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3. 근대 교육의 확대
  • 5) 교육내용의 추이
  • (1) 애국교과와 훈화를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1) 애국교과와 훈화를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근대학교의 교육구국운동은 애국교과와 唱歌·體育에 의한 민족의식의 고취 그리고 교육실천을 통한 항일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당시 사학에서 씌어진 애국 교과서를 보면 모두 충군애국하는 국가관념과 민족의식의 고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일제에 저항하는 자주·독립사상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과서 전체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이었고 또 젊은 학생들의 피를 끓게 하였다. 玄采의≪幼年必讀≫, 張志淵의≪大韓地理≫, 鄭寅平의≪大韓歷史≫를 비롯하여≪越南亡國史≫·≪李舜臣傳≫·≪乙支文德傳≫·≪自由論≫·≪愛國論≫등 당대의 명저가 학생들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漢城法學校 교장 현채는≪유년필독≫의 범례에서 “우리 한인은 구습에 얽매이고 애국하는 일에 어두워, 이 책은 오로지 국가사상 환기를 주로 하고 역사로써 총괄한다”고 하고,<我國我身>이라는 제목 밑에 아래와 같은 글을 싣고 있다.

우리가 此國에 났으니 차국은 곧 我國이요, 우리가 此身이 있으니 차신은 곧 我身이라, 그런즉 아국이라 함은 타국이 있는 연고요, 아신이라 함은 타인이 있는 연고며, 我의 자유라는 權은 사람마다 上天이 주신 바라, 타인이 감히 빼앗지 못할 배요. 我國도 또한 그러한지라, 타국의 간섭을 물리쳐, 自主權을 잃지 아니 하고, 독립하는 실상 힘을 지킨 후에야 아국이라 하나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국을 보전치 못하고, 아국을 보전치 못하면 아신을 보전치 못하나이다(玄采,≪幼年必讀≫권 3,<我國我身>).

 또≪유년필독≫의 제33과<愛國本>이라는 글에서는 나라 사랑으로 자강할 것을, 제20과<獨立國自主民>이라는 글에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이 현채는≪유년필독≫을 통하여 구한말의 청소년을 교육하는 데 있어 자주독립과 애국사상을 고취했다. 그리고 그는≪萬國史記≫의 서문에서도 “나라 망하는 원인이 우리에게 있음”을 뉘우치도록 하고,≪波蘭末年戰史≫의 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능히 自恃한즉 자립할 수 있고, 자립하면 땅을 딛고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자립의 실상은 君臣의 德을 같이하고 上下가 서로 믿음에 있으니, 임금된 자 밤낮으로 근심 근면하여 인민을 사랑하고 신하된 자는 나라 일에 짐을 지고 公을 위해 私를 잊어 나가서는 충성을 다하고 물러나서는 잘못을 바로 잡아 일호의 구차한 뜻이 그 사이에 없다면 그러한 뒤에야 內政이 바로 잡히고 外侮가 이르지 않는다.

 國民敎育會 편찬의≪初等小學≫권 5에서도<大韓帝國>이란 단원을 설정하여 우리 나라 전국을 게시하고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임을 말하고서는 “우리가 이러한 좋은 나라에 생장하였으니, 우리가 모든 공부를 근면하여 국가를 부강케 함이 가하리오”204)國民敎育會編,≪初等小學≫권 5, 1907.라고 하여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권 5에 역사상의 인물로 乙支文德과 姜邯贊을 열거하고 그들의 충성과 용맹을 본받을 것을 말해주고 있다.

 徽文義塾 편집부 편찬의≪高等小學修身書≫에도 단원마다 애국·자주·독립사상을 말해주고 있으며, 申海永 편술의≪倫理學敎科書≫(상·하) 하권에서도 학생들에게 애국심의 발로를 아래와 같이 논하고 있다.

自國의 관념은 타국을 대하여 비로소 生함과 같이 자국을 愛하는 心은 외국을 대하여 비로소 자각됨이 有하니라 … 吾人의 애국하는 心은 금일에 初有함이 아니라 역사상 精來를 幷蓄하여 特種 고유한 根性을 成함이리오(申海永 編述,≪倫理學敎科書≫하, 普成社, 1908, 62∼64쪽).

 장지연 역시≪愛國婦人傳≫이란 번안소설을 통하여 프랑스의 애국소녀 쟌다르크의 구국정신을 그렸다. 그는 여기서 “어찌 남자만 나라를 위하여 사업하고 여자는 나라를 위하여 사업하지 못할까”, “오늘 文武 재주를 배움은 정히 다른 때 국민의 亂을 구제코자 함이로다”, “국민된 책임을 다하여야 비로소 국민이라 이를지니 어찌 나라의 亂을 당하여 가만히 앉아 보고 구하지 아니 하리오”, “우리들이 오늘은 맹세코 반드시 나라와 한 가지로 죽을 것이요, 만일 나라가 망하면 우리는 단연코 살지 못하리라” 하면서 쟌다르크의 구국정신과 독립사상과 희생정신을 그려 구한말의 소녀와 부인들에게 애국정신을 일깨워 주는데 큰 영향과 감동을 주었다. 장지연은 또≪伊太利建國三傑傳≫의 서문에서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자주독립’에 매진할 것을 고취했다.

