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2. 신분제도의 변화
  • 1) 양반 신분제도의 변화
  • (2) 신분직업의 변화

(2) 신분직업의 변화

 갑오개혁 이후 양반신분의 동향은 신분직업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고찰될 수 있다. 갑오개혁 당시 군국기무처에서 의결한 의안에는 “무릇 관인이 비록 고등관을 지낸 자라도 休官한 후에 편의에 따라 상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할 것”을 의결하여 양반의 상업 경영의 자유화를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직업의 신분적 차별 폐지를 법제화한 바 있다.608)愼鏞廈, 앞의 글, 73쪽.

 이 시기 상업에 진출한 양반신분의 모습은 갑오개혁 후 대략 10년이 경과한 1903년 및 1906년의 漢城府戶籍에서 확인할 수 있다.609)조성윤, 앞의 책, 137∼139쪽 참조. 호적에 나타나는 상업활동 종사자 643명 가운데 四祖에 양반 직역을 기재한 경우는 모두 73명(11.4%)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조의 직역으로 ‘학생’만 기재한 경우가 가장 많아서 48명(66%)으로 나타나며, 관직을 기재한 경우도 다수 있으나, 대개 주택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점으로 미루어 모두 몰락 양반이 중소 상인으로 변신한 경우로 추정된다. 특이하게 호주의 직업란에 ‘職’을 嘉義로 ‘業’을 商民으로 기재하여 상업에 종사하지만 양반신분임을 밝히고 사조도 모두 관직(부 증호조참판·가선, 조 증호조참의·통정, 증조 가선, 외조 통덕랑)을 기재한 사례가 있으나 이 경우에도 주택 규모가 草家 6칸반에 지나지 않아 역시 중소 상인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호주의 직업이 상업이면서 본인 또는 사조에 양반 직역을 기재한 것은 조선 후기의 호적에서는 찾기 힘든 새로운 현상이다.

 한편 하층 양반이 생업을 위해 중소 상인의 길을 택한 경우와는 달리, 고급 관료 출신으로서 근대적 기업이나 은행의 설립에 자본가로 참여하거나 기업가로 변신하는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610)金泳謨, 앞의 책, 제3편 제3장 企業支配層의 社會的 起源 참조.

 1897년에 설립된 馬車會社에는 대자본주(1,000元 이상)로 安駉壽(군부대신)·李完用(학부대신)·李允用(농상공부대신)·李根培(前대신)·白完爀(壯衛營隊官, 정삼품)·金斗昇(前부윤)·金基永(부사)·趙鎭泰(議官)·具禮公(무관) 등 전현직 관료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1899년에 설립된 최초의 민간은행인 大韓天一銀行의 발기인 31명 중에는 沈相薰(전군부대신)·閔丙奭(군부대신, 은행장)·閔泳綺(육군 副將)·李根澔(법부협판, 부은행장)·李容翊(전환국장)·趙東潤(군무국장)·崔錫肇(개성부윤) 등 전현직 관료들이 포함되어 있고, 주요 자본가는 조진태(前의관)·백완혁(前隊官)·김두승(前부윤)·김기영(前부사) 등 전직 관료들이었다.611)은행에 관해서는 高承濟,≪韓國金融史硏究≫(一潮閣, 1970) 참조.

 또한, 1897년에 金宗漢(관찰사) 등에 의해 설립되었던 漢城銀行은 1903년에 재창설되면서 李載完(종친, 내부대신)·韓相龍(비서승)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09년에는 이윤용(前대신)이 은행장이 되었다. 1907년에 설립된 漢城農工銀行의 경우 宋秉畯(전대신)이 대주주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조진태·백완혁 등도 주주로서 참여하였다.

 특히 이들 가운데 조진태·백완혁·김두승·김기영 등은 전직 관료 출신이면서 당대의 대표적인 상업자본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었으며, 京城商工會議所의 간부를 역임하기도 하였다.612)金泳謨, 앞의 책, 376쪽.

 한편, 1911년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당시 50만 환 이상의 자산을 가진 한국인 대자산가는 32명으로 나타났는데 이들은 대개 서울에 거주하는 왕실 및 고위 관료 출신들이었다. 이들 중 이재완과 송병준은 전기한 은행들의 설립에 참여하였고, 민영휘는 1912년에 韓一銀行長에 취임하였으며, 朴泳孝도 1910년 이후 朝鮮産業株式會社 등 4개 기업의 설립대표가 되었다.613)金泳謨, 위의 책, 383∼385쪽 참조.

 이처럼 몰락 양반이 중소 상인으로 변신하여 상업을 직업으로 가지게 되는 현상과 함께, 개항 이후 각종 회사 설립과정에서 상층 양반 가문의 신분 배경을 가진 고급 관료 출신들도 자본가로 참여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는 곧 종래 末業으로 여겨 천시하던 상공업 분야에 제한적이나마 양반신분이 진출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士大夫’로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던 전통적인 양반의 신분직업 관념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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