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1. 인구의 이동과 변화
  • 1) 인구의 변화와 도시의 발전
  • (3) 도시인구율과 인구밀도

(3) 도시인구율과 인구밀도

 인구밀도가 얼마 이상이 되면 도시라고 할 수 있느냐에 관한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서 다를 것이고 국가의 성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먼저 대한제국시대의 경우 인구 5,000명 이상을 끊어 일단 도시·농촌지역의 분계선으로 삼고자 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인구 5,000∼10,000명의 규모를 가진 40개의 고을(읍)들을 훑어볼 때 그 대다수가 조선왕조시대를 통하여 이 나라 굴지의 대읍들이었거나, 또는 1876년 개항이후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된 신흥 시가지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도시지역에 포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인구규모가 작은 지역들(3,000∼5,000명) 중에도 강화·안성·강릉·춘천·나주·김해·평산·재령·신천·안악·안주·영변·영흥·길주 등 조선왕조시대의 대읍들이 포함되고 있고 대전·강경·군산·포항·사리원·신의주·용암포·신창·회령 등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된 시가지지역들이 포함되고 있다. 인구 3,000∼5,000명의 지역중에 이러한 지역들이 포함되고 있기는 하나 이미 20세기에 들어선 시점에서 인구 5,000명 이하까지를 도시부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907년 현재로 밝혀진 전국의 인구수는 한국인 9,781,671명이며 일본인이 98,001명이고 중국인이 6,161명, 구미인 387명으로 합계 9,886,220명이었다.535)한국인의 수는 한국호구표에 의한 숫자이고 일본인수는≪朝鮮に於ける內地人≫(조선총독부조사자료)에 의한 숫자이며 중국인 및 구미인은≪제2차 통감부통계년보≫제35표 저명 시가지인구에 의해 도시거주인구를 합산한 것이다. 인구 1만 이상 17개 도시의 인구합계는 498,438명이며 이것은 전국 인구수의 5.04%에 해당하고 여기에다 인구 5,000∼10,000명의 40개 도시지역 인구합계 257,787명을 합한 756,225명의 전국인구 비율은 7.65%임을 알 수가 있다. 즉 1907년 당시의 도시인구율은 7.65%였던 것이다. 필자는 앞서 조사한 인구규모 5,000명 이상의 57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편찬한≪朝鮮地誌資料(1918)≫536)임시토지조사국 편,≪朝鮮地誌資料≫(조선총독부, 1919).
이 지지자료의 면적은 方里와 町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1정의 면적에 0.0099174를 곱하여 ㎦의 면적으로 환산하였다
에 의하여 당시 도시부의 면적을 계산하고(한성만은 1907년 당시의 면적) 이를 기초로 인구밀도를 조사하는 작업을 계속하였는데 그 결과는<표 4>와 같다. 즉 57개 도시의 평균 인구밀도는 ㎢당 280명이며 인구 10,000명 이상 17개 도시의 평균은 428.8명으로 계산되었다.537)17개 도시의 인구합계는 498,438명이고, 면적은 1,162.36㎦이었다(498,438÷1,162.36=428.81). 그 중에서 함흥(5,759명)·전주(5,896명)·청주(8,445명) 등의 인구밀도는 당시에 이미 ㎢당 5,000명을 훨씬 넘었으며 평양·인천이 각각 ㎢당 4,000명을 넘었고 목포가 4,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도시명 인 구 면적(㎢) 인구밀도 도시명 인 구 면적(㎢) 인구밀도
漢 城 218,225 250.61 871 金泉 7,872 4.49 1,753
釜 山 39,743 33.56 1,184 安東 5,792 44.53 130
平 壤 31,576 6.50 4,858 醴泉 6,103 41.15 148
仁 川 27,896 6.35 4,390 星州 5,396 37.12 145
開 城 27,701 13.99 1,980 義城 7,186 69.19 104
濟 州 16,686 254.76 65 東萊 8,548 61.68 139
元 山 14,845 6.74 2,203 龜浦 5,310 47.32 112
咸 興 13,707 2.38 5,759 沙上 5,241 38.22 137
海 州 13,327 10,89 1,224 昌原 5,964 29.55 202
鏡 城 12,839 373.05 34 密陽 8,205 28.96 283
全 州 12,617 2.14 5,896 蔚山 6,369 40.75 156
統 營 12,485 5,93 2,105 兵營 5,521 30.63 180
大 邱 12,150 7.23 1,680 三千浦 5,730 35.94 159
馬 山 11,881 9,78 1,215 固城 7,724 32.11 240
晉 州 11,139 8.56 1,301 南海 5,891 22.18 266
三浪津 11,060 78,54 121 巨濟 5,071 22.67 224
忠 州 10,561 91,35 116 河東 5,422 29.58 183
水 原 6,738 3.15 2,142 白川 5,500 51.37 107
原 州 5,061 38.42 132 鳳山 5,083 62.69 81
鐵 原 5,076 45.93 111 黃州 6,326 41.27 153
伊 川 5,185 119.08 44 鎭南浦 9,269 10,86 854
靑 州 6,925 0.82 8,445 价川 5,718 59.70 96
提 川 5,253 56.82 92 義州 5,658 3.82 1,481
公 州 6,805 2.16 3,150 博川 5,403 46.47 116
南 原 7,799 14.00 557 鐵山 5,423 35.31 154
光 州 5,432 2.14 2,538 北靑 6,521 79.74 82
木 浦 7,347 2.41 3,949 城津 8,840 9.19 962
尙 州 9,551 89.93 106 明川 6,976 108.93 64
慶 州 8,553 37.00 231 756,225 2699.44 280

<표 4>1907년 현재 57개 도시 인구수 및 인구밀도표

 참고로 1980년 11월 1일자로 실시된 인구 및 주택 센서스 결과에 의하면 이때의 40개 도시 중에서 인구밀도가 5천 명을 넘는 도시는 서울·부산을 비롯하여 모두 7개 도시에 불과하였으니538)1980년 인구·주택·센서스 결과 인구밀도 5,000명 이상의 도시는 서울·부산·인천·대전·목포·대구·마산의 7개 시 뿐이었다, 인구밀도 4천 명 이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높은 밀도의 시가지였던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여하튼 ㎢당 인구밀도 1,500명을 넘고있는 지역이 14개 도시나 되어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고 있으니 놀라울 정도의 조밀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고밀도 도시가 있는 반면에 제주(65명)·경성(34명)·이천(44명)·제천(92명)·봉산(81명)·개천(96명)·북청(82명)·명천(64명) 등은 아주 낮은 밀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저밀도 도시들은 그 행정구역내에 많은 임야 또는 농경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이며 만약에 이러한 도시의 행정구역에서 광대한 임야면적을 빼버릴 방도가 있다면 개발 가능한 평지면적당 인구밀도가 훨씬 더 높아질 것임은 당연한 일이고, 그와 같은 사정은 오늘날의 시·읍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내고 있다.539)참고로 1980년 인구·주택 센서스 당시에도 240개 읍 중에서 인구밀도가 100명이 안된 읍이 10개나 있었으며 모두 강원도내의 군청소재지·광산촌 또는 어촌이었다.

 광무 11년(1907)의 전국의 인구밀도를≪조선지지자료≫에 나타난 전국의 면적 220,741.64㎢로 계산해 보면 9,886,220명÷220,741.64㎢=44.786명≒45명, ㎢당 45명으로서 도시부의 평균은 이보다 7배나 높은 밀도임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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