지금 이태리를 본다면 … 三傑이 출현하면서부터 轟轟烈烈하여 세계에 떨치게 되고 수십년 미만에 발흥하여 이 마음을 가진 자가 많아졌으니, 이 마음이란 무엇인고, 즉 소위 애국심이란 것이다. 우리 동포는 흥기하지 않을 것인가.

 이 때 安國善 역시≪禽獸會議錄≫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아울러 일제의 침략을 비판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擬人化된 짐승들인데, 이른바 표면적 의미와 잠재적 의미의 묘한 幷列性을 지닌 알레고리의 형태를 근거로 한 것으로 일제의 무력적 식민지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을 짐승을 가탁하여 감행하고 있다. 이들 짐승들은 모두 인격성을 지니고 의인화되어 있는데 아래의 글은≪금수회의록≫에 등장하는 여우의 연설이다.

나라로 말할지라도 대포와 총의 힘을 빌어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육혈포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 있오(安國善,<禽獸會議錄>,≪韓國新小說全集≫8, 乙酉文化社, 1969, 19쪽).

 이는 일본제국주의를 지칭하는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또 鄭寅琥의≪最新初等小學≫을 보면<軍人>이라는 글에서 “우리 학도는 장성한 후에 국가에 瀋籬가 되어 賊이 침범치 못하게 할 용사 올시다”고 하여 항일 애국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구한말의 인문·사회 교과서는 단원마다 ‘애국’·‘자립’·‘자주독립’사상과 더불어 의식적으로 배일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이 밖에도≪을지문덕전≫·≪이순신전≫·≪강감찬전≫·≪東國名將傳≫등을 비롯하여≪泰西新史≫(1897)·≪波蘭末年戰史≫(1897)·≪法國革新戰史≫(1899)·≪애급근세사≫(1900)·≪미국독립사≫(1906)·≪월남망국사≫(1906)·≪萬國史≫(1906)·≪이태리독립사≫(1907)·≪세계식민사≫·≪민족경쟁사≫·飮氷室의≪自由論≫등은 정규 교과서는 아니었지만 각급 사립학교에서 정규 교과서와 같이 사용했던 책이다.

 예를 들어 梁啓超의≪飮氷室全集≫을 평양 大成學校에서 정규 교과서로 채택했던 사실은 漢文科의 교과서는 四書五經보다도 중국 양계초의≪음빙실문집≫이었다는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음빙실문집≫에 대해서는 이런 일화도 있다.

三南 지방 출신인 유지가 島山을 찾아와 나라 일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좋겠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에 도산은 ‘크게 용삐는 일만이 나라 일이 아니요, 양계초가 만든≪음빙실문집≫이란 책이 있으니, 그것을 우선 몇 권 사서 삼남에 있는 유명한 학자에게 주어서 읽게 하시오. 그것이 나라 일이오’ 하고 타일렀다는 것이다(朱耀翰,≪安島山全書≫, 三中堂, 1963, 87쪽).

 위에 말한 책들은 모두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교과서이다. 어디까지나 민중을 계몽시켜 교육구국의 힘을 행사할 수 있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한다는 민족내적 과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이러한 교과서는 교육구국운동과 병행하여 사용된 것으로, 그 성격이나 의의가 한결같이 자주독립과 애국심을 표방하고 있다. 말하자면 독립사상으로 요약되는 정신적 내용면을 중요시했던 교과서이다. 따라서 교육구국운동도 이러한 교과서가 있었기 때문에 전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션학교도 우리 민족에게 정의와 애국심을 가르친 것이다. 이는 물론 기독교 그 자체가 불의한 자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 미션학교에서는 쟌다르크라든가 조지 워싱톤과 같은 자유의 투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세계에서 가장 선동적인 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를 보급하고 또 가르쳤다. 기독교 역사의식은 역사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를 찾고자 하는 정신 자세이다. ‘歷史 안에서의 啓示’란 명제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책이 바로 이 성서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기독교 역사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충분한 자료로써 보여준다. 그것은 성서를 기록한 사람이 신앙의 근거를 가진 역사의식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특히 선천 信聖學校 교장 맥큔(G. S. McCune)은 학생들에게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훈화 제목으로 택하여 정의로 무장된 약자가 강대한 적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힘주어 가르쳤다. 아시아의 소국 유대가 그 뛰어난 정신력을 나타낸 일은 한 두번이 아니다. 양치기인 다윗이 巨人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은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 정신과 신앙의 힘으로 이 거인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맥큔의 이 훈화는 곧 일제에 대항하는 한국인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당시 이 땅의 모든 선교사들은 실질상의 한국 독립을 위한 열렬한 참피언들이었다. 그들은 미션학교를 통하여 일제 침략에 고민하는 한국인에게 하느님의 도움으로 ‘국권회복’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독립을 위한 교도들의 단결과 열망은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을 입을 것이라고 설교하였다. 또 때로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질곡에서 끌어내던 古史를 인용하여 설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교가 얼마나 한국인에게 위안과 격려가 되었으며 감격을 불러일으켰는가는 1907년 ‘대부흥운동’ 이후 신도 수의 급증이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 이 위대한 종교적 각성은 정신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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