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5. 상업적 농업의 재편과 지주제의 성장
  • 2) 지주제의 재편과 소작조건의 변동
  • (2) 소작권의 약화와 지대수취의 강화

가. 역둔토에서 중답주의 제거와 소작권의 약화

 이 시기 지주제의 발전은 역으로 소작권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지주적 토지소유권이 강화되면 농민적 토지소유권이라 할 소작권이 약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당시 농민적 토지소유가 가장 발전하였던 토지는 역둔토였다. 따라서 역둔토에서의 변화를 살피는 것은 지주제 발전에 따른 소작권 변동의 전반적 추세를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역둔토에서는 을미사판(1895년)이래로 몇 차례의 토지 조사와 도조 책정이 이루어지면서 지주제를 강화하려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역둔토에서 본격적으로 소작권이 약화되는 것은 일제의 강요로<역둔토관리규정>이 만들어지는 1908년 이후라 할 수 있다. 이 때는 일본이 추진하는 농업식민책에 따라 일본인 지주·자본가들이 본격적으로 토지겸병에 나서고 있었고, 역둔토 또한 그들의 겸병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으로서는 차제에 이러한 농업식민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소작농민의 권리를 약화시켜야 했는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역둔토의 소작관행이었다.<역둔토관리규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역둔토관리규정>에서 소작권의 약화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中畓主, 즉 중간소작인의 존재를 허용했던 농업관행을 철저히 배제한 것이었다. 역·둔토나 궁장토 등은 그 성립 사정이 복잡하였다. 이들 토지를 조성할 때 당해 관청이나 궁방에서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 농민들이 낮은 지대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소유지를 투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경우 관청이나 궁방은 佃作 농민의 경작권에 대해서 일정한 특권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령 수해로 파괴된 경지를 작인의 노력과 경비로 복구할 경우 경작권에 대해 특권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그 특권은 지대를 저렴하게 하고 경작권을 永代 보장하는 것이었는데, 나아가 가령 도지권과 같이 작인이 경작권을 임의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정으로 역둔토에서는 경작권이 轉貸되어 이중으로 소작관계가 성립하였다. 이중의 소작관계란 작인이 자신의 차경지를 타인에게 다시 대여하는 것으로, 작인은 중간에서 고율의 지대를 수취하여 저율의 도조를 납부하고 중간 차액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인을 중답주라 불렀다.

 중답주는 지주측의 입장에서 보면 지주의 노력 중간에서 가로채는 존재였고, 소작인 측에서 보면 그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수탈하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러한 존재형태는 지주제라는 체제 속에서는 작인이 반지주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하나의 형태이고 과정이었다. 중답주에 의한 이중의 소작관계는 한말에 반봉건투쟁이 발전하면서 지대율이 낮아지자 크게 확대되었다. 더욱이 갑오개혁 이후에는 지방의 유력자, 즉 권세가나 舊吏屬 가운데서 중답주로 되는 자가 많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중답주는 지주로서도 쉽게 제거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했던 것이고 지주제가 강화되지 못하게 하는 쐐기 역할을 하였다.512)金容燮,<韓末에 있어서의 中畓主와 驛屯土地主制>(≪東方學志≫20, 1978).

 그러므로 지주층은 가능한 한 이들을 지주경영에서 배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궁장토를 소유하였던 宮房들은 여러 차례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중답주의 저항으로 그러한 조치들은 실효를 내기 어려웠던 것인데, 일제는<역둔토관리규정>을 제정하게 하고 물리력으로 이들을 해체시켜 갔던 것이다. 일제는 중답주를 제거할 필요성에 대해 “小作權의 安固를 期하고 농사의 개량을 도모”513)朝鮮總督府,≪驛屯土實地調査槪要≫(1911), 8쪽.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그 주목적은 지주 수입을 증가시키는 데 있었다.

 둘째는, 소작농민의 소작권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소작농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것이었다.<역둔토관리규정>은 역둔토의 관리를 각 지방의 재무감독국장 관할로 변경하고, 소작인은 반드시 문서로 소작계약을 체결하게 했으며, 소작기간은 5년을 기한으로 하였다. 물론 계약의 갱신은 가능한 것이었지만, 갱신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소작권은 자동으로 소멸되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규정은 소작인이 소작권을 함부로 타인에게 양도·매매·전당·전대하지 못하게 명시하였고, 소작인이 소작료를 체납하거나, 토지의 형태를 함부로 변경하거나 혹은 토지를 황폐하게 했을 경우, 그리고 역둔토 관리규정을 위배하거나 정당치 못한 소행을 할 때에는 정부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소작권을 해지할 수 있게 하였다.514)朝鮮總督府,≪朝鮮의 小作慣行≫下, 參考篇(1932), 310쪽. 요컨대 소작기간이 단축되었으며 소작권이 현저히 약화된 반면, 지주권은 월등히 강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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