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1. 무역구조의 변동과 시장권의 재편성
  • 1) 무역구조의 변동
  • (1) 청일전쟁 이전의 무역구조

(1) 청일전쟁 이전의 무역구조

 청일전쟁 이전 무역품의 구성은 다음<표 1>과 같다. 수입품의 중심은 개항 직후부터 줄곧 면제품이었다. 면제품은 그 비중이 차츰 낮아지기는 하였지만, 청일전쟁 직전에도 총수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였다. 그 반면 미곡과 콩은 1890년 이래부터 수출주종품으로서 확고히 자리를 굳혔다. 그 이전에도 미곡과 콩은 중요한 수출품이었지만, 그 수출액은 매우 가변적이었고, 牛皮가 최대의 수출액을 기록한 해가 많았다. 1890년을 기점으로 미곡·콩 등의 곡물을 수출하여 金巾 등의 면제품을 수입하는 무역구조가 정착되었던 것이다. 1880년대 후반부터 해마다 무역수지의 적자를 보았는데, 그 상당한 부분은 금의 수출로 메워졌다. 조선이 농산물과 광산물이라는 1차산품을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는 구조가 정착된 기본적인 원인은 공업생산의 기술격차가 현저하여 조선이 공산품에서는 比較劣位에 있었던 점에서 구할 수 있다.

연도 수 출 수 입 무역총액 무역수지
총 액 미곡 총액 면제품
1887
1888
1889
1890
1891
1892
1893
1894
1895
1896
1897
1898
1899
1900
1901
1902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
804,996
867,058
1,233,841
3,550,478
3,366,344
2,443,739
1,698,116
2,311,215
2,481,808
4,728,700
8,973,869
5,709,489
4,997,845
9,439,867
8,461,939
8,317,070
9,477,603
6,933,504
6,904,301
8,132,844
16,479,834
13,463,947
15,399,678
18,868,177
11.2
2.5
6.3
57.4
54.1
40.9
21.6
42.4
29.8
53.1
61.9
48.3
28.4
38.4
49.6
42.4
44.6
18.8
12.9
19.7
45.9
48.2
35.9
34.1
41.7
54.4
52.3
28.3
27.1
32.7
37.0
21.9
37.2
27.0
19.1
19.7
39.5
25.1
22.2
20.9
16.1
34.6
37.8
43.2
23.6
25.0
22.8
27.7
2,815,441
3,046,443
3,377,815
4,727,839
5,256,468
4,598,485
3,880,155
5,831,563
8,088,213
6,531,324
10,067,514
11,825,249
10,307,830
11,013,590
14,822,003
13,657,063
13,874,814
27,034,345
31,959,582
29,534,857
41,611,530
41,021,436
36,646,256
39,737,039
67.3
64.4
50.6
56.6
54.7
47.5
44.7
42.8
58.3
53.3
52.4
43.9
52.2
52.3
41.7
40.7
43.3
31.3
37.6
27.8
30.2
27.6
25.4
29.0
3,620,437
3,913,501
4,611,656
8,728,317
8,622,812
7,042,224
5,578,271
8,142,778
10,570,021
11,260,024
19,041,383
17,534,738
15,305,675
20,453,457
23,283,942
21,974,133
23,352,417
33,967,849
38,863,883
37,667,701
58,091,364
54,485,383
52,045,937
58,605,223
- 2,010,445
- 2,179,385
- 2,143,974
- 1,177,361
- 1,890,124
- 2,154,746
- 2,182,039
- 3,520,348
- 5,606,405
- 1,802,624
- 1,093,645
- 6,115,760
- 5,309,985
- 1,573,723
- 6,360,064
- 5,339,993
- 4,397,211
-20,100,841
-25,055,281
-21,402,013
-25,131,696
-27,557,489
-21,246,578
-20,868,862

<표 1>수출입액과 중요 수출입품의 비중 (단위:圓, %)

*李憲昶,≪開港期 市場構造와 그 變化에 관한 硏究≫(서울大 경제학박사학위논문, 1990), 94쪽.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조선의 주된 무역상대국은 일본과 청국이었다.<표 2>에 나타난 바와 같이, 80년대 중반 이후에 조선과 거래하는 무역국 중에 청국과 일본을 제외한 나라의 비중은 수출과 수입을 막론하고 1% 미만이었다. 구미 자본주의국은 조선시장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청일전쟁 이전 수출무역에서는 일본의 압도적인 우위가 변하지 않았지만, 수입무역에서는 청국의 지위가 현저히 신장되었다. 수출주종품인 미곡과 콩은 거의 일본에 수출되어서, 일본으로의 수출액은 해마다 전체의 9할을 넘었다. 청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86년 18%로부터 1893년 49%로 급격히 상승하였다.<표 2>에 의하면, 金의 수출에서도 청국의 비중이 급속히 신장되어 1890년부터는 일본을 능가하게 되었다. 청국에는 인삼·해삼·종이류 소액을 제외하면 특별히 수출할 만한 상품이 없어서, 수입품의 대금은 주로 금으로 결제되었기 때문이다.

