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4. 교육구국운동의 추진
  • 1) 근대 교육의 성격
  • (2) 근대 민족 교육의 확대

(2) 근대 민족 교육의 확대

 한국의 근대 민족교육이 전개되는 과정은 1880년대부터 1910년에 이르기까지 그 정치적 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세 단계로 구분되어진다.

 제1단계는 1880년대초에서 1894년 갑오개혁이 진행되는 때까지이며, 제2단계는 1895년 정부에 의해 근대 교육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1905년 러일전쟁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때까지이며, 제3단계는 1906년 일제의 통감부가 교육침략정책을 실시하며 민족교육을 억압하면서 1910년 국권이 침탈당할 때까지이다.

 근대 민족교육의 전개과정에서 문제의 초점이 되는 것은 제3단계에 대한 이해이다. 이 시기는 일제가 한국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식민지 침략을 준비하던 시기로서 한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을 억압하기 위해 교육침략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이다. 이로 인하여 그동안 발전하던 민족교육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며, 특히 관공립학교의 경우 민족교육이 크게 위축되거나 거의 그 의미를 상실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 시기의 민족교육은 침체기이자 위축기이며 동시에 수난기 또는 시련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통감부의 교육침략정책에 대항하여 민족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민족의 노력은 구국운동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즉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민족의 정신적 기반이 민족교육에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민족사립학교의 설립이 급증한 것이다.

 이제 한국 근대의 민족교육은 관공립학교의 민족교육이 통감부의 식민지를 위한 준비교육으로 전락해 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립학교에서 크게 확대되어 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통감부는 사립학교령과 교과용도서 검정제도를 실시하여 사립 학교의 설립을 통제하고 나아가 교육내용을 철저하게 통제하려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민족교육은 많은 시련을 겪기도 하였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학교의 설립과 독자적인 교육을 추진해 나갔다. 1910년 5월 말 현재 전국의 사립학교가 통감부의 인가를 받은 학교 2,250개교를 포함하여 5천여개교에 이르렀다. 학생의 수효도 20여 만에 달하였는데 이는 학교와 학생수에 있어서 관학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들 사립학교에서는 통감부의 교육침략에 대항하여 민족정신을 배양하는데 주력하여 애국적인 내용의 교과목을 중요시하였고 통감부의 감독과 감시를 피하여 사용이 금지된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민족교육을 추진해 나갔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기를 민족교육의 위축기 또는 침체기가 아니라 민족교육의 확대기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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