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5. 근대적 교과서의 편찬
  • 2) 근대 교육의 발전과 교과서
  • (2) 정부의 교과서 편찬

(2) 정부의 교과서 편찬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895년 교육개혁이 추진되고 각급 학교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교육활동이 전개됨에 따라 필요해진 것이 교과서였다. 정부가 교과서를 편찬한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1894년 갑오개혁으로 관제가 개편될 때 학부에 교과서 편찬을 담당할 편집국을 만들었으며, 군국기무처회의에서 학무아문으로 하여금 소학교 교과서의 편찬을 속히 추진할 것을 논의하였던 것으로 보아265)≪舊韓國官報≫, 1894년 7월 28일, 草記(이하≪官報≫). 갑오개혁 초기부터 교과서의 편찬이 계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제도적으로 국가에서 교과서 편찬을 위한 기구를 설치한 최초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 편찬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895년 4월 한성사범학교의 관제가 공포된 이후이다. 처음으로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이었기에 그 참고가 필요하여 1895년 5월 초 정부에서는 외부대신 金允植의 이름으로 駐日公使館事務署理 韓永源에게 훈령하여 “금번 학부에서 관립사범학교 및 소학교교사의 교육서를 편찬하는 바 이에 참고하기 위하여 일본 尋常師範學校와 高等師範學校의 교과서 및 참고서 각 1부를 구득하여 보내라”라고 지시하였다.266)≪舊韓國外交文書≫ 3, 日案 3623호, 고종 32년 5월 1일.

 1896년도에 처음으로 정부의 예산액이 공표되었는데 학부예산 총액이 126,752元이며 이 중에서 교과서인쇄비로 계상된 금액이 5천원이었으며 이 금액은 요구액의 절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267)≪官報≫, 1896년 1월 20일. 이는 전년도인 1895년에 교과서의 인쇄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1895년 8월부터 교과서가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8월 설립된 서울관립소학교의 교육에 당장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1895년 7월과 8월에 걸쳐≪國民小學讀本≫과≪朝鮮歷史≫가 간행된 이래 1896년 2월≪新訂尋常小學≫ 3책이 간행되었는데 이 때까지 학부 편집국에서 간행된 교과서는 앞의≪신정심상소학≫을 포함하여 모두 18종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위의 책 권 3의 권말에 소개된 ‘學部編輯局 開刊書籍 定價表’를 통해서 알 수 있다.

萬國地誌 夙惠記略 萬國略史 上·下 輿載撮要 朝鮮歷代史略(漢文) 3책 地球略論 朝鮮歷史 3책 東輿地圖 國民小學讀本 近易算術 上·下 朝鮮略史 簡易四則算術 朝鮮地誌 士民必知(漢文) 小學讀本 四禮須知 牖蒙彙編

 한편 1897년 6월에 학부에서 간행된≪泰西新史攬要≫하권 끝 부분에 실려있는 학부간행 교과서 광고를 보면 위의 도서 이외에 한문과 국문으로 각각 따로 편집된≪小地球圖着色≫(2책)과≪公法會通≫(3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1897년 6월까지 역시 한문과 국문으로 각각 따로 나온≪泰西新史攬要≫(2책)를 포함하여 3종의 도서가 더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교과서 가운데 일부는 소학교에서 학습하는 것이 아닌 경우도 있었으나 소학교용이 단연 다수를 차지하였고 특히 역사 및 지리교과서와 현재의 국어교과서에 해당하는 소학교과서가 많았다. 소학교과서는 국어교과서에 해당하지만 당시 소학교의 교과목 가운데 국어과목이 없고 修身과목이 있는데 소학은 이 수신과목의 교과서이다.

 1897년 이후 1905년까지 학부에서 간행된 교과서를 연도별로 보면 다음과 같은데 이들 도서들도 역시 대부분 역사교과서이다.

萬國史記 (1897) 大韓歷代史略 (1899) 中國略史合編 (1898) 精通算學 (1900) 俄國略史 (1898) 中等萬國地誌 (1902) 種痘新書 (1898) 歷史輯略 (1905) 東國歷代史略 (1899)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