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3. 한국사 연구
  • 1) 연구의 필요성

1) 연구의 필요성

 한국사학이 근대적 학문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다. 실학시대부터 계승되어 온 내재적인 전통과 개항 이후 수용된 서양의 학문에 일정하게 자극을 받은 한국사학은 19세기 말의 계몽적인 사학의 단계를 넘어서서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되어 갔다. 20세기 초의 ‘근대민족주의사학’이 바로 한국사 분야에서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역사학은 溫故知新의 방법론을 학문적으로 심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서, 중국과 한국에서 특히 발전하였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되는 학문으로서는 역사학만한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역사학은 하나의 독립된 학문이면서 모든 학문의 역사적 근거를 찾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특히 동양의 학문에서는 經學과 함께 반드시 역사학이 있었고, 사상적인 체계와 논리를 구성함에 역사적인 근거가 필요하였으므로 역사학은 경학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존재하였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역사학이 경학과 사상(철학)에서 분화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중세까지 넓은 의미의 인문학에 포괄되어 있으면서 인문학 전반과 분화되지 않은 역사학은 인문학에서 자신을 분화시켜 자신의 개성적인 성격을 독립시킴으로써 근대적인 학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역사학이 독자적인 존재는 아니었지만, 미분화된 인문학의 기초적인 요소로서 기능하였기 때문에 역사학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과 학문을 논할 때뿐만 아니라 經世를 논할 때에도 빼지 못할 분야였다. 태평한 시대에는 역사학이 지배자의 통치자료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사서의 명칭에≪資治通鑑≫이라는 말은 이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배자가 통치를 위해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 그것은 바로 역사학의 교훈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와 격동의 시기를 맞게 되면 역사학은 통치자료로서의 위치에서만 머물 수가 없게 된다. 민족이나 국가의 자기존재를 재확인하고 격동의 시기를 헤쳐 나가는 진로를 거기에서 찾아내야 했다. 역사학이 특히 변화의 시기에 요청되면서 자기 시대의 예언자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자기 시대가 잠들려고 할 때 역사학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를 대상화하여 現存과 관련시켰고 이 작업을 통해 그 대상의 미래를 예시하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 점은 한말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말 한국의 역사학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역사학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우선 근대 역사학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어떤 단계를 거쳐 발전하게 되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아직 해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국사의 시대구분에서 보면 한말 서세동점의 시기가 근대의 시작으로 연결되는데, 바로 그러한 때에 그 시대 역사의식의 산물이자 지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을 역사서술이 왜 거의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특히 이 시기는 학파로서의 실학이 사라지고 개화를 준비하는 시기인 만큼, 그 시기에 있었을 실학기와 개화기를 교량해 주는 역사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점도 밝혀야 할 문제다.

 그런데 실학기에서 개화기에 이르는 이 시기에는 역사서술이 그렇게 흔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이 시대의 공백을 메워 주는 역사학은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때에 있었을 역사서술은 어떤 인물, 어떤 저술에 의해 면면되어 갔는가 하는 점도 문제시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개항을 전후한 시기에 중인들에 의한 역사서술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하는 점도 이 시대 역사학을 다루면서 풀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또 한말 본격적인 개화기에 이르면 근대 역사학은 근대학교의 시작과 더불어 역사 교과서가 주도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통사적인 역사 서술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 교과서가 주었을 파장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본다.

 둘째로 이 시기의 역사학 연구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로는 개항기를 맞으면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외국인들의 한국사 연구와 그것이 한국인들의 한국사 연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다. 종래 이 점에 대해서도 연구가 없지 않았으나 당시의 문헌 자체를 분석하는 과정을 곁들인 연구는 없었다고 본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일본의 것에 치중하였는데, 그 밖의 나라에서 간행된, 특히 서양언어로 쓰여진 한국사 서술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보여진다. 당시 한국을 소개하는 서양 서적 중에는 한국을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한국의 역사를 다루는 경우는 더러 있었으나 한국의 역사 자체를 다루는 서적은 그리 흔치 않았다. 앞으로 개항기의 한국사 연구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의 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당시 외국의 역사학이 한국사 연구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던 만큼 그 점도 이 시대 역사학을 다루면서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여기에는 서양의 역사소개가 영향을 끼친 경우도 있지만, 역사이론서나 사회과학의 이론 자체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셋째 개항·개화기에서 애국계몽기로 들어서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본격적인 한국사 연구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고찰하고 거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역사서술에서 포착할 수 있는 역사정신과 역사연구 방법론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개화기에는 근대 학교의 설립에 따라 역사 교과서가 정부에 의해 먼저 간행되었다. 그런 역사교과서는 외국, 특히 일본의 한국사 연구에 일정하게 영향을 이미 받고 있어서 민족의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근대학문이라는 명분으로 이 때 이미 고대 일본의 한국지배를 합리화하는 주장을 내비치고 있었는데, 한국의 역사교과서 저자들은 이런 침략적 사관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들의 주장을 용납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던 시기에 이르게 되면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나라의 독립을 수호하는 것과 상통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역사의식에 기초한 국권수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무렵이면 이제 역사는 곧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인식되어 식자들의 역사연구가 민족의 생존권 수호의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국망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통사가 나오지 못했지만, 민족주의 역사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역사의식이 변화하는 한말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말의 역사학은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투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좌표를 민족사의 흐름 속에 정확하게 설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데다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에너지원을 민족사에서 탐색하려는 일련의 작업과 연관된다고 할 것이다. 민족적 에너지원의 발굴은 민족사를 정확하게 검토하는 데서 가능하였다. 이것이 바로 자기 역사를 새롭게 점검해야 하는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민족사에서 자신의 현재를 재확인하는 작업은 자신을 개방해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 속에서 진행되었다. 때문에 폐쇄적으로 자기를 탐색하던 그 이전과는 사뭇 방법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과거라는 사실을 담는 역사탐구의 작업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과 같이, 이제 새로운 부대를 필요로 하였다. 한국의 근대 역사학이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방법론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려는 당대 지성의 자세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실학시대에서 개항기로 넘어오는 시기에서부터 한국의 역사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며 그것이 한말에 이르러 민족주의 역사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말 일제 초기의 민족주의 역사학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그 성격은 어떠한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 글의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사 연구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업적들이 생산되었다. 실학시대 이후에 나타난 역사학자들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있었는가 하면, 시대별·분야별 연구도 돋보였다. 그 동안의 업적들에 유의하면서 여기서는 실학 이후의 근대한국사 연구의 추이를 살펴보고 한말 일제강점 초기의 민족주의 사학이 성립되는 데까지를 하한으로 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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