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3권 국권회복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유인석의 ‘북계’에 의한 근거지 구상은 독창적이면서 완벽한 민족독립운동의 전략적 방침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19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친 민족독립운동은 ‘북계’에서 제시된 전략적 방침 그대로 중국 동북지방에 창설된 근거지에 의거해서 끈질기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근거지에 군중을 결속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군중이 있어야 그 속에서 청소년들을 선발해서 무장부대를 양성할 수도 있고, 또한 군중이 있어야 무장부대에 대한 후방공급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거지 군중이 생활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것이 선결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유인석의 근거지 구상은 되풀이하거니와 완벽하고 정당하다. 그러나 그 구상은 실현된 바가 없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근거지 군중을 결속시키기 위한 그의 지도이념이 너무나 정신주의적이었고 유교적이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유인석은 1908년 8월에 노령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煙秋에서 崔才亨·李範允 의병부대에 합류한다. 유인석은 여기에 항일 의병전쟁을 위한 근거지를 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근거지 군중을 결속하기 위한 지도이념으로 1909년 7월에 발표한 것이<貫一約>이다.

<관일약>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通告에 의하면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인석은 생각이 짧아 외람된 일이기는 하지만 一約을 지어<관일약>이라 한다. 愛國·愛道·愛身·愛人으로서 언약하고 마음을 같이 하여 서로 통함을 하나로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이 땅에 사는 諸賢이 일심단체가 되어 일국이 일심단체가 되게 하고, 먼저 保身·守道하여 나아가서는 국권회복을 기하고 인류를 구하기를 원한다(柳麟錫,≪毅菴集≫권 37).

그가 인식한 한국의 위기란 구체적으로 國亡이요, 道蔑이요, 身不保요, 人盡滅이다. 따라서 국망에 대치하는 애국이요, 도멸에 대치하는 애도요, 신불보에 대치하는 애신이요, 인진멸에 대치하는 애인이 된다. 이것이 ‘四愛’다.

결국<관일약>이란 마음을 ‘4애’에 두어 一以貫之하고, 모든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일이관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4애’의 첫 머리에 있는 ‘애국’이라 할 때, 유인석은 나라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나라란 무엇인가. 삼사천 년의 단(檀君)·기(箕子)의 옛 강토의 나라이며, 오백여 년의 聖神文治의 나라이며, 희(伏羲)·농(神農)·당(陶唐=堯)·우(有虞=舜) 이래 華脈이 기거하던 곳, 이름하여 소중화 예의의 나라이다(柳麟錫,≪毅菴集≫권 42,<貫一約>序).

요약해서 말한다면 그가 이해하고 있는 나라란 ‘화맥을 계승하고 있는 소중화의 나라’라 하겠다. 이와 같은 ‘화맥’이 ‘四愛’에 관통되어야 한다는 것(一以貫之), 바로 이것이다.

그의 근거지 지도이념은 이와 같은 ‘화맥’을 우선 근거지에서 확립하고 그것을 전국에 확대시키는 것이 바로 국권회복이 되겠다.

일제가 한국합방을 하자 그는 문인들에게 앞으로 이에 대처하기 위한 세가지 방향으로서 ‘處義三事’를 제시했다.1260)柳麟錫,≪毅菴集≫,<年譜>경술 8월 8일.
姜在彦,<한국독립운동의 根據地문제-1910년 전후의 두가지 사상적 대응->(≪근대한국사상사연구≫, 한울, 1983) 참조.
첫째는 保華於國 즉 나라에 화맥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합방에 의해서 불가능하게 되었다. 둘째는 자기 몸에 화맥을 지키는 守華於身이요, 셋째는 화맥을 지키기 위하여 殉死하는 以身殉於華이다. 결론적으로는 자기 몸에 화맥을 지키는 수화어신의 길을 택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항일의병전쟁과 병행해서 개화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애국계몽운동이 군중적인 규모에서 확대되고 그 속에서 민권사상이 확대되었다. 특히 청소년간에 그렇다. 그 누가 목숨을 걸어서 화맥을 지키기 위한 근거지를 건설하고 그것을 확대하기 위한 전쟁터로 나가겠는가.

만약에 가능하다면 일제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산간벽지에 유생들을 모아서 공자묘를 모시고 儒者村을 건설하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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