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3권 국권회복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구한말 의병전쟁의 성격이나 특징은 그에 대한 시기구분의 논의를 검토하면 총괄적인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의병전쟁의 시기를 연구자에 따라 2시기·3시기·4시기·5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2시기는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 것인데,1277)김의환 외,<의병항쟁사>(≪독립운동사≫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121쪽.
박성수,≪독립운동사연구≫(창작과 비평사, 1980), 10쪽.
전기는 1896년에 해산한 유림 중심의 척사의병을 가리키고, 후기의병은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봉기한 구국의병을 일컫는다. 그와 같이 일단 전후기로 구분하고 다음에 후기의병을 다시 세분할 수 있다는 관점인데, 이 방법은 의병의 주체적 성격을 기준하여 척사의병과 구국의병으로 대별했다는 데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

3시기 분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을미의병, 을사(병오)의병, 정미의병으로 구분한 것인데,1278)뒤바보,<의병전>(≪독립신문≫上海版, 1920년 4월 27일∼5월 29일).
신석호,<구한말 의병에 대하여>(≪사총≫1, 고려대, 1958).
조지훈,<한국민족운동사>(≪한국문화사대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65).
윤병석,≪의병과 독립군≫(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조동걸, 앞의 글(1983).
의병 봉기의 동기를 중시하여 봉기 연도의 干支를 사용하여 이름한 것이다. 봉기 연도가 고정되어 있고 시간적 단면을 중시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음에는 근래의 연구자간에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고 있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1279)김상기,<의병전쟁에 대한 연구성과와 과제>(≪한국사론≫25, 국사편찬위원회, 1995).
유한철,<중기의병사(1904∼1907)연구의 성과와 과제>(≪한국근현대사연구≫1, 한국근현대사연구회, 1994).
박민영,≪구한말 서부변경지역의 의병연구≫(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6).
권영배,≪격문류를 통해본 한말 의병항쟁의 성격≫(경북대 박사학위논문, 1996).
봉기 연도가 연구 진행에 따라 변하고 있으므로 연도가 고정되지 않으면서 전체상을 성격에 따라 구분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의 의병은 독립군으로 처리했는데 의병의 이념이나 조직이나 방법 등의 주체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독립군으로 처리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4시기 분류는 앞의 3시기 구분에서 후기의병을 1909년 9∼10월의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을 기준하여 다시 분기한 방법이다.1280)강재언,<반일의병전쟁의 역사적 전개>(≪조선근대사연구≫, 한울, 1970).
신용하,<한말 의병운동의 기점의 새 제안>(≪한국독립운동사의 재조명≫,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정제우,<구한말 국권회복운동의 특성>(≪한국독립운동의 이해와 평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5).
남한대토벌작전을 전후하여 의병이 해외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전환해 간 시기를 전환기의병이라 이름하였다. 의병이 독립군으로 전환해간 역사발전 상태를 중시한 시기구분이다. 이 경우는 의병전쟁의 하한선을 1914년 독립의군부의 해체, 또는 1915년 蔡應彦 의병의 해체에 두고 있다. 이 경우는 해외라고 할지라도 아직 대한제국이 존재한 1910년 이전부터 독립군이라 해야 하는가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5시기 구분은 위의 4시기의 1915년까지를 전환기의병이라 하고 잔여의병이 1919년 3·1운동까지 집으로 돌아가지도, 해외로 망명하지도 못한채 즉, 독립군으로 전환하지 않고 국내에서 의병방식으로 항전하고 있던 사실에 주목하여 말기의병 시기를 설정한 경우이다.1281)조동걸,<의병운동과 3.1운동과의 관계>(≪한국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연구≫). 이것은 의병의 주체성격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도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인데 너무 오래까지 의병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시기구분에서 사소한 의견차이는 많으나 크게 문제되는 것은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의병을 의병으로 보지 않고 독립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1282)김상기, 앞의 글, 359쪽. 이것은 의병의 성격이나 개념을 규정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주의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대한제국이 멸망하였으므로 멸망전의 국권수호를 위한 의병이 아니라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을 보면 그렇지만, 역사해석에는 주체적 조건을 보아야 한다. 주체조건은 변하지 않았는데 객체조건만을 보면 1910년 8월 29일까지는 의병이라 하고 30일부터는 독립군이라 해야 한다는 극단 논리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조건을 고려하여 1910년 전이라도 독립군으로 전환한 경우가 있었던가 하면, 반면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5년이라도 의병으로 존재한 경우가 있었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체조건으로 보아서 이념이나 조직과 항전방법이 의병전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면 의병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령, 姜基東이나 채응언의 의병이 1910년 이후에도 국내에서 전과 다름없이 계속 항전하고 있었다면 의병전쟁의 범주에 포함해서 보는 방식인 것이다. 다만 대한제국의 멸망이라는 객관 조건이 변하고 있었으므로 전과는 다르게 독립군적 의식이 심화된 의병이었다는 점이 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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