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5. 근대적 교과서의 편찬
  • 3) 통감부하의 교과서
  • (4) 구국교육운동과 민간의 교과서 편찬

(4) 구국교육운동과 민간의 교과서 편찬

 1906년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의 국권을 침탈하려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한민족의 대항운동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흐름은 대체로 의병항쟁과 애국계몽운동의 방향으로 나타났다.

 통감부의 교육침략정책이 그 동안 발전하여 온 민족교육을 크게 억압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대항하여 민족교육은 보다 더 활발하게 추진되어 갔으며, 애국계몽운동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운동이었다. 민족교육운동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로 인식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구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각지에 많은 민족사립학교가 설립된 것은 물론이고 교육회 및 여러 학회가 조직되어 보다 체계적인 민족교육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로 인해 교과서의 수요가 늘어나게 됨에 따라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통감부는 처음 초등학교의 교과서만을 편찬하였으므로 다수의 사립학교에서 필요한 교과서를 민간에서 편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4년 9월 설립된 國民敎育會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그 설립목적을 “일반 국민의 교육을 勉勵하여 지식을 발달케 하되 泥古의 폐습을 草祛하고 쇄신의 규모를 확립할 것”에 두고 이를 위한 사업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문명적 학문에 응용할 서적을 편찬 혹 번역하여 刊佈하고, 본국사기와 지지와 古今名人傳蹟을 수집·광포하여 국민의 애국심을 鼓動하고 원기를 배양할 일”을 추진하였다.283)≪皇城新聞≫, 1904년 9월 19·20·21일,<國民敎育會規則의 大要>.

 당시 이와 비슷한 취지로 설립된 학회인 서북학회(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가 합침)·호남학회·기호흥학회·교남교육회·대동학회·여자교육회·태극학회·대한흥학회·관동학회·보인학회 등은 교육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는 데 그 목표를 두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에 앞장섰다. 사립학교 가운데는 학교 안에 출판부를 두고 교과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교과서의 수요 증가에 따라 일본인이 지은 교과서 또는 일본에서 편찬된 교과서도 국내에 수입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1896년에서 1905년 사이에 편찬된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1906년 이후의 교과서도 수신·국어·한문·역사·지리에 관한 교과서는 한국인이 주로 저술하였으나 다른 과목의 교과서는 일본인을 비롯하여 외국인의 저술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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