 하면서 쟁취해낸 독립협회의 대승리의 산물이었다.

 각국의 외교관들도 대한제국에서 민중운동에 의해 개혁정부가 수립된 사실에 경탄을 표시하였다. 미국공사는 독립협회운동에 의한 개혁정부의 수립에 대해 하나의 ‘平和的 革命(a Peaceful Revolution)’이 일어났다고 자기 나라에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이 도시(서울-인용자)는 지금 막 집중적 열광의 시기를 통과했음을 보고한다. 하나의 平和的 革命(a Peaceful Revolution)이 일어났다. 군중들의 요구에 의하여 거의 전면적 개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내각의 변동은 1894년 일본이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했을 때(갑오경장을 말함-인용자) 일어난 일이 있었다(≪駐韓美國公使館報告≫(Communications to the Secretary of State from U. S. Representatives in Korea, H. N. Allen), 문서번호 152, 1898년 10월 13일, Change of Cabinet, Peaceful Revolution, Independence Club).

 독립협회는 친러수구파정부가 붕괴되고 박정양·민영환의 개혁정부가 수립되자 환호의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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