연도 輸入額 日 本 淸 國 輸出額 日 本 淸 國 金輸出 日 本 淸 國
1886
1887
1888
1889
1890
1891
1892
1893
1894
1895
1896
1897
1898
1899
1900
1901
1902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2,474
2,815
3,046
3,378
4,728
5,256
4,598
3,880
5,832
8,088
6,531
10,068
11,818
10,227
10,940
14,696
13,541
18,219
26,805
31,960
29,654
41,436
41,021
82
74
72
68
65
61
55
50
63
72
66
64
57
65
75
62
64
63
71
74
77
66
59
18
26
28
32
35
39
45
49
35
26
33
35
42
34
24
38
36
29
19
17
14
11
12
504
805
867
1,234
3,550
3,366
2,444
1,698
2,311
2,482
4,729
8,974
5,709
4,998
9,440
8,462
8,317
9,477
6,934
6,904
8,133
16,498
13,464
97
97
91
91
98
96
93
91
89
95
93
90
79
84
77
87
79
80
82
78
85
77
77
3
2
8
9
2
4
6
8
7
4
6
8
20
14
21
9
18
16
18
22
9
19
16
1,130
1,388
1,374
982
750
689
853
919
934
1,353
1,390
2,034
2,376
2,933
3,633
4,993
5,064





 
81
85
75
62
37
40
43
46
68
78
58
47
50
70
84
97
99





 
19
15
25
38
63
60
57
54
32
22
42
53
50
30
16
3
1





 

<표 2>貿易額의 淸·日別 構成 (단위:천 圓, %)

*1. 1885∼1893년은≪中國海關年報≫, 附錄<朝鮮海關年報>.
 2. 1894∼1896년은 信夫淳平,≪韓半島≫(東京:東京堂書店, 1901), 647∼648쪽.
 3. 1897년 이래는≪第一次統監府統計年報≫, 243∼244쪽과≪第三次統監府統計年報≫, 401쪽.
 4. 1894년 이래의 金輸出은 朝鮮貿易協會,≪朝鮮貿易史≫(1943), 46∼47쪽.
 5. 1906년 8월까지의 무역통계법은 最近經由國에 의하여 수입국을 구별하였지만, 동년 9월 이래부터는 製造國에 의하여 구별함.

 <표 2>에 나타난 1906년 8월까지의 수입무역 통계는 製造國이 아니라 最近經由國으로 분류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일전쟁 이전에 수입된 金巾을 중심으로 하는 면제품은 대부분 구미 자본주의국가의 제품이었고, 청국상인과 일본상인이 그 中繼貿易에 종사하면서 상업이윤을 획득하였다. 청일전쟁 이전에는 산업혁명을 수행한 구미국가의 압도적인 공업생산력의 우위가 공산품을 수입하고 1차산품을 수출하는 조선의 무역구성을 결정지었고, 일본이나 청국은 조선에 대하여 공업생산의 확고한 비교우위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조선은 청국과 일본을 매개로 하여 구미 자본주의국에 대하여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農工分業關聯을 맺었던 것이다. 개항장무역에 늦게 참여한 청국이 수입무역에서 현저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청국상인이 일본상인에 비해 자본력이 우월하고 상업수완과 신용도에서 앞섰고, 중계무역항으로서 상하이(上海)가 나가사키(長崎)보다 우월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에서의 청국의 정치적 위세가 청국상인의 활동을 후원함으로써 청국무역을 뒷받침하였던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연 도 輸入額 日本産 外國産 연 도 輸入額 日本産 外國産
1880
1881
1882
1883
1884
1885
1886
1887
1888
1,148
1,093
1,743
438
457
829
552
707
12
10
11
41
48
50
85
65
79
88
90
89
59
52
50
15
35
21
1889
1890
1891
1892
1893
1894
1895
1896
1897
1,093
1,251
1,466
1,411
1,301
2,365
3,831
3,367
5,197
74
82
86
87
84
83
89
91
90
26
18
14
13
16
17
11
9
10

<표 3>對日 수입품의 製造地別 구성 (단위:천圓, %)

*北川修,<日淸戰爭までの日鮮貿易>(≪歷史科學≫1-1, 1932),<제3표>와<제9표>로부터 작성.

 그런데 일본은 청일전쟁 이전에 이미 중계무역을 탈피하려는 조짐을 보였음이 주목된다.<표 3>에 의하면,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 중에 일본제품의 비중은 1882년 이전까지 1할 남짓하다가 1883년 이래에는 5할 전후로 상승하였고, 1890년부터는 수입액이 급증하는 가운데 해마다 8할을 넘어섰다. 일본이 조선에 대한 자국산 제품 수출의 비중을 증대한 것은,<표 4>에 나타난 바와 같이, 당시 수입 주종품인 金巾의 중계무역을 청상에게 탈취당한 점에 기인한 면이 있었다. 금건의 중계수입 중에 일본상인의 몫은 1886년부터 1할 미만으로, 1888년부터 2% 이하로 떨어졌다. 청일전쟁 직전에는 청국상인이 금건 수입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금건의 중계무역의 열세는 일본으로 하여금 일본산 면직물의 수출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보다 근원적인 요인은 일본의 산업화의 개시에 따른 자국 공산품의 수출능력의 확대이다. 일본에서는 이 시기에 도시를 중심으로 雜工業이 성장하였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면방적업 등을 중심으로 하여 기업이 발흥하였다.

연 도 수입액 日本商 淸商 연 도 수입액 日本商 淸商
1885
1886
1887
1888
1889
555
522
678
699
492
16
7
7
2
2
89
93
93
98
98
1890
1891
1892
1893
 
834
1,166
850
658
 
2
1
0.5
0.5
 
98
99
99.5
99.5
 

<표 4>金巾 中繼輸入의 淸·日商間 구성 (단위 : 천圓, %)

*1. 北川修,<日淸戰爭までの日鮮貿易>(≪歷史科學≫1-1, 1932),<제11표>로부터 작성.
 2. 1885년의 구성비가 100을 넘는 것은 일본상과 청상의 수입액을 합한 것이 총수입액보다 많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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