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2권 대한제국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4. 대한제국기의 자강·구국교육정책
  • 2) 국민주의 자강교육

2) 국민주의 자강교육

 국가주의 자강교육을 위한 시책과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한편에서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민권파와 중앙과 지방의 인사들은 국민주의적 자강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248)국가주의가 국가=군주를 으뜸으로 생각하며 그 권위와 의사에 절대적 우위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국가의 부강을 도모하려는 사상과 운동이라 할 수 있다면, 국민주의는 국민의 권익을 옹호하고 확립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근대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사상과 운동을 말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민족을 으뜸으로 생각하며 그 독립과 통일 발전을 꾀하려는 사상과 운동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근대 내셔널리즘은 국가주의·국민주의·민족주의 운동단계를 거치며 발전해왔다고 할 것이다(차기벽,≪民族主義原論≫, 한길사, 1990, 15쪽 참조). 일찍이 급진개화파 인사들은 국민보통교육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갑신정변 후 일본에 망명한 朴泳孝는 국가가 소학교·중학교를 설립하여 6세 이상의 모든 남녀아동을 취학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249)朴泳孝,<敎民才德文藝以治本>(≪韓國近代名論說集≫,≪新東亞≫ 1966년 1월호 부록), 19쪽. 李沂는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전국민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兪吉濬은 국민보통·평등교육의 확대실시로 국가의 기초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교육이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주적 국민을 육성하는 것을 의미하였다.250)노영택,<사립학교의 구국운동>(≪한민족독립운동사≫2, 국사편찬위원회, 1987), 61∼310쪽.

 개화파 인사들이 국민보통교육 실시를 주장하는 가운데 일반인들은 사회 변화를 체험하면서 신교육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이미 조선 후기 이래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饒戶·富民·상인·시민층은 서당을 설립하거나 또는 한미한 士族·儒生들이 설립한 서당을 이용하여 자제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서당에서 이루어지는 재래교육 즉 詩나 賦 중심의 교육은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다. 이들은 신식 법규를 공부하여 수령들의 법외수탈에 항거하고 통상장정을 익혀 외국상인들의 부당한 상행위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고자 하였다.251)≪皇城新聞≫, 光武 3년 3월 7일, 雜報<法規類編>및 4월 7일, 雜報<去舊從新>. 그리하여 이들은 새로운 학교를 세우고 자제들을 입학시켜 새로운 학문을 교육하는 데 앞장서기 시작하였다.252)邊勝雄, 앞의 글.

 이는 독립협회의 계몽활동과 만민공동회운동 등에 의해 더욱 고양되고 있었다. 독립협회는 인민이 근대적인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데 기본적인 요인이며, 인민을 자각된 역사주체로 형성시키는 교육은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사업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독립협회가 목표로 하였던 국민이란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담당할 수 있도록 계몽됨으로써 스스로가 인간적 개화를 이룩해야 할 주체적 존재였다. 독립협회가 묘사했던 국민은 민족과 국가에 없어서는 안될 성원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학문과 지식을 익힘으로써 국가에 공헌할 수 있는 애국자를 의미하였다. 열강에 의하여 내정간섭과 이권요구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독립협회는 근대교육을 전개하여 이러한 국민을 양성하고, 이를 기초로 대대적인 식산흥업을 실현함으로써 근대적 부국강병을 이룩하려 하였다.253)尹健次,<독립협회와 교육계몽운동>(≪한국근대교육의 사상과 운동≫, 靑史, 1987), 118∼147쪽.

 독립협회는 인민이 무지하여 양반의 횡포를 막지 못하고 국가의 쇠퇴를 초래한다고 보았으므로254)≪독립신문≫, 건양 원년 12월 22일, 논설. 인민에 대한 교육을 제일의 급선무로 보았다.255)愼鏞廈,≪獨立協會硏究≫(一潮閣, 1976), 223∼229쪽. 즉 독립협회는 ‘인민은 국가성립의 기초이며, 교육은 국민양성의 처방’256)≪대조선독립협회회보≫제7호, 1897년 2월 28일.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제1회 토론회를 ‘조선에 급선무는 인민의 교육임’이라는 주제로 국민보통교육에 대한 토론을 전개하였다.257)≪독립신문≫, 광무 원년 8월 31일, 잡보. 그리하여 독립협회는 전국 각처에 소학교를 세워 교육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258)≪독립신문≫, 광무 2년 9월 13일, 논설.현실적으로 소학교가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등학교나 대학교에는 일전이라도 돈을 쓰지 말고 우선 소학교를 많이 설립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여 국민보통교육을 위한 초등교육의 전국적 보급에 진력할 것을 촉구하였다.259)≪독립신문≫, 광무 2년 7월 6일, 논설.

 다시 말해서 대한제국정부와 황실, 외척과 전·현직관료 등 지배계층이 중등·전문교육의 보급을 통해 時務官僚를 양성함으로써 국가적 대처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국가주의적 자강교육을 추구하였던 데 반해서, 일반인들 즉 요호·부민·상인·시민과 진보적 개화세력으로 구성된 독립협회 등은 실력있는 국민을 양성함으로써 민권을 확보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강을 이루어 근대적 자주독립의 국민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는 방향에서 국민주의적 자강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