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2권 대한제국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3. 대한제국의 성립과 열국의 반응
  • 1) 국호 ‘대한’의 제정과 반포

1) 국호 ‘대한’의 제정과 반포

 황제즉위식이 거행된 다음날 조정에서는 朝鮮이란 국호를 大韓으로 변경하여 마침내 大韓帝國을 선포하였다. 국호를 결정한 것은 고종과 대신들이었다. 국호를 대한으로 변경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고종과 대신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나라는 옛 나라이나 천명을 새로 받았으니 이제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삼대 이래로 황제의 나라에서 이전의 나라 이름을 그대로 쓴 적이 없다. 조선은 箕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당당한 제국의 이름으로는 합당하지 않다. 大韓이란 이름을 살펴보면 황제의 정통을 이은 나라에서 이런 이름을 쓴 적이 없다. 한이란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나라 이름이며, 우리 나라는 마한·진한·변한 등 원래의 삼한을 아우른 것이니 큰 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다(≪高宗實錄≫권 35, 광무 원년 10월 11일).

 요컨대 우리 나라는 마한·진한·변한 등 원래의 삼한을 통합한 것이니 큰 한, 곧 대한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며, 조선왕조의 조선이란 이름은 중국에 의해 기자가 봉해졌던 땅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당한 제국의 명칭으로는 타당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직후 정부에서는 이를 곧 국민에게 알렸다.≪독립신문≫의 영문판과≪한국휘보≫등에서 이 내용을 내외국인에게 상세하게 보도했다.

금월 십삼일에 내리신 조칙으로 인연하여 조선국명이 大韓이 되었으니 지금부터는 조선 인민이 대한국 인민이 된 줄로들 아시오(≪독립신문≫, 광무 원년 10월 16일, 논셜).

 이로써 과거 오백년 동안 중국에 사대조공을 해온 조선왕국은 1897년 10월 12일 조용히 막을 내렸고, 한국사상 최초로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이 탄생하였다. 당시≪한국휘보≫에서는 이를 두고 ‘조용한 변화’라 하였다. 즉 고종의 황제즉위와 대한제국 선포는 침략자의 발자국 소리나 반역자의 함성, 산을 울리는 포성, 침략자들의 요란한 횃불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일어난 의미심장하고도 기대에 부푼 변화라는 것이었다.040)The Korean Repository, Vol. 4, 1897, pp. 385∼400.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환구단 등 각종의 의례는 천자국의 그것에 준하여 변경되었다. 즉 종래 南壇에서 제사를 지내온 風·雲·雷·雨의 神을 환구단으로 옮겨오고, 사직단에 모시던 國社·國稷의 神位를 太社·太稷으로 높여 받들게 되었으며, 황제즉위시 행차한 경운궁 즉조당의 편액은 태극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왕이 입던 자주색 곤룡포도 황색으로 바뀌었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역대의 고사에 따라 전국의 죄인들에 대해 大赦令을 내렸다.041)≪舊韓國官報≫, 광무 원년 10월 11일<宮廷錄事>.
李玟源, 앞의 글(1988).
황제즉위의 의례에 대해서는 奧村周司과 月脚達彦의 앞의 글 참조. 단 이들의 글에서는 청국과의 종속관계를 파기한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아울러 故민비는 명성황후로 추존되어 다음달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이후 정부에서는 國歌와 황제의 御旗·親王旗·軍旗 등을 제정했으며, 황제를 대원수로 한 프러시아식 복장과 관복을 제정하여 황제의 권위를 높이는 상징물도 제작하였다.042)宋炳基, 앞의 글.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