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가들의 민중계몽운동은 인민의 지식을 계발하고 경제력을 향상하여 민족의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신문은 민중계몽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였다. 당시의 신문은 국권을 수호하고 상실된 국권을 회복하려는 구국적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 초점은 전근대적인 민중을 계몽하여 문명화된 근대적 국민으로 만들고, 민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는 데 두었다
이 시기 애국계몽신문으로는≪제국신문≫(1898. 8. 10∼합방)·≪皇城新聞≫(1898. 9. 5∼합방)·≪大韓每日申報≫(1904. 7. 16∼합방)·≪萬歲報≫(1906. 6. 17∼1907.6.29)·≪대한민보≫(1909. 6. 2∼합방) 등이 있었다.
李鍾一과 李承晩이 창간한≪제국신문≫은 하층민과 부녀층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국문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일반 서민층에게 국문을 해독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자아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 신문은 민중의 지식계발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곧≪제국신문≫은 보도기관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국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계몽기관의 성격을 띠고 민중계몽운동에 진력하였다.0836)李海暢<言論機關의 活動>(≪한국사≫20, 국사편찬위원회, 1974), 41∼42쪽.
≪황성신문≫은 개명된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창간되었다. 張志淵·柳瑾·朴殷植·南宮檍·申采浩 등 애국계몽가들이 주필로 활약한 이 신문은 일제의 침략정책을 폭로·규탄하며 국민계몽에 주력하였다.0837)강재언,<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과 그 수난>(≪근대한국사상사연구≫, 한울, 1983), 171∼173쪽.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황성신문≫은 ‘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통하여 을사조약 체결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조약체결에 협력한 정부대신들을 규탄하며 온 국민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대한매일신보≫는 梁起鐸·신채호 등 신민회의 주요 인사들이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정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영국인 베델(Ernest T. Bethell)이 양기탁과 합작으로 경영했던≪대한매일신보≫는 국한문판·영문판·순국문판으로 발행되어 당시 최대의 발행부수를 냈으며, 영국인 소유로 되어 있었으므로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서 배일사상을 고취할 수 있었다. 이 신문은 이완용의 친일내각과 일진회의 매국행위를 폭로·규탄했고, 항일의병운동과 친일파 암살활동 등을 상세히 보도하여 항일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 신문은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설립운동과 민족자본육성을 위한 실업진흥운동을 적극 홍보하여, 그 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에 노력하였다.0838)강재언, 위의 글, 173∼178쪽.
≪만세보≫는 천도교의 재정을 바탕으로 발간되었다. 천도교 교주 孫秉熙의 후원 아래 권동진·오세창 등이 창간한 이 신문은 그 발간 목적이 국민의 지식 계발, 곧 국민계몽에 있음을 천명하였다. 특히≪만세보≫는 일반교육뿐만 아니라 여자교육에 주목하여 여성교육단체를 조직했고 여성단체와 연계하여 애국계몽활동을 폈다.0839)李海暢, 앞의 글, 49∼51쪽.
吳世昌·張孝根 등이 중심이 되어 大韓協會의 기관지로 창간된≪大韓民報≫도 국권회복을 위한 국민의 지식계발에 발행 목적을 두었다.≪대한민보≫는 국민의 사상을 통일하여 민족의 위기를 타개할 것을 강조했으며, 일진회의 합방성명이 발표되자 국민들에게 그 부당성을 폭로하며 합방반대운동을 주도하였다.0840)李海暢, 위의 글, 52∼54쪽.
한편 해외에서도 교포들을 대상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신문이 발행되었다. 하와이에서는≪신죠신문≫·≪한인시사≫·≪한인협셩신보≫·≪新韓國報≫, 美洲에서는≪共立新報≫·≪大同公報≫·≪新韓民報≫, 露領에서는≪해조신문≫·≪大東公報≫, 중국 상해에서는≪泰東新報≫가 간행되어 항일의식과 자주독립의식의 전파에 노력하였다.0841)崔起榮,≪大韓帝國時期 新聞硏究≫(一潮閣, 1991), 193쪽.
당시 애국계몽신문들은 신지식과 신사상의 보급으로 민중을 각성케 하고, 일제의 황무지개간권·을사조약·고종양위·한일합방의 강요 등 수많은 침략책동을 비판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 新聞紙法을 제정케 하여 민족언론을 규제하고 신문활동을 위축시켰으나, 애국계몽신문들은 합방 때까지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에 대한 국민적 항일 여론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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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