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1. 근대 교육의 성립
  • 1) 근대 교육 성립의 역사적 배경
  • (4) 변법개화파의 국민교육론 전개

(4) 변법개화파의 국민교육론 전개

 국민적 기초역량을 배양함이 없이 지배층 중심으로 일부 인재를 배양하여 개화정책의 일꾼으로 삼고자하는 조선정부의 교육시책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표류하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일부 지배층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사회변화에 대응하고 서구의 발달된 산업기술과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일반 국민의 기초역량 배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오군란과 청의 간섭으로 개화정책이 혼미를 거듭하자 김옥균·박영효 등은 급진적 변법개화를 통한 自修自强으로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하였다.

 급진개화파는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는 한편 부패 무능한 양반세력의 발호를 억제하고 인민의 지혜를 개발하여 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급진개화파의 주요 인사인 김옥균은 그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자래로 청국이 자의로 (조선을) 속국으로 생각해 온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가 진작의 희망이 없는 것은 역시 여기에 원인이 없지 않다. 여기서 첫째로 해야할 일은 기반을 철퇴하고 특히 獨全自主之國을 수립하는 일이다. 독립을 바라면 정치와 외교를 불가불 자수자강해야 한다(金玉均,≪金玉均全集≫, 朝鮮改革意見書, 110∼111쪽).

 또한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김옥균은 일본에 망명하여 국왕에게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臣이 여러 해 동안 見聞에 의하여 陛下께 말씀드린 바 있아온데 폐하는 이를 기억하시나이까. 그뜻은 금일 우리 나라의 소위 양반을 겸제함에 있나이다.우리 나라 中古 이전 국운이 융성할 시에는 일체의 기계산물이 동양삼국에 통하였는데 지금은 모두 폐절에 속하여 다시 그 흔적도 없음은 다른 것이 아니옵고 양반의 발호 전횡에 인하여 그렇게 되었나이다 … 방금 세계가 상업을 주로하여 서로 생업의 많음을 경쟁할 때에 당하여 양반을 겸제하여 그 폐원을 없애는 일을 힘쓰지 아니하면 국가의 폐망을 기다릴 뿐이오니 … 폐하 다행히 이를 맹성하사 … 인민의 신용을 얻고 널리 학교를 세워서 인민의 지혜를 개발하고 외국의 종교를 유입하여 교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또한 하나의 방편이라 하나이다(閔泰瑗,≪甲申政變과 金玉均≫, 1947, 68∼75쪽).

 한편 박영효는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망명하여 국왕 고종에게 建白書를 올려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만약에 군주의 전제권을 견고히 하려면 인민을 어리석게 함만 못하다. 어리석고 약해지면 실로 군주의 전제권이 견고해진다. 그러나 인민이 어리석고 약해지면 나라도 또한 이에 따라 약해지는 것이다. 천하의 만국이 모두 어리석고 약해진 연후에 가히 그 나라를 보존하고 그 지위를 평안케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한 나라를 부강케 하고 만국d과 대항케 하려면 군권을 줄여 국민들로 하여금 응분의 자유를 누리게 하고 보국의 책임을 다하게 함만 못하다. 그런 연후에 점차 문명이 발달해지고 인민이 평안해지며 나라가 무사해지고 종묘 사직과 왕위가 영구히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日本外交文書≫21, 106 朝鮮國關係雜件,<朝鮮國內政ニ關スル朴泳孝建白書>).

 즉 이들 변법개화파는 양반제도를 타파하고 군주권을 억제하는 한편, 교육을 통해 국민적 역량을 배양하고 국민의 권한을 신장시켜 부강한 근대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급진개화파의 교육이념은 앞에서 살펴본 박영효의 건백서에 반영되었다.

 국정개혁에 관한 박영효의 건백서는 총론과 8개조에 걸친 각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제6조에 해당되는 ‘敎民才德文藝以治本’에서 교육·문화 및 종교에 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1. 소학교·중학교를 설치하여 6세 이상의 모든 남녀 아동을 취학시킬 것.

2. 장년학교를 설치하여 한문 또는 언문으로 정치 재정 법률 역사 지리 산술 등의 외국서적을 번역하고 소장 관료 및 장년의 선비를 교육하여 과거시험을 통해 문관으로 채용할 것.

3. 인민에게 국어·국사·국문을 가르칠 것.

4. 외국인 교사를 채용하여 인민에게 법률·재정·정치·의술·궁리 및 여러 가지 재예를 가르칠 것.

5. 서적을 널리 인쇄·출판할 것.

6. 박물관을 설치할 것.

7. 집회 연설을 허락하여 고루함을 벗어날 것.

8. 외국어를 배워 교제를 편리하게 할 것.

9. 민간신문의 발행을 허락할 것.

10.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것.

(≪日本外交文書≫21, 106 朝鮮國關係雜件,<朝鮮國內政ニ關スル朴泳孝建白書>, 305∼308쪽)

 ≪한성순보≫가 양무론적 개화파에 의해 운영되면서029)李光麟,<앞의 글>(앞의 책, 1969), 60∼102쪽. 국가주의 교육에 역점을 두고 논지를 전개했던 것과는 달리 변법개화론자인 박영효는 의무교육과 국민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했던 근대적 국민국가건설을 위한 변법개화파의 국민교육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도서기론적 입장에서 신교육이 일부 실험적으로 수용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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