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3권 국권회복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1) 국어국문 진흥운동

한말에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은 민족자주성의 표출이었고 애국계몽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애국계몽가들은 우리의 언어에 대한 사랑이 민족애의 기초가 된다고 인식하여, 국어국문에 대한 연구와 보급으로 조국정신을 배양하여 자강과 자주독립의 의지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한문을 모르는 다수의 일반 민중과 부녀층을 계몽하여 국권회복의 노선에 동참케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 말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곧 한말 국어국문 연구는 언어·문자의 연구 보급으로 민족 문제에 접근하려는 語文民族主義的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1026)노인화,<근대문화의 전개>(≪한국사≫12, 한길사, 1994), 262∼263쪽.

우리 역사상 국문에 대한 관심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하여 일깨워졌고, 문호개방 이후 개화지식인들에 의하여 크게 확대되어 국한문체의 사용이 늘어갔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公私文書에서 국한문 사용이 제도화되었고, 이 때부터 학교 교과서도 거의 국한문체로 간행되었다.≪독립신문≫·≪협성회회보≫·≪매일신문≫이 순국문체로 발간되면서 국문사용이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국문운동은 민족운동과 맥을 같이하였다.

한말에 민족적 자각과 함께 강조된 국어국문의 연구활동은 국가기구를 통하여 추진되었다. 1907년 學部 안에 국문연구소가 설치되었고, 周時經·池錫永·李能和·魚允迪 등을 주축으로 하는 국문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하여, 이 시기 국문 연구의 총 결산이라 할 수 있는 ‘國文硏究議定案’이 제정되었다.1027)李基文,≪開化期의 國文硏究≫(一潮閣, 1970), 35쪽.

그러나 애국계몽가들 개개인에 의하여 국어국문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말의 대표적 국어학자인 주시경은≪대한국어문법≫(1906)·≪國語文典音學≫(1908)·≪국어문법≫(1910) 등을 저술하여 국어국문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국가 독립의 필수적 요건으로 영역·인종·언어 세 가지를 들고, 특히 “국가를 보존하고 흥성케 하기 위해서는 국어와 국문을 崇用해야 한다”고 했으며,1028)周時經,<國語文典音學>(≪周時經全集≫下, 亞細亞文化社, 1976), 156∼157쪽. “국가의 성쇠 및 存否는 국어의 성쇠 및 존부에 있다”고 하여 국가 독립을 위한 선결 요건으로서 국어국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1029)周時經,<國語文法>序(위의 책), 221∼223쪽. 그것은 국문의 숭상을 통한 국가의 독립과 발전을 이루려는 어문민족주의를 지향한 것이다.1030)李秉根,<愛國啓蒙主義時代의 國語觀>(≪韓國學報≫12, 1978), 186쪽.

국문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했던 박은식은<興學說>·<學規新論>등에서 국민교육을 위한 방법으로 국문전용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전국민의 교화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국문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국문신문을 간행하고, 한문서적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국어국문을 대중화할 것을 주장하였다.1031)단국대 동양학연구소,≪朴殷植全書≫中(1975), 13·17∼18쪽. 장지연 역시 국민교육의 확대와 한문의 폐지 및 국문의 전용을 강조하였다. 그는<國文關係論>에서 한문의 난해성을 지적하고, 우리 국민들의 지식 계발을 위해서는 국문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애국사상의 근본은 쉬운 우리 말의 보급으로 국민을 계도함에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1032)權寧珉,<애국계몽운동과 민족문학의 인식>(≪現代社會≫4-2, 現代社會硏究所, 1984), 208∼209쪽.

신채호도 국문으로 쓰여진 민족사를 편찬 보급함으로써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자국의 언어와 문자로 자국의 歷史 地誌를 찬집하여 전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자”1033)申采浩,<國漢文의 輕重>(≪丹齋申采浩全集≫別集, 丹齋申采浩先生紀念事業會, 1977), 75쪽.는 그의 주장은 민족 언어의 효용성에 기초한 어문민족주의적 발상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민족의식의 함양에 역점을 두었던 국어국문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애국계몽가들은 국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국민들에게 신교육과 신지식을 보급하기 위하여, 국문신문을 간행 보급하였고, 국문교과서를 편찬하여 학교교육을 실시했으며, 국문으로 소설을 창작하여 일반대중에 접근했던 것이다. 그들은 국문교육이 조국정신을 보존하고 독립자존의식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고 보아 국문교과서 편찬에 노력했고, 또한 사회 일반에 파급 효과가 큰 소설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불어넣기 위하여 국문으로 창작 활동을 했던 것이다.1034)權寧珉,<愛國啓蒙時代의 小說改革運動>(≪한국문화≫5,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84), 94∼104쪽. 당시 국어국문운동은 우리 말의 대중적 기능을 활용하여 민족정신을 강화하려는 일종의 국권회복운동이었으며, 국문소설의 창작은 사회 일반에 반봉건·반침략의 교육적 기능을 가지는 일종의 민족운동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애국계몽기의 국어국문운동은 신교육과 신지식의 보급 확대라는 실용적 측면과 국가의 독립이 자국의 언어와 문자의 발전에 있다는 민족적 측면이 결합된 어문민족주의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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