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3권 국권회복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3. 정미의병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2) 무기와 전술

(2) 무기와 전술

의병이 사용한 기본 화기는 화승총이었다. 아주 드물게 洋銃을 사용하고, 활·창·칼 등을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일제의 통계에 따르면 전남 의병의 6%가 양총을 사용하였으나 94%가 화승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 의병은 27%나 양총을 사용하였고, 함남에서는 양총이 35%까지 차지하는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의병의 기본 화기인 화승총의 사정거리는 불과 10보인데다 散彈이기 때문에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약과 철환을 비교적 쉽게 입수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기도 했다. 일본군의 29식 장총과 맞서 싸우는 데 가장 불리했던 점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화승총을 쓸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이 때문에 의병들은 유격전과 기습작전, 그리고 복병작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초기의 의병들은 일본군과 정면대결을 시도하고 守城戰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이것의 불리함을 깨달은 뒤부터는 유격전으로 전환하였다. 이름난 의병장은 모두 유격전에 능란한 사람들이었다. 이강년·신돌석이 그 좋은 예이다. 유격전에는 중군·좌익·우익장 그리고 선봉장 따위의 편제가 불필요했고, 이름은 그대로 두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된 소부대로 활동하는 것이 관례였다. 또 의병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좌종사가 있어, 마을마다 이들이 의병에게 재정적 지원와 정보를 제공하였다.

의병은 본질에 있서 민군이었고 자연발생적 의용군이었으므로, 상부조직과 하부조직이 정규군의 경우와 같지 않았다. 경기도 양구의 金鳳鳴 부대를 보면 대장 김봉명, 총독 趙允甫로 되어 있고, 함남 포수군 林昌根 부대의 경우에도 임창근이 正督인데 부독으로 車道善·洪範圖 두 사람을 두었다. 이처럼 상부조직이 집단적인데다 하부조직은 10명 미만의 인원으로 哨十을 만들고 이를 주거별로 편성하였다. 김봉명이나 임창근 부대의 경우 말고도 다수의 지휘부와 소수의 부대 편성이라는 특징이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다.

또 신분과 관련하여서도 간부[先鋒]·都砲·都什長·什長 등을 선발하는 데 있어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그 재주를 시험하여 능력에 따라 임명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해산 부대에서는 의병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민폐를 방지하는 데 힘쓰기도 하였다.

의병은 또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군가를 지어 사기를 올렸고, 전장에서는 북을 치거나 호라를 불어 진격신호로 삼았다. 또 백색의복이 전투에 불리함을 알고 청색으로 물을 들여 군복으로 삼고, 적군에게 심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한편, 위장술을 쓰기도 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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